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의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와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 과정에서 KT가 연루된 사실이 확인되면서 KT가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KT 홈고객부문 사장을 맡고 있는 서 사장이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의 부탁을 받고 2010년 7월 7일 오전 KT 대리점 사장의 자녀 명의로 차명전화를 만들어줬다.

검찰이 민간인 사찰사건을 수사하던 지난 2010년 7월 7일. 공직윤리지원관실 장진수 주무관은 민간인 불법사찰 자료를 폐기하러 가기 직전 최종석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 행정관으로부터 ‘차명 휴대전화’ 일명 대포폰을 건네받았다. 그런데 문제의 이 차명전화가 서유열(56) KT 사장이 개설해준 것으로 밝혀졌다.

16일 KT 관계자는 <시사코리아>와의 통화에서 “서 사장은 2010년 7월 초 이 전 비서관으로부터 ‘업무적으로 잠깐 쓰겠다’는 요청이 있어 휴대전화를 제공한 바 있다”며 “그러나 해당 전화가 (민간인 불법사찰 증거인멸 사실을 숨기기 위해) 보도된 바와 같이 사용돼 당황스럽다”고 밝혔다. 또 “해당 전화는 대포폰이 아닌 차명폰이다. 대포폰은 신원 불상 사람의 단말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이 경우와 다르다”고 해명했다.

과거 정권실세들 바람막이 못돼

서 사장은 경북 경주 출신으로 2009년 그룹쉐어드서비스(GSS) 부문장(부사장)으로 KT의 고용·노동 업무를 맡으면서 청와대에서 같은 업무를 담당하는 이 전 비서관을 알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포항 출신의 이 전 비서관과 같은 TK(대구·경북지역) 출신인 데다 서 사장의 형은 이명박 대통령과 같은 포항 동지상고 출신이어서 범영포(영월·포항)라인으로 가깝게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통합당 박용진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서 사장은 이석채 회장 취임 이후 승승장구했고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절친하다고 해서 영포모임에도 자주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최근 KT의 바람막이가 될 수 있는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이어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마저 속속 구속된 마당이라 서 사장의 거취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서 사장이 임원 자격을 상실할 가능성이 클 것이란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KT의 규제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는 이와 관련하여 검토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 9조 임원 결격사유는 “전기통신사업법, 전기통신기본법, 전파법, 정보통신망법 등을 위반해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끝난 날로부터 3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임원으로 임명을 하지 못하게 하거나 현직 임원이라면 “당연히 퇴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 사장이 대포폰을 건넨 것이 불법성을 확인받고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 받는다면 서 사장을 퇴직시켜야 하는 사유가 된다는 것이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 30조(타인 사용제한)는 “누구든지 전기통신사업자가 제공하는 전기통신역무를 이용하여 타인의 통신을 매개하거나 이를 타인의 통신용으로 제공하여서는 안된다”고 정하고 있다.

또 이 법 벌칙 조항(90조)은 “위반하여 전기통신사업자가 제공하는 전기통신역무를 이용하여 타인의 통신을 매개하거나 이를 타인의 통신용으로 제공한 자”에 대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규정하고 있다. 서 사장이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에게 대포폰을 판매했다면 전기통신사업법 30조를 위반한 것으로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는 상황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관련 법령에 위반됐다는 것이 전제돼야 하고 법에서 말하는 임원이 맞는지도 판단해야 한다”며 “임원 결격 여부는 이에 대한 판단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KT측은 전기통신사업법의 취지와 관련해 서 사장이 차명폰을 제공한 것은 전기통신사업법 취지에 위배되는 내용이 아니라고 못박았다. 5월 17일 <시사코리아>와 통화한 KT 관계자는 “연인이나 부부, 형제간에 다른 사람 명의의 폰을 사용했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영리 목적이나 사업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다른 사람 명의의 폰을 사용했을 때 문제가 된다는 것이 전기통신사업법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또 “검찰에서 문제가 있다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이상 서 서장이 차명폰을 제공한 것이 전기통신사업법에 저촉된다고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기업 민영화 문제 대두

KT 사장의 정권 실세 연루 의혹은 늘상 제기되어 왔던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문제점을 또 한번 부각시켜주고 있다. KT는 민영화된 지 10년이 넘었다. 하지만 주인 없는 기업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붙으면서 낙하산 인사나 정부 입김에 휘둘리는 ‘무늬만 민영화’된 기업이라는 지적을 받아 왔다.

2002년 5월 민영화된 KT는 정부 지분이 한 주도 남아있지 않다. 현재 국민연금이 최대주주로 6.64%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일본 통신회사인 NTT도코모가 5.46%, 영국 투자회사인 실체스터 인터내셔널 인베스터가 5.01%의 지분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이밖에 외국인이 49%, 자사주 6.82%, 우리사주 1.36%, 개인 및 기관 투자가가 25.7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박영준 전 차관이 인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 공기업을 둘러싼 추문이 언제든 불거질 것이라고 우려해 왔다. 박 전 차관은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캠프의 외곽 조직인 ‘선진국민연대’를 조직·관리했다. 이들이 정권 출범 후 공기업에 대거 진출하면서 낙하산 인사에 대한 논란이 심심치 않게 불거졌다.

금융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역대 정부 중 이명박 정권에서 낙하산 인사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며 “특히 사외이사제도 마저 감시와 견제라는 본연의 취지와 달리 현 정권에 대한 로비 창구로 악용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김희정 기자  penmoim@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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