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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성상의 그 노래 그 사연] 서해안 만리포해수욕장 배경으로 만들어진 대중가요 '만리포 사랑'1956년 반야월 작사/김교성 작곡, 박경원 노래 크게 히트 태안해변에 노래비, 만리포 예찬 시(詩)비...주변관광지 즐비
왕성상 언론인 / 가수 | 승인 2023.07.10 09:28

[여성소비자신문] 똑딱선 기적 소리 젊은 꿈을 싣고서

갈매기 노래하는 만리포라 내 사랑

그립고 안타까운 울던 밤아 안녕히

희망의 꽃구름도 둥실 둥실 춤춘다

 

점찍은 작은 섬을 굽이굽이 돌아서

구십리 뱃길 위에 은비늘이 곱구나

그대와 마주앉아 불러보던 샹~송

노젖는 뱃사공도 벙실벙실 웃는다

 

수박빛 선 그라스 박쥐양산 그늘에

초록빛 비단물결 은모래를 만지네

청춘의 젊은 꿈이 해안선을 달리면

산호빛 노을 속에 천리포도 곱구나

 

정열의 계절 여름 해변엔 낭만과 사랑의 꽃이 핀다. 피서지에 물을 찾는 이들이 줄을 잇는다. 해수욕장에서 맺어지는 사랑도 이맘때가 가장 뜨겁고 아름답다. ‘코로나19’로 발길이 뜸했던 바닷가관광지에 길손들이 몰려들면서 활기를 띄는 모습이다. 특히 해변엔 모처럼 삶이 꿈틀댄다. 그리고 그곳엔 만남과 노래가 있다.

반야월 작사, 김교성 작곡, 박경원 노래 ‘만리포사랑’은 여름이면 방송을 타는 곡이다. 서해안 대표피서지 만리포해수욕장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추억의 전통가요다. 폭스트로트풍의 4분의 2박자 곡으로 멜로디가 경쾌하다.

노래가 대중에게 처음 소개된 때는 1956년. 빠른 템포에 흥겨운 리듬, 서민적인 노랫말로 단번에 히트했다. 6·25전쟁이 멎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로 밝고 희망적인 느낌의 노래가 지치고 힘들었던 국민들 가슴을 파고들어 크게 사랑 받은 것이다. 덕분에 노래를 부른 박경원은  국민가수급으로 발돋움했다.

 노래가 히트하자 지금의 3절 가사가 새로 만들어져 2년 뒤 선보였다. 1958년 송윤선 편곡으로 재취입, 센추리레코드 음반으로 발표돼 또 한 번 인기를 모았다.

1950년대 말 해변풍속도 담겨

노랫말을 보면 그 시절 해변풍경이 그려진다. 작사가 반야월이 자신의 저서에 쓴 ‘만리포 사랑’ 관련 글 내용이 재미있다. “(노래가 만들어질 무렵은) 춘궁기가 있었고 원조자금으로 살던 시절이라 요즘처럼 레저가 일반화되지 못했다. 하지만 여름이면 벌어지는 해변의 ‘인파 축제’는 갖가지 이채로운 풍속도를 낳았다”며 노랫말 배경을 썼다.

해수욕장풍속도를 만리포백사장에 대입, 가사를 만든 것이다. 그는 “노래가 나오자 신기하게도 적중, 삽시간 애창되는 행운을 안았다”고 회고했다. 배꼽 나온 수영복, 수박빛 선글라스, 비치파라솔 밑에서 캔맥주를 마시는 젊은이들…. 그의 눈에 비친 그때 모습들이 웃음을 머금게 한다. 지금은 보통사람들 생활이 돼버렸지만 노래를 부르다보면 1950년대 시대상이 아련하게 그려진다.

그런 분위기에서 젊음의 꽃이 피고 추억도 만들어졌다. 특히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 서해안처럼 아늑하고 내밀한 곳일수록 그랬다. 톱니바퀴 같은 충남 태안지역 해안에 만리포해수욕장이 자리 잡았고, 그곳을 무대로 ‘만리포 사랑’ 노래도 태어났다.

가사에 나오는 똑딱선, 갈매기, 섬, 은모래 등이 사랑과 버물어져 감흥을 더해준다. 똑딱선은 발동기로 움직이는 작은 배다. 초기엔 디젤엔진이라 소리가 무척 크게 똑딱거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연안에서 통~통~통~ 하며 나가는 고기잡이 통통배와 같은 것으로 보면 된다.  

태안해변엔 ‘만리포 사랑’ 노래비가 있다. 1994년 8월 15일 만리포관광협회가 만리포해수욕장 해변 한 가운데 세운 것이다. 높이 220㎝, 너비 80㎝의 길쭉한 네모 돌비석으로 길손들을 맞고 있다. 비 받침돌엔 ‘만리포 사랑’ 노랫말이 3절까지 새겨져있다.

바로 옆 15m 떨어진 곳엔 2005년 7월 해수욕장 개장 50주년기념으로 세운 ‘만리포 예찬 시비(詩碑)’도 있다. 높이 6m10cm, 너비 3m45cm 크기의 돌(무게 30t)에 태안지역 림성만 서예가 글씨로 만들어졌다. 비엔 70여 편의 응모작 중 뽑힌 천안지역 박미라 시인 작품이 담겼다. 해수욕장에 노래비와 시비가 함께 있는 건 전국에서 유일하다. ‘만리포 사랑’ 노래가 자주 불리고 듣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다.

