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얼굴을 벗고 오르라

일상의 알몸은 팽개치고 오르라

가장 화려한 의상을 두르고

거기 맞는 가면을 고르라

​

원하는 자에게

언제나 배역은 주어졌다

연기에 지친 자들이 어깨를 늘이고

하나씩 객석으로 돌아가

손뼉을 치며 막이 내리길 바라도

​

멈추지 마라

각본엔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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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는 언제나 춥다

가는 곳마다 무대는 마련되어 있다. 가정에서는 부모의 무대가 주어져 있고, 일터에 가면 직책에 맞게 일을 잘 해내야 할 무대가 있다. 오늘 하루도 “내 얼굴을 벗고, 일상의 알몸은 팽개치고” 무대 위에서 맡은 바 역할을 다 하려고 시간을 쪼개며 뛰었을 것이다.

나는 누구의 자식이고 누구의 배우자이며 또 누구의 부모가 되어 있다. 그리고 여러 사회적 역할이 맡겨지고 애써 수행하고 나면 다시 새로운 역할이 맡겨진다. 삶은 역할 수행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인은 이렇게 외친다. “멈추지 마라/각본엔 끝이 없다”.

배우는 인기를 떠나 어떠한 배역을 맡게 되어도 부단히 연습하며 무대 위에서 완벽한 연기를 보여주려고 노력해야한다. 조연의 연기가 부족하면 연극이 조화로운 역동성을 잃어 주연도 빛나지 못하고 관객도 지루해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무대 위는 언제나 춥다”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사람의 마음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형성되며, 그림자와 같은 페르소나(persona) 는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고 자아의 어두운 면이라고 주장한다. 페르소나는 일종의 가면으로 집단 사회의 행동 규범 또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여러 가지 가면을 바꿔 쓰며 살아감을 뜻한다. 인생은 한 편의 연극과 같다고도 하지 않던가. 누구든 배역이 주어지면 그 배역에 맞는 가면을 고르고 진정한 연기를 펼치려고 한다. 그런데, 거기서 과연 ‘나’를 찾을 수 있을까? 시인의 말대로 무대 위는 언제나 추울 것 같다. 끝내 나를 찾지 못한다면.

구명숙 숙명여대 명예교수  k9350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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