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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형만 시인과 함께 읽는 아름다운 시] 김상현 '바람의 등뼈'
허형만 시인 | 승인 2023.06.30 12:18

[여성소비자신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모두 별이 되었지만

할머니는 고집스럽게 바람이 되셨다

모두 하늘을 우러르며 소원을 빌 때에도
허리 굽은 우리 할머니는 땅에 소원을 빌었다 

하늘에는 하느님이 사시는 곳이라며 
뻐꾹새 울면 참깨 파종하고 
살구꽃 필 때 수박씨 심으며

사람은 흙을 파먹고 사는 것이라 말씀하셨다 

허리 굽은 우리 할머니는 하늘의 별보다 
흙 비집고 나오는 굼벵이와 더 친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뻐꾹새 울자 
바람이 된 우리 할머니는 굽은 허리를 곧추 세우고 
참깨밭 언저리를 서성이다 돌아가셨는지 
참깨 깻단이 넘어져 있구나

90년대 초 조병화 시인은 김상현 시인을 《시와시학》에 등단시키고 그의 작품과 인품을 칭찬하신 말씀을 몇 차례 들은 적이 있다.

김상현 시인이 그린 시인들의 초상화는 전시 당시 성황을 이루었음을 기억한다. 그만큼 시인은 연필로 세밀화를 그리듯 언어로 시를 보여주는 능력이 뛰어난 시인이다. 시 「바람의 등뼈」는 이번 시집의 표제작이자 맨 첫 번째에 수록된 작품으로 김상현 시인의 시정신을 볼 수 있게 한다.

돌아가신 할머니는 하늘의 별이 된 게 아니라 바람이 되어 당신이 평생을 흙과 더불어 살아왔던 땅과 함께 계신다고 믿는다. 그 이유는 오늘 아침 밭에 나가보니 참깨 깻단이 넘어져 있는데, 그 이유는 할머니가 ”굽은 허리를 곧추 세우고/ 참깨밭 언저리를 서성이다 돌아가셨“으리라는 것이다.

시인은 말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언어가 심장에서 철철 흘러 강을 이루는 꿈을 대낮에도 꾸자”고.

허형만 시인  hhmpoe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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