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매년 10월 13일이면 세계 여러 곳에서 ‘실패의 날’ 기념행사가 열린다. 온 세계의 루저(loser, 실패자, 패배자)들에게 공감과 격려를 주고 그들의 재도전을 응원하자는 것이다.

‘세계 실패의 날’ 행사는 2010년 10월 13일에 세계적인 창업 강국인 핀란드에서 처음 열렸다. 핀란드는 한때 휴대전화의 세계 점유율 1위를 자랑하던 국민기업 노키아(Nokia)가 있었다.

그러나 노키아의 갑작스러운 몰락으로 국가 경제의 위기를 맞이하였고 벤처 창업과 같은 도전을 감행하기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컷다. 이때 알토대학교(Aalto University)의 창업동아리인 알토이에스(AaltoES)가 ‘실패의 날(Day for Failure)’을 제안했다.

이러한 알토 대학생들의 제안에 핀란드 정부는 물론 기업과 단체가 호응하였고 그 후 유럽은 물론 전세계적인 행사로 번져 나갔다. 우리나라에서도 2018년 대구에서 처음으로 실패박람회(Fail Expo)가 열려 ‘실패를 격려하는 문화조성’을 주제로 각종 기념행사를 가졌다.

그후에도 매년 열리는 ‘실패의 날’을 기념하는 박람회로서 우리 정부와 기업 및 단체의 지원을 받아 ‘실패 경험의 사회적 자산화와 정책화’ 그리고 실패자들의 재도전 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실패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삶에 겪는 크고 작은 실패가 성공보다 훨씬 많다.

더욱이 자유와 경쟁이 현대 자본주의 본질이고, 경쟁에는 반드시 이기는 자와 지는 자가 발생한다. 게다가 사회적인 동물인 우리는 인간관계의 실패가 주는 정신적 충격(trauma)이 개인은 물론 기업과 사회 발전에 장애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누구나 겪는 실패를 대하는 자세나 태도는 나라 또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국가들은 ‘실패 관용 사회’라고 여길 정도로 실패를 삶의 과정으로 여긴다. 따라서 실패 후 절망이나 패배 의식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실패의 경험이 오히려 존중을 받는다. 때로는 훈장을 받은 것처럼 이를 교훈 삼아 성공을 향해 당당하게 나아간다.

이에 비해 우리 사회에서는 실패를 죄악시하며 경멸의 눈초리로 냉대하곤 한다. 실패자에 대하여 격려보다는 오히려 루저라는 영어 단어를 쓸 만큼 비하하고 조롱섞인 호칭으로 자신들로부터 격리시키려는 ‘실패 비하 사회’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한번의 실패만으로도 패배자라는 낙인이 되어 슬픔에 젖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심하면 실패는 곧 끝이라는 패배의식 때문에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불행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처럼 실패를 대하는 문화적인 차이가 있지만 누구나 자신의 실패를 원하거나 좋아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실패에서 오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오히려 실패를 교훈삼아 성공의 법칙을 찾아내려는 노력과 연구 즉, 실패학(Failure study)이 점차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실패로부터 성공의 비결을 찾기 위한 노력은 임진왜란의 비극을 피하지 못한 패전의 원인과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서술한 류성룡(1542-1607)의 징비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해왔다. 그러나 이것을 학문적으로 체계화 한 것은 일본의 하타무라 요타로(Yotaro Hatamura) 도쿄대 교수이다.

실패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하타무라 교수는 사람이 성장하는데 실패는 불가피함을 인정하고 실패에 대처하는 사람 또는 기업이 실패 대처법을 연구함으로써 실패의 반복을 예방하고 성공의 비결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 후 일본은 물론 미국 등 세계 여러나라에서 실패를 주제로 하는 연구가 활발해지고 대학의 강의 과목으로 개설 되었으며 컨설팅 및 연구소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울러 실패학의 대중화로 개인은 물론 기업과 정부에서까지 실패학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과 캠페인이 늘어나고 있다. 

실패학의 활용이 가장 활발한 나라는 하타무라 교수가 실패학을 창시한 일본이다. 각종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하는 일본으로서 비슷한 실패가 반복되지 않도록 안전도를 높이기 위해서도 기업은 물론 정부 기관에서 실패학이 높은 조명을 받고 있다.

일만 번의 실패 끝에 백열등의 필라멘트를 만드는데 성공한 ‘실패왕’ 에디슨(T.A.Edison)의 후예들답게 미국인들은 실패에 무척이나 관대하다. 창사 이후 6만여 종의 신제품을 시판해온 미국의 3M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보다 무엇이든지 실패하는 것이 더 낫다”라는 말로 실패에 관대하고 창의성을 높이는 기업문화를 자랑하고 있다.

2009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의 페일콘(Failcon; fail+conference)은 미국 첨단 산업 기지인 실리콘밸리의 실패박람회로서 많은 기업인들은 물론 운동선수들까지 모여 실패의 경험과 교훈을 나누며 재도전의 기회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학에 개설된 실패학 강의가 인기를 끌고 있으며 실패학 관련 서적이 상당수 출판되어 읽히고 있다. 세계 실패의 날을 기념하는 실패박람회는 물론 기업에서의 관심도 많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09년 우리나라 최초로 ‘실패경영연구소’를 설립하였고 최근에는 적능검사(GSAT)에서 관련 문제가 출제된다고 한다. 

다양한 실패 사례를 모아 분석한 최재천 변호사는 그의 책에서 인간을 ‘실패하는 동물’이라고 부르며 우리나라의 실패 비하 문화를 실패에 너그러운 문화로 전환하고 패자부활의 재도전을 위한 제도와 ‘실패의 플랫폼’ 구축을 제안하고 있다. 공감이 가는 제안이다.

사람이 태어난 후 수없이 넘어지는 과정을 거쳐 일어서고 걸음마를 배우며 자라왔고 날마다 삶이 경쟁의 연속선상에서 있는 우리에게 실패는 단지 성공으로 가는 한 과정으로 여기는 실패 가치의 사회적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실패의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하고 원인을 분석함으로서 대책 수립 후 재도전하기 위해서는 실패 경험을 사회적인 자산으로 만드는 실패학의 활용이 요구된다. 실패의 가치를 알고 새로운 실패문화의 정착을 위해서도 세계 실패의 날을 기념하고 좀 더 잘 활용되어 지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의 그릇된 ‘실패 비하 문화’가 ‘실패 관용 문화’로 전환되어야 하겠다.

강창원 건국대학교 명예교수  kkucwka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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