2005년 ‘전국 최고 해수욕장’ 평가

노래배경지 만리포해수욕장은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에 있는 역사 깊은 해변이다. 대천해수욕장, 변산해수욕장과 더불어 서해안 3대 해수욕장으로 꼽힌다. 1955년 7월 문을 연 이곳은 백사장 길이 3㎞, 너비 250m, 면적 20만㎡의 서해안 최대해수욕장이다.

해변엔 소나무숲이 빽빽하고 해넘이가 아름답다. 가는 모래알, 얕은 물 깊이로 사랑 받고 있다. 2005년 해양수산부 평가 때 ‘전국 최고 해수욕장’으로 뽑혔다. 태안군을 가로지르는 32번 국도 끝에 있고 태안해안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서울서 2시간이면 닿는 태안에서 18km, 서산에선 36㎞쯤 가면 나온다. 그 위로 3~4km 간격을 두고 천리포, 백리포, 십리포, 일리포가 이어진다. 모두 해수욕장이다. 1만6000여종의 꽃·나무들이 있는 천리포수목원(국내 최초 민간수목원/설립자 : 미국인으로 1979년 귀화한 민병갈), 드르니항, 안면도자연휴양림 등 보고 놀고 쉴 곳들이 많다.

풍부한 해산물은 기본이고 갯마을흥취까지 느낄 수 있다. 껍데기가 두껍고 연푸른색을 띄며 국물이 얼큰한 태안꽃게탕, 해삼창자가 별미다. 해수욕장엔 시각장애가수 이용복(1952년 6월 27일~)이 무대에 서며 손님을 맞는 카페와 펜션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

만리포(萬里浦) 지명은 조선 초기 세종임금 시절 중국 명나라 사신을 전송하며 수중만리 무사항해(水中萬里 無事航海)를 빌었던 게 유래가 돼 ‘만리장벌’로 불렸다.

‘만리’는 ‘수중만리’에서, ‘장벌’은 전별식이 열렸던 아름답고 드넓은 ‘모래장벌’에서 따온 것이다. 그 후 1955년 그곳에 해수욕장이 생기면서 ‘만리포’가 됐다. 1956년 만리포번영회는 만리포~인천 간 정기여객선(은하호)을 띄워 인천과 서울 등지의 수도권 피서객들이 오가는 길을 열었다.

반야월, 마산태생으로 5000여곡 작사

‘만리포 사랑’을 불러 유명해진 가수 박경원은 1931년 4월 3일 인천서 태어나 1955년 동국대 경제과를 졸업했다. 1952년 오아시스레코드사 전속가수로 데뷔한 그는 ‘이별의 인천항’, ‘남성 넘버원’, ‘나포리 연가’ 등 히트곡들을 쏟아냈다. 그는 2007년 5월 31일 오후 지병으로 별세했다. 아내와 2남1녀를 남겼다. 

작곡가 김교성(1904년~1961년)은 서울태생으로 어릴 때 가톨릭교회를 통해 합창단과 성극을 접하면서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중동학교를 다닐 때 독학으로 색소폰과 클라리넷 연주기법을 익혀 영화관 악사로 활동했다.

1936년 선우일선이 불러 히트한 ‘능수버들’을 작곡, 유명해졌다. 이어 ‘찔레꽃’(백난아), ‘자명고 사랑’(박재홍), ‘울고 넘는 박달재’(박재홍) 등을 작곡해 인기였다.

작사가 반야월은 1917년 8월 1일 경남 마산태생으로 본명은 박창오. 그는 1939년 태평레코드사 전속가수로 가요계에 발을 디뎠다. 김천서 열린 조선일보·태평레코드사 주최 전국가요음악콩쿠르 때 1등을 해 가수가 된 것이다. 진방남이란 예명으로 1940년 취입한 ‘불효자는 웁니다’를 비롯해 ‘꽃마차’, ‘세세년년’, ‘마상일기’, ‘고향만리 사랑만리’, ‘잘 있거라 항구야’ 등 100여 곡을 불렀다.

그러나 그는 작사가로 더 유명하다. 1942년 가수생활을 접고 작사가로 변신, 5000여 곡(2000여 미발표 곡 포함)의 노랫말을 지었다. 국내작사가 중 최다기록이다. ‘소양강 처녀’, ‘산장의 여인’, ‘단장의 미아리고개’, ‘삼천포 아가씨’, ‘아빠의 청춘’ 등 서민적인 곡의 노랫말을 주로 썼다.

추미림, 박남포, 남궁려, 금동선, 허구, 고향초, 옥단춘, 백구몽 등의 예명으로 다양한 노래의 작사를 했다. 밀양출신 작곡가 박시춘, 목포출신 가수 이난영과 함께 ‘우리나라 가요계 3대 보물’로 불린 그는 2012년 3월 26일 노환(향년 96세)으로 눈을 감았다.

2남4녀를 뒀으며 대부분 음악관련 일을 하고 있다. 고인의 고향 마산에선 ‘반야월 가요제’가 열린다. 그는 일제강점기 때의 친일행적으로 한동안 비난 받기도 했다.

왕성상 언론인 / 가수  wss4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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