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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성상의 그 노래 그 사연] 동해안 파도를 소재로 만든 대중가요 ‘파도’가수 배호 히트곡...주문진 앞바다 배경 이인선 작사/김영종 작곡, 2003년 여름 해변에 노래비 건립...같은 제목 영화-드라마도 인기
왕성상 언론인/가수 | 승인 2023.06.22 14:24

[여성소비자신문] 부딪쳐서 깨여지는 물거품만 남기고

가버린 그 사람을 못 잊어 웁니다

파도는 영원한데 그런 사랑을

맺을 수도 있으련만 밀리는 파도처럼

내 사랑도 부서지고 물거품만 맴을 도네

 

그렇게도 그리운 정 파도 속에 남기고

지울 수 없는 사연 외로워 웁니다

추억은 영원한데 그런 이별은

없을 수도 있으련만 울고픈 이 순간에

사무치는 괴로움에 파도만이 울고 가네

 

여름이다. 그늘과 시원한 물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바다, 강, 섬, 숲, 계곡에 길손들 발걸음이 잦다. ‘코로나19’로 움츠렸던 피서지가 활기를 되찾는 분위기다. 특히 바다와 해변 쪽이 그렇다. 탁 트인 수평선, 물 위를 나는 갈매기, 밀려왔다 부서지는 파도가 피서객들을 손짓한다. 이맘때면 대중가수 배호의 히트가요 ‘파도’가 생각난다.

삶과 사랑, 이별 접목시킨 노랫말

‘매혹의 가수’ 배호(裵湖·본명 배신웅)가 부른 ‘파도’는 1968년 발표된 노래다. 이인선 작사, 김영종 작곡으로 반세기가 더 지났음에도 가끔 방송전파를 탄다.

여름이면 배호가 다시 태어나는 느낌이다. 대한민국 옥관문화훈장에 추서된 국민가수이자 불세출(不世出) 소리꾼으로 세상을 떠난 지 52주기를 맞지만 ‘파도’를 들으면 그때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부딪쳐서 깨어지는 물거품만 남기고∼’로 나가는 이 노래는 배호의 영혼을 울리는 차분한 저음으로 고단한 민초들 심금을 어루만져줬다.

‘파도’는 강원도 주문진 앞바다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끊임없이 밀려왔다 쓸려나가며 하얀 물거품을 남기는 동해안 파도를 우리들 삶과 사랑, 이별을 접목시켜 노랫말로 엮어낸 것이다. 노래는 가요팬들 사랑을 받으며 히트했다.

배호는 MBC 10대 가수상 등을 받았다. 또 2005년 6월 KBS ‘가요무대’가 광복 60년 기념으로 여론조사 한 결과 배호는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은 국민가수 10인’으로 뽑혔다. 2006년 11월엔 KBS 1TV ‘수요기획’을 통해 배호 다큐멘터리(‘가객 배호’)가 방영되기도 했다.

노래가 히트하면서 2003년 7월 12일 동해안에 ‘파도’ 노래비까지 세워졌다. 강릉시가 주문진해수욕장 소돌마을 해안가 ‘아들바위공원’ 부근에서 제막식을 가진 것이다. 높이 280㎝, 너비 240㎝ 크기다.

화강암 기단에 1m 넘는 높이의 검은색 오석받침돌을 얹고 그 위에 파도형상을 조각했다. 비 앞면엔 노랫말, 뒷면엔 강릉시장의 건립경위가 새겨져있다. 비는 아름답게 파도치는 동해 해변 암반 위에 우뚝 서서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해안에 ‘파도’ 노래가 울려 퍼져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추억을 안겨주고 있다. 환경기금조성을 위해 비 옆의 돌 저금통에 동전을 넣으면 노래가 흘러나온다.

‘파도가요제’ 때 배일호 ‘파도’ 열창

2004년 여름엔 주문진 오징어축제행사의 하나로 현지에서 ‘제1회 강릉 배호 파도가요제’가 열렸다. 가수가 되기 위해 배호 모창으로 실력을 쌓아왔고 그의 노래를 좋아해 연예명까지 배일호로 지었다는 ‘신토불이 가수’ 배일호가 ‘파도’를 열창, 눈길을 모았다.

같은 제목의 영화, 드라마도 만들어졌다. 1967년 개봉영화 ‘파도(波濤)’는 최훈 감독 작품으로 김지미, 문희, 김진규, 오영일 등 스타배우들이 출연했다. SBS-TV는 1999년 4월 24일~12월 26일 주말연속극(토․일) ‘파도’를 70부작으로 내보냈다.

김한영 연출, 김정수 극본의 드라마엔 이재룡, 이영애, 김영애, 김호진, 신은경 등이 열연해 인기였다. 드라마는 노래에 나오는 파도처럼 부서지며 살아가는 가족이야기를 담았다.

‘파도’ 노래비가 유명해지면서 동해안사람들은 주문진, 강릉을 중심으로 관광객 끌어들이기에 나서고 있다. 노래비에서 조금 밑으로 가면 강릉이다.

