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한지안 기자] 세계 2위 방산대국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이후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게 되면서 무기 수출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지자 한국 방산업계 내부에서도 반사이익에 대한 기대가 나온다. 러시아제 무기를 주로 도입하던 사우디 등 시장에서 국내 무기가 점유율을 높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다.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한국의 방산 수출액은 지난해부터 급증하고 있다. 지난 2010년부터 2020년까지의 방산 수출액은 평균 30억달러 수준이었으나 2021년 말 호주 정부와 1조원 규모의 K-9 자주포 계약을 체결하는 등 수주가 이어지면서 70억달러로 늘었다. 정부와 방산업계는 올해 방산 수출액이 10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내 방산업체들 중 한화디펜스는 지난해 말 호주에 이어 올해 2월 이집트에 잇따라 K9을 수출했다. 2001년 터키를 시작으로 폴란드(2014년)와 인도(2017년), 핀란드(2017년), 노르웨이(2017년), 에스토니아(2018년) 등 6개국이 K9 자주포를 수입한 가운데 최근 계약으로 K9 수출국가는 8개국으로 늘었다.

K9 자주포는 국방과학연구소와 한화디펜스가 1988년 개발에 착수해 10여년 연구 끝에 완성했다. 국내 기술로 독자 개발한 제품이다.

스톡홀롬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7년까지 세계 자주포 수출 시장에서 K9 자주포 물량이 48%를 차지했다. 이는 세계 최강 자주포 중 하나로 평가받는 독일 판처하우비체(PzH) 2000보다 높은 실적이다. 판처하우비체는 2002년을 끝으로 생산이 중단됐지만 K9는 생산·개량이 이뤄지고 있다. 실전 배치된 수량도 K9와 그 개량형인 K9A1이 압도적으로 많다. K9A1에는 보조동력장치, 열상형 야간잠망경, 자동사격통제장치 등이 추가됐다.

K9 자주포는 1문 단독으로 TOT(Time on Target, 여러 발을 사격해 포탄을 표적에 동시에 명중시키는 방법) 사격 기능을 구현한다. 구경 155㎜, 52구경장이며 길이 8m에 달하는 포신에서 발사되는 포탄의 최대 사거리는 40㎞다. 자동화된 사격통제장비, 포탄 이송과 장전장치로 급속발사 시 15초 이내에 초탄 3발을 발사할 수 있다. 3분간 분당 6~8발, 1시간 동안 분당 2~3발 사격이 가능하다.

기존 곡사포는 사격 명령을 받으면 첫 사격까지 최단 2분에서 길게는 11분까지 걸렸지만 K9 자주포는 이를 30초에서 1분으로 단축했다. K9 자주포 1문이 기존 포의 3배를 사격할 수 있는 셈이다. 또 자동 장전과 방열 기능을 활용해 기존 견인포 대비 운용 인원을 줄였다.

K1000마력 디젤엔진을 장착해 최고 시속 67㎞까지 달릴 수 있다. 산악지역이 많은 한국 지형은 물론 평원, 설원, 정글, 사막 등 다양한 환경에서 주행 가능하다. 사격 후 신속한 진지 변환(Shoot&scoot) 전술에 최적화돼있다.

국내에서 개발한 고강도 장갑판이 적용돼 적 포병화력의 파편이나 중기관총, 대인지뢰 등에 대한 방호력을 갖췄다. 화생방전 대응능력도 갖추고 있어 생존성이 향상됐다.

한화 디펜스 ‘K9 수출’ 호주에 현지 생산시설 짓는다...국내 방산 업계 최초

지난해 말 한화 디펜스는 K9 30문과 K10 탄약운반장갑차 15대를 호주 군대에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파이브아이즈(Five Eyes·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5자 기밀정보 동맹) 국가로의 첫 무기체계 수출 사례였다. 호주 정부는 2020년 9월 한화디펜스의 K9 자주포를 단독 후보 기종으로 선정한 뒤 최종 협상을 벌여왔다.

호주 육군이 직접 운용할 K9 자주포의 명칭은 '덩치 큰 거미'라는 뜻의 '헌츠맨(Huntsman)'으로 결정됐다. 기존 K9 자주포 대비 방호력과 감시 정찰 능력이 강화된 제품이 납품될 예정이다.

