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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성상의 그 노래 그 사연]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한, 저항 담긴 빅히트가요 ‘목포의 눈물’애향가 가사공모로 문일석 작사/손목인 작곡, 1935년 목포출신 이난영 취입...유달산 달선각 아래 ‘국내 최초’ 노래비, 김대중 전 대통령 생전 애창곡
왕성상 언론인/가수 | 승인 2023.07.21 16:13

[여성소비자신문]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에 새아씨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님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님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노래

 

깊은 밤 조각달은 흘러가는데

어쩌다 옛 상처가 새로워지는가

못 오는 님이면 이 마음도 보낼 것을

항구에 맺은 절개 목포의 사랑

 

문일석(文一石) 작사, 손목인 작곡, 이난영 노래인 ‘목포의 눈물’(4분의 2박자, 라단조, 약간 빠른 트로트곡)은 ‘한국가요사에서 불후의 명곡’으로 꼽힌다. 민요풍의 가락과 구슬픈 곡조가 잘 살아있는 가요다. 김수희가 불러 히트한 ‘남행열차’와 함께 목포를 대표하는 노래이자 호남지역 상징곡이다. ‘목포의 애국가’로까지 불린다. 목포출신 대표 정치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전 애창곡이기도 했다.

‘목포의 눈물’은 호남인들 애창곡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국민가요라 해도 손색없다. 1945년 광복이전 일제강점기 때 조선인들 한이 담긴 음악이다. 북한에서도 전통가요로 인기다.

야구단 해태타이거즈 응원가로 유명

이 노래는 1970~80년대 상대적으로 차별받았던 호남사람들 설움을 달래준 노래로도 애창됐다. 호남의 한(恨)이 서린 가요였다. 호남지역야구팀 해태타이거즈 응원가로도 유명했다. 관중들은 경기가 지고 있을 땐 ‘목포의 눈물’을, 이기고 있을 땐 ‘남행열차’를 부르곤 했다. 

‘목포의 눈물’은 특히 이난영을 민족가수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녀 특유의 목소리와 우리 민족의 한이 녹아있는 가사로 빅히트한 것이다. ‘이난영’ 하면 ‘목포의 눈물’이 떠오를 만큼 그의 간판곡이다. 지금은 해마다 ‘이난영 추모 난영가요제’ 시그널음악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목포시 유달산(228.3m) 다섯 정자 중 두 번째로 꼽히는 달선각 아래에 가면 ‘목포의 눈물’ 노래비가 있다.

국내 최초 노래비로 1969년 한 목포시민이 600만원을 내놓아 세워져 관광명소가 됐다. 노래비 위 스위치를 누르면 ‘목포의 눈물’이 흘러나온다. 삼학도에 조성된 이난영 공원에도 이 곡의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노랫말, 3000여 응모작 중 뽑혀

노래가 만들어진 때는 1934년 10월. 그 무렵 서울에선 노래가사 현상공모가 있었다. 조선일보사가 OK레코드사와 전국 6대 도시 ‘애향가’ 가사를 모집한 것이다. 사람들이 엄청 몰려들었다. 그때만 해도 목포는 전국 6대 도시, 3대 항구였다.

공모결과 3000여 응모작 중 무명시인 문일석 씨 원고(제목 ‘목포의 노래’)가 당선작으로 뽑혔다. 가사소절마다 의미 있는 내용들이 담겼다. 우리 겨레의 끊임없는 이별과 애달픈 정한을 담은 것으로 시대상황과 맞아떨어져 심사위원들 눈길을 끌었다.

목포항을 배경으로 이별의 끝없는 아픔과 서러움을 노랫말로 그려내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이다. 문일석은 일본 와세다대학교 출신의 혈기왕성한 20대 청년이었다.

공모결과발표 후 제목을 ‘목포의 눈물’로 바꾸고 작곡가 손목인의 ‘갈매기 항구’ 곡이 붙여져 이듬해(1935년) 태어났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가사가 일제통치자들 비위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제동이 걸린 것이다. 시비가 걸린 건 2절 노랫말.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구절이다.

말썽이 되자 작사·작곡가가 일본경찰에 문초를 당했다.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의 대상이 일본이라며 문제 삼은 것이다. 작사·작곡가는 순수한 동기로 만든 노래며 가사에 다른 의도가 없다고 해명했으나 소용없었다. 어쩔 수 없이 가사를 ‘삼백연(三栢淵) 원안풍(願安風)’으로 바꿨다.

삼백연의 바람이 목포항 3개 섬(삼학도)을 거쳐 유달산 노적봉 쪽으로 분다는 뜻이라고 설명, 검열을 거쳤다. 훗날 ‘원안풍은’은 ‘원한 품은’으로 고쳐서 취입했다. 일본경찰 조사과정에서 가사가 바뀌긴 했지만 이 부문의 숨은 뜻은 우리 민족의 한을 말하고 있다.

일제강점에 대한 불만과 저항을 일본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과 이슈들에 빗대어 담아냈다. 1592년 임진왜란 때부터 1905년 을사늑약, 1910년 한일강제병합으로 나라가 쓰러질 때까지의 300년 한을 나타낸 것이다.

