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오피니언 칼럼
[시인과 함께 읽는 아름다운 시] 신덕룡 '척'
허형만 시인 | 승인 2023.07.21 16:14

[여성소비자신문] 내가 사는 집은 

담장이 없어 까치발로 기웃거릴 일 없고 
대문조차 없으니 걸어 잠글 것 없다 
훤히 내다보이는 산야 또한 내 집 안마당이다 

벌과 나비와 온갖 새들이 제멋대로 드나들고 
밤이면 소쩍새까지 놀러 와 
근동은 물론 먼 이웃의 애경사까지 전해주니 
밤낮으로 한가할 틈이 없다 

어쩌다 한 번씩 
마당귀로 나와 아침 햇살에 몸 말리는 뱀을 보고 
전 재산을 빼앗긴 듯 부르르 떨다가 
주위를 둘러보기도 한다 

말없이 흘러가는 길과 구름과 
적막 앞에 
와르르 무너질 뻔했던 순간들 여럿이지만 
누군가 툭 던지듯 외롭지 않느냐고 물을 때 
못 들은 척 나는 
앞뒷문 활짝 열고 누워 
불소리 바람소리 듣는다고 중얼거린다 
 

신덕룡 시인은 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정년 퇴임을 했다. 80년대 중반 《현대문학》에 평론가로 등단해 계속 평론가로서, 특히 『환경위기와 생태학적 상상력』이라는 평론집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졌는데 2002년에 시인으로 등단하여 이미 세 권의 시집을 출간한 바 있다.

내가 목포대학에 재직하면서 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 수업을 출강할 때마다 신덕룡 교수를 만나 서로의 삶을 이야기하곤 했다. 신교수는 퇴임을 하고 난 어느 날 고향 양평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이 시집의 제목 ‘단월’은 시인이 거주하고 있는, 시인의 말대로 인간과 자연이 ‘불편한 동거’를 지속하고 있는, 지명이다. 구체적으로는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 백동길이다. 시인은 이곳에서 손수 농사를 지으며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문학평론가 고봉준 선생은 신덕룡 시인의 시를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삶이라고 평했다. 이 시에서도 ”담장“이 없고 ”대문‘이 없음은 곧 그러한 공존의 삶을 대변한다. <시인의 말>에서 아직 고독의 줄기를 잡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실은 고독하다는 의미다. 언제 훌쩍 단월을 찾아가 두 손을 꼬옥 잡아줘야겠다. 


허형만 시인  hhmpoet@hanmail.net

<저작권자 © 여성소비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