이를 위해 한화디펜스는 지난달 23일 호주 현지에 자주포와 보병전투장갑차 등을 제조할 수 있는 대규모 생산시설 부지를 확정했다. 국내 방산기업이 해외에 생산 거점을 확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생산시설이 들어설 곳은 멜버른 중심가에서 서쪽으로 60㎞ 떨어진 질롱시 관할 아발론 공항 부지다. 이곳에 3만2000㎡ 규모의 최신 전투차량 공장이 들어선다. 착공식은 이르면 3월 말에 이뤄지며 약 2년 후에 완공될 예정이다.

질롱시 생산공장에서는 우선 자주포 생산이 이뤄질 예정이다. 현재 진행 중인 호주군의 차세대 보병전투장갑차 사업(LAND 400 Phase 3) 결과에 따라 레드백 장갑차도 생산될 수 있도록 시설 설계를 검토 중이다.

레드백은 한화디펜스가 이스라엘과 호주, 캐나다 등 글로벌 방산기업들과 협력해 개발한 5세대 보병전투장갑차다. 지난 2019년 9월 5조원 규모의 호주 육군 궤도장갑차 사업의 최종 2개 후보 기종 중 하나로 선정돼 2020년 최종안을 제출했다. 업계에서는 올해 상반기 중 최종 결과가 나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호주 정부는 한화디펜스의 자주포 생산시설 건립으로 고급 제조인력 수요가 생겨나는 등 약 300개의 현지 일자리가 창출되고 지역 경제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화디펜스의 생산 거점인 창원시와 질롱시 간 전략적 제휴를 통한 한-호주 방산분야 협력에도 기폭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집트에 2조원 규모 K9 수출...역대 최대

호주 수출 계약 이후 한화디펜스는 지난달 초 이집트군과도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수출 규모는 약 2조원으로 역대 K9 자주포 수출 사례 중 최대다. 이집트는 아프리카 대륙 국가 중 처음으로 K9 수입국이 됐다.

한화디펜스는 이집트군과의 계약에 따라 K9 자주포와 K10 탄약운반장갑차, K11(가칭) 사격지휘장갑차를 육군과 해군에 공급하고 현지 생산을 지원한다. 완제품 초도 물량은 오는 2024년 하반기까지 납품된다. 이후 잔여 물량은 기술이전 등을 통해 이집트 현지에서 생산된다. 이와 함께 장비 운용교육 및 부대, 야전, 창정비 등의 후속군수지원도 이뤄진다.

이집트와의 K9 자주포 수출 계약은 국내 방산업체와 정부 유관부처 간 협업으로 10여년간 추진됐다. 이집트 해군은 적 수상함에 대한 접근거부(access denial) 임무 수행을 위한 해안방호용 화력체계로 K9 자주포 도입을 추진해 왔다. 지난 2017년 시험평가 과정에서 K9 자주포가 표적함을 명중시키는 등 기대 이상의 성능을 확인시켰다.

국내 방산업계, 사우디 정부와 대규모 계약 체결

이 가운데 한화디펜스와 ㈜한화, LIG넥스원, 풍산 등 국내 방산업체들은 이달 초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와 잇달아 대규모 방산 계약을 체결하게 됐다. 구체적인 계약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한화그룹은 한화디펜스가 이집트 정부와 계약한 지 한 달 만에 ㈜한화를 통해 또 한차례 조 단위 계약을 따내게 됐다.

최근 외신과 방산업계에 따르면 ㈜한화는 지난 8일 사우디 국방부와 30억리얄(약 9846억원) 규모의 방산계약을 맺었다. 사우디 국방부가 이날 국내외 방산업체들과 체결한 전체 계약금액(70억리얄) 중 절반에 육박하는 규모다. 다만 사우디 국방부가 방산계약 관련 세부 내용을 공개하지 않을 것을 요구함에따라 구체적인 수출 품목은 알려지지 않았다.

㈜한화는 한화디펜스와 함께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6일부터 9일까지 열린 중동 최대 국제방산전시회 ‘WDS 2022’에 참가해 각종 첨단 무기를 선보인 바 있다. 한화디펜스는 사우디 정부와 고성능 복합대공화기 비호Ⅱ 수출계약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풍산은 사우디 국방부와 4억6000만리얄(약 1500억원) 규모의 탄약 공급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전해졌다. LIG넥스원도 보안시설을 방호할 수 있는 요격체계 시스템 등 2억5000만리얄(약 820억원) 규모의 계약을 성사시켰다. LIG넥스원은 사우디 정부와 천궁Ⅱ 수출도 논의중으로 알려졌다.

한지안 기자  hann923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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