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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시읽기] 목필균 '장마'
구명숙 숙명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3.08.24 12:37

[여성소비자신문] 굵은 비가 내린다.

언제 그칠 줄 모르는 장맛비가
지하방(地下房) 창가에 흐른다.

그렇지 않아도 눅눅한 방에
칠순으로 향하는 마른 육신이
고단한 몸을 담고 있는데
비는 칭얼칭얼 치마꼬리를 잡는다.

온종일 고층아파트 계단 쓸어내리던
무릎관절 오지게 부어오르는 밤을
살만한 자식들 손길 마다하고
홀로 지켜내는 유씨 할머니.

낮에도 어두운 그 곳을
햇볕 속에서도 축축한 그곳을
피하지 않고 끊임없이 비가 내린다.

몇 년 전부터 주먹 만 한 비가 한 곳에 집중적으로 쏟아지다가 휙 지나가버린다. 여기저기 마구 돌아다니며 순식간에 퍼붓는 장맛비에 화들짝 놀라 뛰어보지만 온 몸이 흠씬 젖게 마련이다.

우산을 들어도 마찬가지다. 이런 장맛비가 왔다갔다 며칠 동안 쏟아질 때도 있다. 이렇게 변덕스런 폭우는 지구온난화현상 때문이라고 한다.

하루 종일 고층아파트 계단을 반질반질 닦느라 무릎관절이 뚱뚱 부어오르는 밤을 “홀로 지켜내는 유씨 할머니”, 늘 햇볕이 부족한 지하방 창가를 거세게 두드리는 폭우가 두렵다. “낮에도 어두운 그 곳을/ 햇볕 속에서도 축축한 그곳을 /피하지 않고 끊임없이 비가 내린다.” 물 폭탄이 쏟아지는 동안 지하방은 눅눅히 숨죽이고 있다. 곧 곰팡이가 필 수도 있다.

“살만한 자식들 손길 마다하고” 독립된 삶을 살아가는 칠순 노인은 숲 속의 새들은 어디서 장마를 피하고 무얼 먹고 견디나? 걱정하고,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며 순응하던 짐승들이 홍수에 둥둥 떠내려가는데 건져 주지 못함을 가슴 아파 할 것이다.

하지만 폭우는 더러운 곳을 깨끗이 쓸어가고 인간이 쌓은 끝없는 욕망의 산을 시원히 허물어 버리기도 한다. 자신을 홀로 지켜내는 유씨 할머니처럼.

구명숙 숙명여대 명예교수  k9350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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