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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시 읽기] 임보 '바보 이력서'
구명숙 숙명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3.07.24 11:27

[여성소비자신문] 친구들은 명예와 돈을 미리 내다보고

법과대학에 들어가려 혈안일 때에

나는 영원과 아름다움을 꿈꾸며

어리석게 문과대학을 지원했다

 

남들은 명문세가를 좇아

배우자를 물색하고 있을 때

나는 가난한 집안에서 어렵게 자란

현모양처를 구했다

 

이웃들은 새로운 터전을 찾아 강을 넘어

남으로 갔을 때

나는 산을 떨치지 못해 추운 북녘에서

반평생을 보냈다

 

사람들은 땅을 사서 값진 과목들을 심을 때

나는 책을 사서 몇 줄의 시를 썼다

 

세상을 보는 내 눈은 항상 더디고

사물을 향한 내 예감은 늘 빗나갔다

 

그래서 한평생 내가 누린 건 무명과 빈곤이지만

그래서 또한 내가 얻은 건 자유와 평온이다.

 

삶은 사람 수 만큼 다양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단 한 번뿐인 인생도 천 층, 만 층, 구만 층이라 하지 않던가. 누구나 평등하다고 해도 그 안에 머무는 생각들과 형태는 그렇게도 달라서 쉽게 헤아리기 어려운 층과 형상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임보 시인의 시‘바보 이력서’에는 어떤 삶이 그려져 있는가? 밝고 친근하게 마음을 두드린다.

임보 시인의 “바보이력서” 처럼 살아온 사람들도 적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대세나 유행이나 돈과 권력의 힘에 따라 자신의 삶을 결정하지 않고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 꿋꿋이 미래를 결정하고 “영원한 아름다움”을 꿈꾼 맑고 순수한 이력이 돋보인다. 남들이 땅을 사서 재산을 불릴 때에도 돌아보지 않고 시인은 “책을 사서 몇 줄의 시를 썼다.” 

약삭빠른 세상과는 늘 거리가 있다. “그래서 한평생 내가 누린 건 무명과 빈곤이지만/그래서 또한 내가 얻은 건 자유와 평온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보 이력서’ 덕분에 시적 화자는 안분지족의 소박하고 자유로운 삶 속에서 자유와 평온을 얻었다. 자신을 찾은 인간 승리자가 된 것이다. 오늘날은 “바보 이력서”를 쓰면서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존재할까. 

구명숙 숙명여대 명예교수  k9350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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