[여성소비자신문] 계약을 체결할 때, 반드시 계약서 작성과 인감도장 날인이 필요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법적으로 ‘계약’은, 당사자 사이 ‘의사의 합치’를 의미한다. 가령 물건을 사고팔 때, 어떤 물건을 만원 받고 팔겠다는 사람과 같은 물건을 만원 주고 사겠다는 사람 사이에 의사의 합치가 있으면 계약이 성립하는 것이다.

계약이 성립하면, 이에 따라, 팔겠다는 사람은 만원을 받고 물건을 넘길 권리 또는 의무가 있고, 사겠다는 사람은 만원을 주고 물건을 받아갈 권리 또는 의무가 있는 것이다.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에 권리니 의무니 거창한 표현을 써서 그렇지, 계약이라는 것은 서로 약속한 것을 약속대로 이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계약이 유효하게 성립하거나, 계약에 따라 어떤 권리나 의무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당사자가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 약속하는 것이 핵심이다.

상식적으로 약속에는 어떤 형식이나 방식이 요구되지 않는다. 약속시간에 늦은 사람이 기다린 사람에게 약속시간에 관한 계약서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늦은 것이 문제가 없다고 한다면, 아마도 사회생활에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에 익숙하다. 요즘은 도장이 없이 서명으로 간편하게 계약서를 작성하지만, 종종 인감도장이 요구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에는 약속이라면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손가락을 맞대는 의식이 필요했다.

계약은 자유로운 의사로써 약속을 하는 것이면 충분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약속한 내용을 잊기 쉽다. 기억은 기록을 이길 수 없다. 그래서 계약서라는 형식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리고 때로는 약속을 잊은 척하거나 모른 척하는 사람들 때문에라도 증거를 남길 필요가 있다. 이러한 형식은 약속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역할도 한다, 어린 시절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손가락까지 맞대고 약속하면 꼭 지켜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처럼.

어떤 계약서에 계약당사자로 홍길동과 김철수라는 이름이 적혀있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그것만 보고 홍길동과 김철수가 정말 계약서를 작성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아마도 도장이나 서명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문서에 작성자로 기재된 사람이 자유로운 의사 또는 진정한 의사로 그 문서를 작성하였다는 것을, 법적으로 ‘문서의 진정성립’이라고 한다. 우리는 문서의 진정성립을 분명히 하고자 계약서에 도장을 찍거나 서명을 하는 것이다. 즉, 도장을 찍거나 서명을 하는 행위는 ‘내가 자유로운 의사로 이 문서를 작성했다’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홍길동과 김철수의 계약서에 ‘홍길동’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도장이 찍혀 있고 김철수의 서명이라고 하여 ‘김철수’라는 글자가 멋지게 휘갈겨 써져 있으면, 계약서에 적힌 내용과 같은 약속이 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보통의 경우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주 예외적이긴 하지만, 작성자의 이름이 새겨진 도장이 찍혀있다거나 작성자 이름의 서명이 되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작성자가 자신의 도장을 찍었다거나 서명을 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도장의 경우에는 같은 이름의 도장을 만드는 것이 어렵지 않고, 서명도 다른 사람이 적당히 흉내내어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홍길동이 자신의 도장이 아니라고 하거나 김철수가 자신의 서명이 아니라고 하면 골치가 아파진다.

이런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인감도장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주민센터에 가면 인감도장을 등록할 수 있다. 즉, ‘이것이 내 도장이다’라고 타인에게 공공연히 알리는 것이다. 이런 인감도장으로 거래를 하게 되면, ‘나중에 딴소리가 없겠구나’하고 안심하며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만약 홍길동과 김철수의 계약서에 각자가 인감도장을 찍었다면, 상식적으로 그 계약서는 홍길동과 김철수가 작성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

법적으로 어떤 문서에 인감도장이 찍혀 있으면, 그 인감도장은 인감도장의 주인이 날인한 것으로 추정하고, 나아가 그 문서도 작성자의 진정한 의사에 의해 작성된 것, 즉 문서의 진정성립까지 추정한다. 이와 같은 추정은 인감도장을 통한 거래가 안전하다는 거래의 안전을 보장해주지만, 한편으로는 종종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생각보다 계약서 내용을 제대로 읽지 않고 도장을 찍는 경우가 많은데(필자도 작은 글자가 빽빽한 은행약관을 제대로 읽지 않고 도장을 찍은 경험이 있다), 일단 인감도장을 찍었으면 모르고 계약서를 작성했다거나 속아서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대개는 계약서 내용대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인감도장은 잘 간수해야 하고 인감도장을 찍을 때는 정말 신중해야 한다.

어쨌든, 계약이 성립하기 위해 계약서나 인감도장의 존재는 필수적인 요건이 아니다. 종종 필자의 의뢰인들이나 지인들이 어떤 약정을 체결하기 위해 별도로 계약서를 써야 하는지, 쓴다면 어떤 내용으로 써야 하는지 묻곤 한다.

이러한 경우 필자는, ‘계약서를 꼭 쓸 필요는 없고, 쓴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어떤 내용으로 써야 한다는 틀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객관적으로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도록 증거를 남기면 좋을 것이다’라고 안내한다. 요즘은 문자나 녹음이 용이하여 계약서가 아니더라도 약속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률전문가에게 계약서 작성과 검토를 의뢰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면, 계약서에 적힌 문구대로 약속이 존재한다고 추정되어 거기에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사소하게 보이는 문구 하나가 누구는 울고 누구는 웃게 만드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본다. 그러니 중요한 계약을 할 때는 반드시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받길 바란다.

김택종 변호사  tjkim00@centro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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