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아름다운 이 강산을 지키는 우리

사나이 기백으로 오늘을 산다
포탄의 불바다를 무릅쓰면서
고향 땅 부모형제 평화를 위해

조국의 푸른 바다 지키는 우리
젊음의 정열 바쳐 오늘을 산다
함포의 벼락불을 쏘아붙이며
겨레의 생명선에 내일을 걸고

자유의 푸른 하늘 지키는 우리
충정과 투지로서 오늘을 산다
번갯불 은빛 날개 구름을 뚫고
찬란한 사명감에 날개를 편다

조국의 빛난 얼을 지키는 우리
자랑과 보람으로 오늘을 산다
새 역사 창조하는 번영의 이 땅
지키고 싸워 이겨 잘 살아가자

<후렴>

전우여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멸공의 횃불 아래 목숨을 건다

 

군가는 군인정신을 다지고 단합으로 한 몸이 되게 하는 힘이 있다. 전쟁 때 승리를 이끄는 ‘예술적  무기’다. 싸워 이길 용기와 사명감을 불어넣는다.

군가 ‘멸공의 횃불’을 놓고 말들이 많다. 발단은 지난 10월 1일 충남 계룡대 대연병장에서 열린 ‘제74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 때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처음인 행사모습은 방송 3사(KBS, MBC, SBS)와 KTV를 통해 생중계됐다.

문제는 마지막순서인 ‘멸공의 횃불’ 제창 때다. 방송자막에 나온 노래제목이 ‘승리의 횃불’로, 가사 중 ‘멸공’은 ‘승리’로 바뀌었다. 실제 제창은 모두 ‘멸공’으로 불렀다. 그럼에도 노래와 TV자막이 맞지 않아 혼란을 빚었다. 국방부 관계자는 “초청된 외빈, 외국군 대표를 배려해 ‘멸공’ 대신 ‘승리’로 용어를 바꾼 것”이라고 설명했다.

4분의 4박자 ‘행진곡으로 씩씩하게’

우리나라 10대 군가의 하나로 꼽히는 ‘멸공의 횃불’은 서정모 작사, 라화랑 작곡으로 1975년 발표됐다. 노랫말은 1~4절로 돼있다. 사나이 기백으로 고향땅, 부모형제, 평화를 위해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는 내용이다. 각 절 순서대로 육군, 해군-해병대, 공군, 예비군 등의 내용이 실렸다.

4분의 4박자, ‘행진곡으로 씩씩하게’ 부르도록 돼 있다. 합창을 하면 흥겹고 힘이 솟는다. 입대 후 훈련 때 배우거나 군 행진곡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 군에 갔다 온 사람이면 거의 다 안다. 한 인터넷커뮤니티의 군가인기투표에서 ‘멸공의 횃불’이 2위를 했을 만큼 잘 알려져 있다.

이 노래는 국방부 공모에서 뽑힌 작품이다. 작사를 한 서정모는 그때 현직군인으로 상병이었다. 그는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 눈 내린 전선을 우리는 간다~”로 나가는 군가 ‘전선을 간다’(작곡 라화랑)도 작사했다.

‘멸공의 횃불’은 신세대장병들 입대가 늘면서 젊은이에게 맞도록 손질됐다. 연예병사로 복무했던 팝페라가수 박완과 힙합그룹 다이나믹 듀오가 현대적으로 편곡해 부르기도 했다. 1970년대 맨 처음 나온 노래와 리듬, 목소리 가락이 새롭게 들린다.

노래가 만들어진 때는 박정희 대통령시절, 군가 전성기 때다. 월남패망, 미군철수 움직임 등 국제정세 급변과 자주국방이 강조된 게 계기였다. ‘사나이 한목숨’ 등 군가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멸공의 횃불’도 그런 흐름에서 나왔다. 육군 논산훈련소 경례구호도 ‘멸공(滅共)’이었다. 육군훈련소, 카츄사부대, 어느 포병여단에선 로고송으로도 불렀다.

노랫말 중 ‘멸공’문구에 관심이 쏠린다. 공산주의, 공산주의자를 없앤다는 말이다. 멸공용어가 본격 쓰인 건 50여 년 전.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이 대만의 ‘자유중국기념식’에 메시지를 보냈다.

“공산세력이 영원히 붕괴할 때까지 단결하자”는 내용이었다. 6·25전쟁 때 발행된 신문에도 ‘멸공전선에 총무장하자’ 같은 표현이 있었다. 1960~70년대 군대 경례구호로도 ‘멸공’을 썼다. ‘충성, 단결, 필승’처럼 꽤 퍼져있었다. 반공포스터・표어에도 ‘멸공’문구가 단골로 들어갔다. 그러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서 서서히 사라졌다.

아울러 국군군가임에도 1절이 육군으로 시작하는 바람에 해군, 해병대, 공군은 잘 부르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훈련소에서 해군은 ‘해군가’・‘바다에 산다’를, 공군은 ‘공군가’・‘빨간 마후라’・‘보라매의 꿈’ 등을 합창한다. 해군사관학교나 해군기초군사교육단에선 국군공통군가 ‘진짜 사나이’, ‘최후의 5분’, ‘너와 나와 함께’를 부른다.

​‘멸공의 횃불’ 2016년 은행광고에도 등장

‘멸공의 횃불’은 2014년 11월에도 뜬 적 있다. 유명 음원·포털사이트 검색순위 1위에 올랐다. 병역기피의혹으로 재판 받은 가수 MC몽이 컴백하면서다. 누리꾼들이 반감을 나타내며 벌인 일이다.