경포호 주변엔 오죽헌, 선교장, 참소리축음기박물관, 에디슨과학박물관 등 볼거리가 많아 외지인들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소나무에 둘러싸인 강릉 초당동은 순두부와 모두부가 유명한 음식마을이다. 콩물에 바닷물을 부어 만든 두부 맛이 특이해 지역명물로 자리 잡았다.

대중가요 9곡, 서울미래유산 선정

‘파도’를 취입한 배호는 1963년 가요계에 데뷔, 만 29살 때인 1971년 가을 세상을 떠나기까지 숱한 히트곡들을 불렀다.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 낀 장충단공원’, ‘비 내리는 명동거리’, ‘누가 울어’, ‘안녕’, ‘영시의 이별’, ‘마지막 잎새’, ‘두메산골’ 등 히트한 노래가 많다. 2017년 12월 ‘돌아가는 삼각지’ 등 대중가요 9곡이 서울미래유산으로 첫 선정되기도 했다.

배호는 1942년 4월 24일 중국 산동성 제남시 경7로 위15호에서 독립투사였던 아버지 배국민 씨와 어머니 김금순 씨 사이에 1남1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그는 네 살 때 귀국, 1946년 4월부터 서울 창신동에서 살았고 창신초등학교(1949~1955년)를 다녔다.

1955년 서울영창학교(성동중 전신)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아버지가 별세하자 부산으로 가 이모의 모자원에서 살며 삼성중학교 2학년 1학기를 마쳤다. 배호는 1956년 8월 음악을 하기 위해 혼자 서울로 와 막내외삼촌(김광빈)을 통해 드럼을 배우기 시작, 가요계에 입문했다.

그는 1년 만에 드럼을 다 익혀 1958년 ‘김광빈 악단’에서 연주했다. 1960년 부평 미군부대 Camp Market 관할클럽 등지에서 2년간 악단생활을 하며 연예계에 본격 뛰어들었다. 1963년 ‘김광빈 악단’, ‘김인배 악단’에서 드럼을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김광빈 작곡·편곡의 ‘굿바이’ 등을 녹음, 첫 음반을 냈다. 그때 지어진 연예명이 배호다. 그해 데뷔곡 ‘두메산골’로 가요계에 발을 디딘 그는 가요 60년사 여론조사에서 ‘좋아하는 가수 1위’를 했을 만큼 유명했다. 음반은 독집 20여장을 합쳐 70여장을 냈다. 취입한 노래는 250여곡.

배호사랑회 등 추모모임 활발

배호는 1971년 10월 20일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진행 이종환) 출연 뒤 감기증세와 신장염 악화로 10월 30일 서울 신촌세브란스에 입원했으나 사경을 헤맸다. 가망이 없자 11월 7일 퇴원, 미아리 집으로 가던 중 의식불명에 빠져 그날 밤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

11월 11일 예총회관(현 세종문화회관) 광장에서 가수협회장으로 열린 그의 장례식장엔 하얀 소복을 입은 여성들이 수백 미터 늘어서는 등 애도인파가 몰려들었다. 고인은 경기도 장흥 신세계공원묘지에 잠들었다.

북한산과 송추 오봉산이 바라보이는 명당이다. 옆엔 어머니와 여동생 묘도 있다. 그의 어머니는 1995년 심장병으로, 누이동생은 2003년 정신질환 및 당뇨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생전의 배호는 대구공연 때 만난 여성팬과 약혼까지 했으나 임종직전 ‘눈물의 파혼’을 하는 바람에 자녀는 없다.

지금도 배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배호 라이브카페’가 2005년 7월 14일 서울 송파구에 문을 열었다. 인천시 부평 문화의 거리 부근엔 ‘배호 초상화 네온사인’도 있다.

배호사랑회 등 전국모임 또한 활발하다. 나라안팎에 1만여 팬들이 그의 노래를 부르며 추모하고 있다. 대하소설 ‘애니깽’ 작가이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인 김선영 씨는 배호의 모든 것을 망라한 ‘배호 평전’ 단행본까지 냈다.

이인선 ‘브라보 해병’ 등 작사

‘파도’노랫말을 쓴 이인선 씨도 유명한 음악인이다. 그는 1941년 서울에서 태어나 1961년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65년 ‘그대 꿈꾼 밤’(나화랑 작곡, 이미자 노래) 가사를 써 작사가로 데뷔했다. 이후 ‘돌아가는 삼각지’(배호), ‘이정표 없는 거리’(김상진), ‘네 잎 크로버’(이규항) 등 여러 히트곡 노랫말을 썼다.

특히 해병대원들 사이에서 ‘곤조가’라 통하는 ‘브라보 해병’ 등 젊음을 응원하는 노래 작사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아세아레코드 문예부장을 지낸 그는 1970년대 중반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했다. 1994년 8월 귀국, 이듬해 대한민국 국적을 다시 얻은 뒤 서울 영등포에서 홀로 살다 2014년 5월 26일 오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3세. 고인은 부인(이화숙)과 네 자녀(보람, 단아, 대한, 봄비)를 남겼다.

왕성상 언론인/가수  wss4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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