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는 8일 LG전자에 대해 과징금 19억원을 부과하기로 의결했다. 빌트인 가전제품 시장 1위 LG전자는 영업전문점(이하 영업점)들에게 납품 대금을 사실상 전액 대납시키도록 시켰다. 

 

빌트인(Built-in)은 건설사가 새로운 아파트나 오피스텔을 신축할 때 건물 벽면이나 천장에 에어컨, 가스오븐렌지, 세탁기, 냉장고, 식기세척기, 김치냉장고 등 대형생활 가전제품이나 벽장등 가구를 일체화시켜 생활공간을 늘리는 방법을 말한다. 빌트인 가전시장은 연간 20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빌트인 업계는 물건을 납품하는 가전회사, 이 물건을 건설사에 영업하는 영업점 사업자, 그리고 가전제품을 주문하는 건설사로 이뤄진다. LG전자는 이 빌트인 가전시장에서 점유율이 50%가 넘는 과점기업이다. 

 

LG전자의 甲질이 시작된 것은 2008년 6월부터의 일이었다. LG전자는 2008년 1분기 영업손실 5642억원, 순손실 4222억원을 기록했다. 급성장하던 주가는 2008년 5월 16만원 후반대를 기점으로 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이 때 건설경기도 악화되고 있었다. 2008년 9월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 하반기부터 공급과잉으로 인해 부동산 시장 부실의 조짐이 발생하고 있었는데, 이는 즉각 빌트인 가전시장에도 영향을 가져왔다.

 

빌트인 가전시장 자체가 위축된 것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대금지급 기간이었다. LG전자는 때에 맞춰 대형생활가전제품을 납품했지만, 건설사들은 제 때 대금을 납부하지 못했다. 정부에서 긴급 유동성대책을 세울 정도로 건설사들이 현금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LG전자도 아무런 대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LG전자는 서울보증보험·LIG손해보험의 채권보험으로 최대 80%의 대금을 회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건설사의 신용등급에 따라 채권보험으로부터 보장 받을 수 있는 금액은 달라졌고, 신용등급이 너무 낮은 곳에는 거의 보장을 받을 수 없었다. 

 

건설사에게 돈을 받지 못하자 LG전자는 건설사에 애꿎은 개인 영업점에 책임을 물리기 시작했다.

 

LG전자가 영업점에 사용한 방법은 일반적인 채무계약보다도 한층 더 혹독한 것이었다. 건설사가 대금을 납부하지 못하면 전액 영업점이 물어야 한다는 연대보증을 세웠다.

 

만일 건설사의 신용등급이 C이상이어서 채권보험에게서 대금의 80%까지 보장받을 수 있으면 연대보증액을 20% 설정하고, C미만이어서 대금을 거의 보장받을 수 없는 경우엔 전액 보증을 세웠다. 

 

만일 연대보증에 따라 제 때 돈을 갚는지 못 갚는지를 따져 실적평가를 내려 일감(영업대상 건설사 지정)을 줄지 알 줄지를 정했다. 

 

보수(수수료) 강탈도 있었다. 영업점은 건설사와 첫 계약에 성공할 경우 보수의 절반을 받고 나머지 절반은 건설사가 LG전자에 납품대금을 전액 치르고 나면 받았다. 

 

연대보증에 따라 제 때 빚을 못 갚은 대가는 가혹했다. LG전자는 절반의 보수를 지급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해당 납품계약건을 빼앗아 타 영업점에 주기도 했다. 심지어 건설사 지정을 취소해 밥줄을 끊기도 했다.

 

영업점들은 시장에서 LG전자의 비중이 워낙 거대해 항변도 못하고 불공정 계약과 빚보증이 끌려 다닐 수밖에 없었다. 

 

영업점에 미수금 부담을 떠넘긴 LG전자는 거칠 것이 없었다. 심지어 부도를 코앞에 둔 건설사나 워크아웃 중인 건설사와도 납품계약을 맺고 영업점에 대금지급 보증을 세웠다. 

 

보증으로 망하게 된 영업점의 신고로 공정위 조사가 시작된 이후, 의결 직전까지 LG전자는 영업점을 쥐어짜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다.

 

LG전자가 2008년 6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29개 빌트인 가전제품 영업전문점에 연대보증을 맺은 금액은 1302억900만원, 횟수는 441회에 달했다.

 

  

LG전자는 2011년 5월  ‘LG전자 캠프 동반성장 결의식’을 통해 협력회사와 동반성장할 뜻을 밝히고 매년 협력사와 결의대회 등의 행사를 가졌다. 소통, 신뢰, 협력을 상생의 3가지 기치로 삼아 지원역량 강화 및 평가제도 준수, 협력회사와의 소통 체계화, 대외활동 효율화를 이루겠다고 밝혀왔다. 

 

자금난에 고생하는 협력사를 도와 낮은 이자에 돈을 빌려 쓸 수 있도록 2500억원 규모의 자금을 동반성장 협력펀드로 조성하겠다고도 한 바 있다.

 

하지만 실상은 상생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2011년 동반성장위원회는 LED조명 산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선정하고 대기업이 진출을 하지 않도록 권고했지만, LG전자는 계속 팔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동반위 권고는 법적강제성이 없다는 것을 이용한 셈법인 셈이다. 

 

2012년 12월 LG전자는 유럽연합으로부터 697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2001년 필립스와 합작 설립한 LG필립스 디스플레이즈(LPD)가 2006년까지 CRT(브라운관) 국제담합에 가담한 탓이었다. 

 

당시 LPD의 경영자는 구본준 부회장으로 그는 재임 기간동안 LCD 프렌즈 클럽을 만들어 협력사와 상생을 구축하고 있다고 알린 바 있다. 구본준 부회장은 2006년 LG상사 부회장으로 2010년 LG전자로 자리를 옮겼다.

 

LG전자는 자사와 LPD와는 책임관계가 없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과징금은 은행지급보증으로 막아 재무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지는 않았지만, 불공정 행위는 소송결과에 따라 얼마든지 터질 수 있는 뇌관으로 도사리고 있는 상태다. 

 

현재 구본준 부회장은 독한LG를 주문하며 영업 일선을 압박하고 있다. 

 

LG전자 모바일 부문은 업계 3위로 올라섰지만, 이는 노키아, 모토롤라, 소니 등 경쟁자들의 약체로 빚어진 일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LG전자의 스마트폰 점유율은 4.7%로 전 분기에 비해 0.5%나 줄었다. G2 출시를 전후로 2000억원 마케팅비를 지출했음에도 G2는 예상판매량 300만대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삼성, 애플 등 스마트폰 2강의 기세가 아직 거센 대다가 스마트폰 시장 성장률이 점점 둔화세를 그려가며 성숙기로 접어들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LG전자는 모바일 부분에서 나는 손실을 생활가전부문에서 충당하는 이익으로 막고 있지만 과연 올해 흑자전환할 지는 미지수다.

 

공정위는 이번 빌트인 제재로 사업자가 거래상지위를 이용하여 자신이 부담해야 하는 위험을 열위에 있는 거래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비정상적인 거래관행을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제재를 통해 빌트인 가전제품 납품 시장에서 정상적인 거래관행이 정착되고 중소 영업 전문점들의 피해를 방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LG전자는 공정위의 결정을 존중해 의결 내용에 따라 상생방안을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지만, 정확히 어떻게 하겠다는 내용은 없는 상태다. 

 

빌트인 가전제품 영업점은 아직 LG전자의 '인심'을 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