그런 가운데 여성노래그룹 헬로비너스가 그해 11월 10일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열린 제6회 입영문화제 때 ‘멸공의 횃불’을 불러 뒷말이 나왔다. ‘끈적끈적’, ‘오늘 뭐해’, ‘비너스’에 이어 앙코르곡으로 ‘멸공의 횃불’을 열창했다. 그러자 병역기피의혹을 받은 MC몽을 깎아내리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멸공의 횃불’은 누리꾼들이 MC몽을 공격하기 위해 음악사이트와 포털사이트에서 집중 검색했던 노래다. MC몽이 새 음반과 동시에 음악차트를 휩쓸자 반발의 뜻으로 ‘멸공의 횃불’을 검색하고 미리듣기하면서 음악차트순위와 실시간 검색어순위에서 끌어내리려 했다.

2016년 은행광고에도 ‘멸공의 횃불’이 등장, 화제였다. 기업은행이 ‘멸공의 횃불’을 활용한 새 IBK나라사랑카드 광고를 선보였다. 군가 ‘전선을 간다’와 함께 ‘간다’편과 ‘산다’편으로 만든 것이다. 노랫말을 빌어 국방마트(PX), KTX·고속버스, 놀이공원 할인 등 카드혜택들을 재미나게 소개했다.

2017년 9월 같은 제목의 단편영화 ‘멸공의 횃불’(감독 이우석)도 나왔다. 남한 귀순용사(리홍남) 암살작전을 펴기 위해 서울로 온 공작원이야기가 담긴 작품이다. 러닝타임은 14분 9초. 그해 9월 12일~17일 CGV 서울 영등포 및 꿈이룸학교 등지에서 열린 제9회 초단편영화제 때 상영됐다.

나화랑, 우리 가요 1세대 대표작곡가

‘멸공의 횃불’ 작곡을 한 나화랑은 김천출신의 작곡가, 편곡가이자 가수, 연주자, 음반제작자다. 한국대중가요 1세대의 대표적 작곡가다. 본명은 조광환(曺曠煥). 1921년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에서 넷째아들로 태어났다. 작사가 고려성(본명 조경환)의 셋째아우다.

그는 원래 가수였다. 1942년 제2회 레코드예술상(전국 13도 신인가수 대항 콩쿠르)에 응모, 상을 받았다. 이후 태평레코드사 문예부장 박영호로부터 ‘나화랑’이란 예명을 받아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1943년 8월 데뷔곡은 가요 ‘삼각산 손님’・‘청춘풀이’. 그러나 가수로선 뜨지 못해 작곡가로 길을 바꿨다. 김천에서 음악교사로 있을 땐 봉계초등학교 교가, 김천서부초등학교 교가를 작곡했다. 1948년 6월 서울레코드사가 문을 열자 서울로 왔다.

군 생활 때도 음악을 했다. 육군본부 군예대 악단장(1952년), 공군 정훈음악대에서 군가작곡가, 지휘자(1954년)로 활동했다. 그해 12월 킹스타레코드사 전속작곡가 겸 문예부장으로 들어가 작곡·편곡활동을 본격화했다.

특히 제대 후 입으로 전해져오던 우리 민요를 체계적으로 정리, 편곡했다. 국내 최초 민요LP판을 내면서 200종이 넘는 민요와 신민요, 대중가요계 민요음반을 만들었다. 우리 가요에 맘보를 비롯한 서양의 스윙, 탱고, 블루스리듬을 접목시킨 ‘선율의 마술사’로 불린다.

1956년엔 KBS(서울중앙방송국) 경음악단 상임지휘자가 됐다. 대한레코드작가협회창립 맴버로 손석우, 황문평, 전오승, 김인배, 송민영 등과 한국방송작가그룹을 만들어 건전가요보급에 힘썼다. 1962년 라미라레코드사를 경영하기도 했다.

이후 지구레코드사, 그랜드레코드사, 대도레코드사 전속작곡가로 뛰었다. ‘무너진 사랑탑’, ‘울리는 경부선’, ‘닐리리 맘보’, ‘도라지 맘보’, ‘향기 품은 군사우편’, ‘뽕 따러 가세’, ‘가야금 타령’, ‘청포도 사랑’, ‘비의 탱고’, ‘이정표’, ‘이국땅’, ‘낙엽의 탱고’, ‘핑크리본의 카드’, ‘열아홉 순정’, ‘님이라 부르리까’, ‘정동대감’, ‘울산 큰 애기’ 등 500여곡을 작곡했다.

도미, 손인호, 박재란, 남일해, 이미자 등의 가수를 배출시킨 작곡가 겸 라미라레코드사 경영주, 음반제작자로 우리 대중가요를 크게 부흥시킨 음악인이다. 그는 1983년 11월 17일 서울 경희의료원에서 별세했다.

김천에 ‘고려성·나화랑 형제 노래비’ 

고인의 발자취는 그의 고향 김천에 숨 쉬고 있다. 2008년 나화랑기념사업회(초대회장 정근재)가 출범했다. △노래비 건립 △나화랑 대표곡선집 CD제작(2011년) △전국나화랑가요제 개최(1회 대회, 김천실내종합체육관, 2014년) △2015년부터 나화랑음악제 연례개최 등 기념사업들이 이어져오고 있다. 2020년 3월엔 나화랑 생가가 문화재청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52 직지문화공원 안 폭포 왼쪽에 ‘고려성·나화랑 형제 노래비’가 있다. 나화랑기념사업회가 2009년 12월 30일 세운 것이다. 화강암재질의 병풍형상 지대석, 검은색 석판에 비명과 약력, 대표곡 가사가 적혀있다.

노래비 왼쪽 면엔 고려성의 약력과 ‘나그네 설움’, 오른쪽 면엔 나화랑의 약력과 ‘무너진 사랑탑’ 노랫말이 새겨져있다.

왕성상 언론인/가수  wss4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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