1935년 9월 첫 음반이 나오자 레코드가게마다 매진이었다. 노래가 대히트한 것이다. 다방주인들은 신바람이 났다. 노래를 듣거나 배우고 싶은 이들이 축음기가 있는 다방으로 몰려들었다. 1936년 일본에선 ‘와카레노후나우타(別れの船歌)’란 제목으로 음반이 발매돼 크게 히트했다.

애상적인 멜로디가 일본사람들에게도 사랑 받은 것이다. 노래가 뜨면서 1958년 같은 제목의 영화 ‘목포의 눈물’(감독 하한수)도 개봉했다. 로맨스·멜로물로 독고성, 황해(가수 전영록 아버지), 최봉, 전옥 등이 출연했다.

이난영 자녀들 모두 미국서 가수활동

이난영은 어려운 삶과 숱한 곡절을 겪은 가수다. 1916년 목포시 양동에서 이남순(李南順) 씨 맏딸로 태어났다. 목포공립보통학교(현재 목포북교초등학교, 1907년 11월 개교)를 4학년까지 다니다 집안이 어려워 그만두고 어머니와 제주도에서 살았다.

극장주인집 아이를 돌보면서 흥얼거리는 이난영의 노래소리를 높이 평가한 집주인이 그를 막간가수로 무대에 서게 했다. 특유의 콧소리와 흐느끼는 듯한 창법에 남도 판소리가락과 같은 한이 스며있다는 평이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16살 때인 1932년 삼천리가극단장 권유를 받아 특별단원으로 채용됐다.

그 뒤 OK레코드사 이철 사장 눈에 띄어 작곡가 손목인에게 소개돼 노래를 본격 불렀다. 이난영은 1933년 8월 태평레코드사에서 ‘지나간 옛 꿈’, ‘시드니 청춘’을 발표해 가수로 데뷔했다. 그해 10월 ‘향수’, 11월 ‘불사조’를 취입해 인기를 얻으며 1934년 ‘신 강남’, ‘밤의 언덕을 넘어’를 내놨다.

이어 신민요 ‘봄맞이’, ‘오대강 타령’을 불러 정상급가수가 되면서 ‘목포의 눈물’로 상종가를 쳤다. 1937년 ‘목포의 눈물’ 속편격인 ‘해조곡’을 불러 또 한 번 떴다. 1942년 항구노래 완결판이자 그녀 오빠(이봉룡)가 작곡한 ‘목포는 항구다’로 최고인기가수가 됐다.

49세 때인 1965년 4월 11일 알코올중독으로 서울 자택에서 세상을 떠난 그는 4남 3녀를 뒀다. 1959년 미국으로 떠난 세 자매가 가수로 성공해 “어머니 재능을 이어받았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2008년 4월 11일 목포시 산정동 삼학도에선 ‘이난영 기념공원’이 문을 열었다. 1000여 평에 ‘목포의 눈물’, ‘목포는 항구다’ 노래비와 2006년 3월 25일 파주 용미리 공동묘지에서 옮겨져 대삼학도 중턱 배롱나무 아래에 묻힌 고인의 유해 수목(樹木), 체육시설, 쉼터 등이 있다. 가수 이난영은 우리나라 제1호 수목장 주인공이다.

작사가 문일석은 이난영 일가인 김해송(이난영 남편), 이봉룡과 손잡고 대중가요 노랫말을 지었다. ‘홍등야화’(1938년), ‘사나이 걷는 길’(1938년), ‘목포의 추억’(1939년), ‘향수의 휘파람’(1939년), ‘뒷골목 청춘’(1939년), ‘그 여자의 눈물’(1940년), ‘가로등 일기’(1941년) 등의 작품이 있다. 그는 시인으로도 활동했다. 1937년 발행된 ‘호남평론’ 8월호에 ‘바닷가에서’란 시가 실렸다. 문일석은 필명으로 본명 등 정확한 신원을 알 수 없다.

옛 목포는 이름난 목화재배지

목포는 목화가 많이 난다고 해 지명이 만들어졌을 만큼 옛 목포는 이름난 목화재배지였다. 일제는 재배한 목화를 목포면화(주)에서 가공, 목포항(1897년 10월 1일 국내 4번째 개항)을 통해 가져갔다. 목화의 대표품종 육지면이 1904년 국내 처음 고하도에서 재배됨에 따라 2017년 관광용목화단지(3만㎡)도 그곳에 생겼다.

목포시는 특히 국내서 가장 긴 관광케이블카(해상0.82km+육상 2.41km)를 2018년 8월에 완공, 5고(보고·놀고·먹고·사고·자고)를 꾀하는 체류형 관광도시로 거듭났다. 지역특산물(갈치, 참조기, 세발낙지, 지주식 김, 홍어, 젓갈류)과 ‘목포 5미’(세발낙지, 홍탁삼합, 꽃게무침, 민어회, 갈치조림)가 유명하다.

왕성상 언론인/가수  wss4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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