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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성상의 그 노래 그 사연] ‘5.18민주화운동’ 때 고립된 광주 나타낸 대중가요 ‘바위섬’조선대 학생으로 현장 있었던 배창희 작사/작곡...1984년 김원중 가수데뷔곡 처음 대학가에서 불린 뒤 1985년 KBS ‘가요 톱10’ 2위, 북한서도 인기
왕성상 언론인 / 가수 | 승인 2023.05.12 11:20

[여성소비자신문]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 인적 없는 이곳에

세상 사람들 하나 둘 모여들더니
어느 밤 폭풍위에 휘말려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은 바위섬과 흰 파도라네
바위섬 너는 내가 미워도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
다시 태어나지 못해도 너를 사랑해
이제는 갈매기도 떠나고 아무도 없지만
나는 이곳 바위섬에 살고 싶어라

바위섬 너는 내가 미워도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
다시 태어나지 못해도 너를 사랑해
이제는 갈매기도 떠나고 아무도 없지만
나는 이곳 바위섬에 살고 싶어라
나는 이곳 바위섬에 살고 싶어라

배창희 작사․작곡, 김원중 노래 ‘바위섬’은 세대가 다르고 제목도 몰라도 들으면 ‘아~ 그 노래!’라며 고개를 끄덕일 만큼 잘 알려진 대중가요다. 4분의 4박자, 슬로우고고 리듬으로 멜로디가 조용하게 이어진다.

시적(詩的)인 가사에다 가락이 부드럽다. 1984년 만들어져 1985년 본격 선보인 이 노래는 40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묵은 느낌이 안 든다. 우리들 삶과 바위섬이 접목된 노랫말의 뜻이 깊다.

잔잔히 흐르는 전주에 ‘쏴아~ 쏴아~’ 하는 바닷가 파도소리가 배경음악으로 깔려 낭만적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래서 바위섬을 의인화해 만든 애절한 사랑노래쯤으로 아는 이들이 많다. 노래제목이 ‘바위섬’이라 그런 느낌의 가요로 보기 쉽다.

그러나 ‘바위섬’은 그런 가요가 아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때 외톨이가 된 광주를 바위섬에 빗대 은유적으로 나타낸 곡이다. 신군부 계엄군들에 에워싸인 광주를 망망대해 외로운 섬으로 비유해 만든 것이다. 광주의 아픔을 소리로 에둘러 그려낸 이 노래의 사연과 가사를 새겨보면 그 시대에 대한 뜨거운 고민이 베여있음을 알게 된다. 

군사정권 땐 작사 작곡 배경 밝히지 않아

그때 조선대학교 학생으로 광주에 살고 있었던 배창희 씨는 1980년 5·18현장을 보고 당시 상황을 음악에 대입, 노랫말을 쓰고 곡까지 붙였다. 그는 1982년 여름 조선대합창단과 고흥군 소록도에 봉사 갔다가 악상을 떠올려 완성했다. 외로운 섬 소록도가 5·18민주항쟁 때의 광주처럼 느껴져 만든 것이다.

그는 노래를 만들고도 한동안 작사 작곡 배경을 말하지 않았다. 민주화를 위해 계엄군에 맞섰던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몰아붙인 군사정권의 서슬이 시퍼래 입을 열지 않은 것이다. 노래사연은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우연한 기회에 밝혀져 화제가 됐다. ‘바위섬’은 배 씨 또래인 대학생(전남대 2학년) 김원중의 가수데뷔곡이자 간판곡이 됐다.

‘바위섬’은 1985년 광주·전남지역가수들이 만든 옴니버스포크음반 ‘예향의 젊은 선율’ A면 첫 곡(타이틀곡)으로 실렸다. 광주지역 포크음악중심지인 사직동의 한 라이브카페에서 제작된 ‘예향의 젊은 선율’은 전국 최초 지역음반이다. 광주음악의 시발점으로 의미가 크다.   

‘예향의 젊은 선율’은 김원중이 고시공부 하던 대학생시절 마음 맞는 아마추어가수들과 만든 것이다. 대중가요활동이 서울에 몰려있는 중앙집권에 대한 반기였다. 음반은 대학가요제 수상자 박문옥·김정식·김종률 씨와 신상균·김원중 씨의 합작품이다. 이를 계기로 김원중은 자신을 ‘국내 첫 지방분권가수’라 소개한다. 

‘바위섬’은 처음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대학축제무대 등 대학가에서 ‘캠퍼스 송(Song)’으로 불리며 전국에 퍼져나갔다. 김원중은 음반이 나왔을 때만 해도 가수의 길을 걸으려 하지 않았다. 노래가 방송전파를 타고 갑자기 알려지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바위섬’은 1985년 ‘전국인기가요 100곡’ 중 6위를 해 김원중이 프로가수로 이름을 올렸다. 특히 노래사연이 알려지자 그해 KBS ‘가요 톱10’ 2위, 라디오방송 노래차트 1위에까지 올랐다. 음반을 찾는 사람들도 크게 늘었다.

‘바위섬’은 동요 이상으로 유명해져 어린 유치원생들까지도 즐겨 불렀다. 선율은 서정적이나 현실을 이야기한 이 노래는 1980년 5월 이후 광주의 아픔을 담은 지역대표곡으로 빛을 본 것이다. 지금도 ‘광주’하면 ‘바위섬’이 떠오른다.

