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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함께 읽는 아름다운 시] 박지웅 '창술'
허형만 시인 | 승인 2023.08.04 10:11

[여성소비자신문] 뒷산 기슭에서 창잡이와 마주쳤다

어린놈이 창끝 올려 길 막고 섰는데 서슬 세운 묵직한 본새가 예사롭지 않았다

일순간에 맞선 마음이 뻣뻣이 일었으나 철없는 때겠거니 발길을 물렸다

장대비 몇 곡에 오뉴월이 훌쩍 지나고 훔쳐보았다

창술을 연마하는지 훤칠해진 그는 하염없이 한 자루 창을 뽑아드는 중이었다

들었다. 본디 이들은 창 한 번 다 뽑는데 백 년이 걸린다는 소문을

느린 창이라지만 모름지기 무딘 끝은 아니어서

낭창낭창 치긋고 내리긋는 창 춤에 목덜미 저린 듯 새 소리 잦아들고 일찌감치 끊겨 나간 구름 한 필 서산에 흩어져 내리었다

무공이 한결 깊어 보였다

흰 눈썹을 해마다 일만 근씩 대숲에 쏟아내는 바람과 일합을 겨루었을까

창공에 쑥 장창을 밀어넣는데 급소 꿰뚫린 듯 바람 속이 서늘하였다 

그것이 아름다워서였는지 바람이 물속같이 맑아져서인지 먹빛 그늘에 숨어 나는 숨이 가빴는데

창끝에 꽃 하나 얹는데 족히 백 년이 걸리는 왕대의 창술은 그때 가장 눈부시다 했다 

 

내가 평소에 박지웅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시에 군말, 사설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아는 체하는 포맷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직 시 한 편을 위한 처절한 언어적 사유만 있을 뿐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박지웅의 시를 읽는 독자는 바로 이 언어적 사유의 깊이에 자신도 모르게 뻘려 들어감을 감지할 것이다. 시인은 말한다. “저세상과 섞여 있는 이 세상의 해안선으로 밀려오는 가면들 그중에 하나를 쓰고 살아간다.

이 삶이 보이지 않는 것에 시달리기는 해도 행복하게 견디고 있다.”고. 삶이란 결국 ’행복하게 견디는 일‘일 터. 문학평론가 엄경희는 “시인은 그 누구보다도 말에 대한 자의식을 강렬하게 가진 자이다.

글의 문체가 바로 그 자신의 존재론적 비의(秘義)를 내포하기 때문이다”라고 전제하고, “박지웅 시인의 시편에 보이는 말에 대한 처절한 자의식이 유독 예사롭지 않다”라고 평한다. 그렇다. ’시 쓰는 자아‘를 내부적으로 성찰할 때 좋은 시를 쓸 수 있다.  

허형만 시인  hhmpoe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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