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한 국가의 흥망성쇠는 그 국민들의 애국심에 달려있다.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세계 2위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가 강력한 저항을 보이며 오히려 우세한 전투력을 보이고 있는 것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높은 애국심에서 온다’라는 것이 전 세계의 여론이다.

우크라이나가 일주일 이상 버티기 힘들 것 같다는 예상이 완전히 깨어지고 오히려 장기전으로 러시아 군인들을 완전히 몰아내겠다고 큰소리 치고 있다. 러시아 침공에 맞서 우크라이나 내국인들은 물론 해외에 나가 있는 유학생, 운동선수, 예술인들이 귀국하여 민병대를 조직한 것은 이들의 높은 애국심을 잘 보여준다.

이에 비해 명분 없이 참전하게 된 러시아 병사들은 지급된 구급상자마저 너무 허술한 처우에 불만이 가득하여 상황이 약간만 불리해져도 무기를 버리고 도망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2019년 12월 연례기자회견과 이듬해 방송프로그램에 나와서 “러시아의 국가 이념은 애국심이다. 현대 민주사회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이념은 애국심이며, 애국심은 조국의 발전에 헌신하는 것을 의미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해온 러시아인들의 애국심이 이 전쟁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을 보면 지도자의 지시나 구호에서 애국심이 생겨나지 않음이 확실하다. 애국심은 자기 나라에 대한 사랑과 함께 자부심으로 그 나라를 위해서 감수해야 할 희생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미국의 35대 대통령인 케네디(J. F. Kennedy Jr.)도 “국가가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줄 것을 바라기에 앞서,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한다”고 말하며 당시 어려움에 처한 미국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 국민들의 애국심에 호소하지 않았던가.

한국이나 일본처럼 인종, 언어, 문화와 역사적 동질성이 있고 군주나 지도자에 대한 충성을 도덕과 윤리의 규범으로 삼아온 나라에서 애국심을 요구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인종과 문화 및 언어까지도 다양한 다원사회인 미국인들이 성조기 앞에서 충성을 다짐하며 국난극복에 앞장서는 것을 보면서 이들의 애국심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지 궁금하였다.

그 후 미국 북쪽에 위치한 사우스다코타 및 위스컨신주에서 대학원생으로 미국의 젊은이들과 생활하는 중에 희미하게나마 궁금증이 풀렸다. 사우스다코타주 러쉬모아산에 조각된 4명의 대통령 큰바위 얼굴이 있는 블랙힐 지역에는 매년 7월4일 미국독립기념일이 되면 수많은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위대한 미국을 외치는 대규모 행사가 열린다.

비교적 짧은 역사임에도 각 지역마다 많은 유공자와 유적지가 있으며 어린 학생들에게 미국의 역사는 물론 거주지역의 역사에 대해서 깊이 있게 교육함으로 미국에 대한 자긍심과 애국심을 심어준다.

1979년 11월에 발생한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에서 응집된 미국인들의 애국심을 잘 볼 수 있었다. 50여명의 미국인이 이란에 인질로 억류되자 미국인들은 집집마다 성조기를 내걸고 국가를 부르며 많은 특수부대 퇴역군인들이 인질 구출의 지원병으로 나섰다.

도덕 외교를 내세우며 인질 구출에 강력 대처하지 못한 39대 대통령 카터(J. E. Carter Jr.)의 인기는 폭락하였고, 강한 미국을 외치던 공화당의 레이건(R. W. Reagan) 후보에게 정권을 내주었다.

미국 시민의 안전과 보호가 국가의 존재 이유라는 것이다. 1996년 아프리카 가나에서 종교 활동을 하던 가나 출신 미국인 맥클리스 천주교 수녀가 그 지역에서 살해되었다. 미국 정부는 즉각 가나 정부의 협조를 받아 수사 끝에 맥클리스 수녀의 살해범을 붙잡아 미국 법정에 세웠다.

한 사람의 생명도 그만큼 소중히 여기며 보호하려는 국가에 어찌 자긍심을 느끼며 사랑하지 않겠는가. 다원화 사회로 이루어진 미국에서 국민들의 애국심은 국가에 대한 신뢰에서 우러나오는 윤리적 규범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다원화 시대에 들어섰다. 수십여 년 전의 도덕과 윤리에 근거한 애국심을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자칭 진보적 지식인들 중에는 ‘애국심을 강요하지 말라’고 소리 높이며, 한반도의 평화를 해치는 것이 ‘나쁜 애국심’이라는 주장도 했다.

이들에게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개인의 생명이나 인권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는듯하다. 한 가지 사례가 ‘북한군에 의한 서해안 해경 피살 사건’이다. 해양경찰 업무 도중 실종된 그 공무원이 몇 시간 후 북한군에 의해서 피격되고 불에 태워졌다.

정부는 이 사건을 공무원이 자발적으로 월북해서 발생한 피살사건으로 단정하였다. 그러나 고등학생 아들을 비롯한 유가족은 정부의 주장이 잘못이므로 진실규명 해줄 것을 대통령에게 탄원하였다. 자신의 아버지가 자진 월북할 이유도 증거도 없고, 그 공무원이 실종 후 북한군에 의해 피격, 소각될 때까지 정부는 아무런 구조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빠가 잔인하게 죽임을 당할 때 이 나라는 무엇을 했는가?”라고 절규하였다. 일부 정치 지도자들은 진상규명에 나서기는커녕 “월북 여부가 뭐 중요 하냐”, “아무것도 아닌 일”로 왜 법석을 떠느냐는 식의 대응을 하여 유가족과 많은 국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분노에 찬 질문에 이들은 어떻게 답을 할 것인지 궁금하다. 이념에 매몰되어 섬겨야 할 국민을 정치적 도구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

베트남의 정글 속에서 포탄을 피해 간신히 살아 돌아온 베트남전 용사인 친구의 눈물 맺힌 한탄이 지금도 생생하다. “국가의 부름에 뛰어든 전투에서 살아남은 나에게 미국놈 앞잡이란다.” 두 해 전 100세로 타계한 6.25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을 “북한 동포에게 총을 들이댄 살인마”라고 악담을 퍼붓던 젊은 여성 변호사도 있었다.

북한 독재자가 ‘계몽군주’로 보이는 정치 지도자들에게는 한 공무원의 참혹한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며, 자유와 정의를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지니는 애국심은 1910년대 독일의 나치즘이나 일본의 군국주의처럼 편협한 국가주의로 치부하고 있는듯하다.

북한 독재정권에 대항하여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우리의 애국시민들을 향해 ‘애국심을 강요하는 나라’라고 비아냥대고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 이념에 물들지 않고 자유를 사랑하며 정의를 위해 몸 바쳐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 애국심이야말로 어떠한 역경에서도 이 나라를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자유민주국가로 키워온 힘이다.

다원화로 향하는 이 시대 우리의 애국심은 정치 지도자나 권력자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 생명과 인권존중이 보장되고 정의가 실현되는 자랑스러운 내 나라에 대한 사랑이다.

새로운 정부는 국민 누구나 폭력과 권력으로부터 안전을 보호받아 자유를 누림으로 조국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올바른 일에 희생을 감내할 애국심이 충만한 나라로 회복해야 한다.

강창원 건국대학교 명예교수  kkucwka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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