김원중, 거리공연가수로 유명

‘바위섬’은 북한에도 잘 알려져 있다. 김원중은 2013년 6월 16일 벗인 가수 하성관과 KBS-1TV ‘콘서트 7080’ 무대에 올라 ‘바위섬’을 부른 뒤 “이 노래가 북한에서도 인기다”는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2001년 ‘금강산 대토론회’ 등 공연차 북한에 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바위섬’을 알고 있고 호응도 컸다고 전했다. 그는 CBS 방송에 나가 “한번은 평양시내 호텔종업원에게 ‘바위섬’ 노래를 아느냐고 물어봤더니 안다며 앞 소절을 따라 불러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김원중은 1984년부터 이 노래를 ‘빚진 사람’의 마음으로 부른다고 했다. 그는 1959년 전남 담양군 봉산면에서 태어나 전남대 농업경제학과를 졸업했다. 광주에 살면서 가수활동 중이다. 특히 광주지역노래를 사랑하고 관심이 많은 민중가수다.

전두환 정권 때인 1987년에 선보인 그의 노래 ‘직녀에게’(박문옥 작곡)가 발표직후 금지곡이 됐다. 견우-직녀의 설화를 빌려 통일을 바라는 문병란 시인의 시를 딴 가사였지만 끝내 방송을 타지 못했다. 광주출신 한양대 학생인 정오차 씨가 1981년 MBC 대학가요제 때 불러 대상을 받은 ‘바윗돌’도 금지곡으로 묶였다. 5·18 때 광주에서 숨진 친구 묘비를 상징하는 노래란 이유에서다.

김원중은 거리공연가수로도 유명하다. 1981년 군에 가서 고초를 당했던 그는 1989년 전국 처음 길거리공연을 시작했다. 실내무대에서 열린 5․18추모공연 때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알만 한 사람들만 앉아있는 것을 보고 밖으로 나간 것이다. 그렇게 닻을 올린 거리공연은 이듬해 광주 금남로 광주가톨릭센터 앞 5월 추모공연으로 규모가 커졌다.

전국에서 노래패들도 모여들었다. 5월 추모공연의 전국화가 이뤄진 셈이다. 그는 5.18추모거리공연(1989년), 연세대 노천극장 연합공연(1991년), 5.18영령 49재 49일 공연(1997년) 등을 통해 민중정서를 노래했다.

그는 1999년 독집앨범 ‘꿈꾸는 사람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지’를 냈다. 그해 12월 4~6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 창작뮤지컬 ‘못 다한 사랑’에선 주인공 백범(김구)역을 맡아 뮤지컬배우로도 데뷔했다. 2008년 5집 음반 ‘느리게 걸어가는 느티나무’를, 2010년 4월엔 ‘5․18 30주년 기념음반’을 냈다.

2014년 4월 28일 광주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열린 달거리공연 땐 ‘세월호 참사 희생자 돕기 성금모금행사’를 이끌었다. 2018~19년엔 북한어린이들을 위한 ‘빵 보내기 운동’ 공연을 펼치고 관련단체에 공연수입금도 전했다. 자신이 운전하는 ‘무대가 있는 자동차’에 공연팀(가수, 시인 등)과 함께 국내·외 주요도시 길거리공연도 추진 중이다. 

그는 일본무대에도 자주 섰다. 1998년 일본초청공연, 1999년 ‘일본 7개 도시 순회공연’에 이어 2004년 ‘아시아의 바람, 동경, 오키나와’, 2005년 7월 ‘아시아의 바람 페스티벌 Aaa연합, 공연, 하코다데’, 2005년 11월 우타고에 제전 ‘생명의 하모니1’, ‘Human Festa 2’ 히로시마, 2006년 ‘일본 오사카·고베·사이타마·도쿄·히로시마 순회공연’을 했다.

배창희 ‘도드리’ 창단 등 국악대중화 앞장

‘바위섬’을 만든 배창희 작곡가는 광주 남부대학교 실용음악학과 교수로 가요부터 국악곡, 뮤지컬곡 등 다양한 곡을 쓰는 음악인이다. 작사가도 겸한다. 전남 화순출신으로 광주고, 조선대 전기과를 졸업했다.

그는 1985년 결성된 노래패 ‘꼬두메’(‘꼭꼭 숨은 두메’란 뜻의 순우리말로 무등산 근처 동네 이름)에 들어가 본격 작곡가 길을 걸었다. 1997년 민간창작국악단 ‘도드리’ 창단에 참여, 국악대중화에도 앞장섰다. ‘시집가던 날’, ‘실개천’, ‘무등산 연가’, ‘꽃상여’, ‘허수아비’, ‘그 땅 그 하늘’ 등의 곡을 만들었다.

2013년 8월 광주시민들 도움으로 친정을 찾은 다문화여성 카이앙렝 씨 사연을 담은 노래 ‘엄마 찾아 캄보디아’도 작곡했다. 2009년엔 음반 ‘순천만의 꿈’ 감독을 맡아 예술성을 높였다.

왕성상 언론인 / 가수  wss4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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