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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시 읽기] 송수권 '스침에 대하여'
구명숙 숙명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3.06.12 13:28

[여성소비자신문] 직선으로 가는 삶은 박치기지만

곡선으로 가는 삶은 스침이다

스침은 인연, 인연은 곡선에서 온다

그 곡선 속에 슬픔이 있고 기쁨이 있다

 

스침은 느리게 오거나 

더디게 오는 것

나비 한 마리 방금 꽃 한 송이를 스쳐가듯

오늘 나는 누구를 스쳐 가는가

저 빌딩의 회전문을 들고 나는 것

그것을 어찌 스침이라 할 수 있으랴

스침은 인연, 인연은 곡선에서 온다

그 곡선 속에 희망이 있고 추억이 있고

온전한 삶이 있다

그러니 

스쳐라 

아주 가볍게

천천히.

 

문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많은 것들이 스쳐지나간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스치는 것만도 억만 겁의 인연이 쌓여야 이루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스쳐가는 것들에게는 무심한 편이다.

서로 스쳐야 눈빛을 주고받고 몇 마디 이야기라도 나누는 것 아닌가. 송수권의 시 ‘스침에 대하여’는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며 인간의 향기를 싹트게 한다. 시인은 “스침은 인연, 인연은 곡선에서 온다”고 한다. “그 곡선 속에 희망이 있고 추억이 있고/온전한 삶이 있다”고 노래한다.

곡선은 신이 만들어 주신 선이라고 한다.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도 높은 산의 능선도 초가지붕도 곡선이다. 구불구불 부드럽게 생명을 품어 안는 자연의 모습이다. 삶은 스침의 연속인 것 같다.

시인은 “직선으로 가는 삶은 박치기지만/곡선으로 가는 삶은 스침이다//스침은 인연, 인연은 곡선에서 온다/ 그 곡선 속에 슬픔이 있고 기쁨이 있다”고 직선과 곡선의 삶의 의미를 잘 보여주고 있다.

스침이 서로 살짝 마주치거나 닿으면서 지나가는 것들이라면 더 깊이 속살까지 닿아 있는 경지는 끊기 어려운 인연이라 할까. 스치고 지나간 것들이 때로는 추억으로 남기도 하고 후회로 아프기도 하는 것 같다. 우리의 일상도 구불구불 흐르는 따뜻한 곡선이 되기를 바라며, 곡선의 스침을 생각해 본다. 

구명숙 숙명여대 명예교수  k9350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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