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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시 읽기] 공광규 ‘얼굴 반찬’
구명숙 숙명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2.05.23 14:03

[여성소비자신문]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외지에 나가 사는

고모와 삼촌이 외식처럼 앉아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얼굴들이 풀잎 반찬과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새벽 밥상머리에는

고기반찬이 가득한 늦은 저녁 밥상머리에는

아들도 딸도 아내도 없습니다

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 넣고

직장으로 학교로 동창회로 나간 것입니다

 

밥상머리에 얼굴 반찬이 없으니

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습니다.

 

점점 스스로를 고립시켜 가는 세상이 오고 있는 것일까? 어쩔 수 없어 홀로 지내는 생활이 아니더라도 요즘 혼밥, 혼술은 흔히 즐기는 새로운 식문화 습관인 것 같기도 하다. 너무 바빠서 누구와 함께 밥 먹을 시간이 없어서 일까? 아니면 사람들이 번거롭고 귀찮아져 혼자가 편해서일까.

한 집에 사는 가족들과도 서로 얼굴보기가 힘든 세상이 되었다. 혼자 TV를 보거나 식탁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면서 큭-큭 웃으며 밥을 먹는 풍경도 흔하다.

진수성찬이라도 혼자 먹는 밥은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을 것이다. 혼밥 풍경은 말없이 그저 기계적으로 퍼먹는 쓸쓸한 아픔으로 다가온다. 공광규 시인은 “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 넣고/직장으로 학교로 동창회로 나간 것“이라고 풍자하면서 「얼굴 반찬」이라는 특이한 반찬시를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어린 시절, 두레 밥상에 온 식구들이 둘러앉아 딸그락 거리며 좋아하는 반찬을 조금 더 먹으려고 접시를 제 앞으로 끌어당겨가며 눈치를 보는가 하면 다른 가족에게 양보하기 위해 덥석 국에다 말아 먹기도 하였다.

숟가락 젓가락이 오가며 눈도 마주치고 부모님께 밥상머리 교육도 받는다.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과 형제, 자매들 3대가 모여 얼굴을 마주보며 이야기를 꺼내놓는 얼굴반찬 가득 차려진 흐뭇한 밥상이다.

게다가 가끔 친척들이 끼어 앉고 촌수가 먼 아저씨 아주머니도 어울려 먹는다. 숟가락 하나 더 얹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요즘의 세태는 다르다. 극도의 개인주의 사회로 변해가면서 오순도순 식구들과 모여 앉아 밥을 같이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이런 저런 모임의 회식자리인 것이다.

5월은 가족의 달이다. 얼굴 반찬으로 상차림 하는 날이 많은 달이다. 하지만 대부분 밖에 나가서 밋밋한 밥을 시켜 먹고 쓸쓸히 헤어지고 만다. 시인은 “밥상머리에 얼굴 반찬이 없으니/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다“고 헛헛해 한다. 그 어떤 고기반찬도 얼굴반찬만한 아기자기한 살맛을 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구명숙 숙명여대 명예교수  k9350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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