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검은 밤의 가운데 서 있어 / 한치 앞도 보이질 않아

어디로 가야하나 어디에 있을까 / 둘러봐도 소용없었지

인생이란 강물 위를 뜻 없이 / 부초처럼 떠다니다가

어느 고요한 호숫가에 닿으면 / 물과 함께 썩어가겠지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끝이 없는 날들 속에 / 나와 너는 지쳐가고

또 다른 행동으로 또 다른 말들로 / 스스로를 안심시키지

인정함이 많을수록 새로움은 / 점점 더 멀어지고

그저 왔다 갔다 시계추와 같이 / 매일매일 흔들리겠지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가볍게 산다는 건 결국은 / 스스로를 얽어매고

세상이 외면해도 나는 어차피 / 살아 살아있는걸

아름다운 꽃일수록 빨리 시들어 가고

햇살이 비추면 투명하던 이슬도 / 한순간에 말라버리지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코로나19로 모두들 지쳐가고 있다. 사람은 어렵거나 힘들수록 더 단단해진다. “잘 될 거야. 다시 일어서야지!”, “그냥 있을 수 없어. 한 번 해봐야지”하는 오뚝이정신을 갖게 된다. 김광석이 작사·작곡, 노래한 ‘일어나’는 밝고 희망적이다. 실패와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서려는 이들에게 힘을 준다.

4분의 4박자 비긴(beguine)풍으로 격려와 용기를 주는 가요다. 비긴은 짝수박자의 비교적 빠른 템포로 1930년께 유럽에 소개됐다. ‘일어나’는 가사가 길어 노래시간(4분30초)이 다른 곡들보다 더 걸린다.

김광석 4집 음반 ‘100대 명반’에 들어

이 노래는 1994년 6월 25일 나온 김광석의 4집 음반에 실렸다. 김광석이 살아있을 땐 낸 마지막 앨범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회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서른 즈음에’, ‘자유롭게’ 등 9곡과 함께 앞면 첫 번째로 실렸다.

포크계열의 창작곡 음반이다. LP판, CD, 카세트테이프로 동시발매 돼 히트했다. 2010년 음악웹진 100BEAT가 선정한 ‘1990년대 100대 명반’에서 74위를 했다. 2018년 8월 음악평론가들이 모여 정하고 멜론을 통해 발표한 ‘(세 번째)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선 87위에 올랐다.

이 노래엔 힘겨운 삶에 끊임없이 고민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김광석의 마음이 담겼다. 그는 자신의 노래 중 ‘일어나’를 가장 좋아했다. 희망적인 가사가 그의 마지막 모습과 대비돼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김광석은 1995년 한 방송사의 슈퍼콘서트 무대에서 ‘일어나’ 노래를 만든 배경을 들려줬다. “한동안 뭔가 모르게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을 때에요. 뭐, 정말 그만 살까 이런 생각도 하고 그럴 때 어차피 그래도 살아가는 거 좀 재밋거리 찾고 살아봐야 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하면서 만든 노랩니다. ‘일어나’ 불러드리면서 물러가겠습니다. 행복하십시오.”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으로 묘한 말을 한 뒤 노래를 불렀다.

그의 4집 음반엔 김광석 창작곡만 있지 않다. 친했던 여러 음악친구들이 곡을 만들어줬고 녹음도 함께했다. 조동익은 음반편곡과 베이스를, 김광석이 몸담았던 ‘노래를 찾는 사람들(약칭 노찾사)’이 코러스를 맡았다.

‘일어나’ 노래에 얽힌 에피소드도 많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식 행사장에서 이 노래를 불러 눈길을 모았다. 2018년 2월 28일 취임 뒤 처음 대구를 찾은 문 대통령은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국가기념일 지정 뒤 열린 정부주관 첫 ‘2·28 민주운동기념식’ 때 ‘일어나’를 합창했다.

이 노래는 야구장에서도 울러 퍼졌다. 2016년 정규시즌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의 첫 경기 때였다. ‘일어나’가 히트하면서 노래비도 세워졌다. 2008년 서울 대학로 학전 소극장(대표 김민기)과 2012년 11월 17일 김광석의 모교인 서울 대광고 교정(서울시 동대문구 안암로)에 세워진 것이다.

그의 고교동기(‘대광고 34회 동창회 일동’)들이 대광고 신관 앞 농구장 쪽에 세운 4각 판넬모양 노래비엔 가사(1~3절)와 비를 세운 설명이 적혀있다. “아름다운 목소리와 고운 노랫말로 우리나라 가요사에 한 획을 그은 김광석을 기리며 고등학교 친구들이 이곳 모교에 그의 노래비를 세우다”는 내용이다. 옆엔 대광고출신 가수 최헌(1948~2012년 9월 10일)의 ‘가을비 우산 속에’ 노래비도 있다.

2010년엔 김광석이 태어난 대구시 대봉동 방천시장 ‘김광석 거리(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 350m)’엔 ‘일어나’ 노래벽화가 생겼다. 대구도시철도 경대병원역(3번 출구) 부근으로 그가 생전에 했던 말과 노랫말 1절이 적혀있다.

검정색 LP음반이 그려져 있고 “노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노래를 하면서 사람들과 저의 아픔을 어루만져줄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오랜 방황 끝에 제가 서 있는 지점이 바로 그곳이죠”라는 그의 말이 쓰여 있다.

세대를 뛰어넘어 깊은 공감 주는 노래

‘일어나’ 노래주인공 김광석은 기성가요계에 진출, 성공한 첫 운동권가수다. 4개의 솔로정규음반, ‘다시 부르기’란 제목의 리메이크음반 2개가 있다. 애환 섞인 음색으로 서민정서를 잘 대변한 그의 노래는 ‘공동경비구역 JSA’, ‘클래식’ 등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 삽입곡(OST)으로 들어가 세대를 뛰어넘어 깊은 공감을 준다.

김광석은 1984년 가수로 데뷔했다. 노찾사, 노래그룹 동물원의 보컬가수를 맡은 그가 대중에게 알려진 건 1988년. 동물원 1집 음반의 ‘거리에서’와 ‘변해가네’를 통해서다. 동물원 2집 음반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혜화동’은 김광석 특유의 순수함을 담은 노래다.

동물원에서 나와 홀로서기를 한 그는 1989년부터 통기타가수로 사랑받았다. 그해 ‘기다려줘’, ‘너에게’가 실린 솔로음반 1집을 내고 첫 개인콘서트도 열었다. 그런 음악활동 중 1년간 열애 끝에 1990년 결혼했다.

1991년에 낸 2집 솔로음반은 한동준이 준 ‘사랑했지만’, 김형석의 ‘사랑이라는 이유로’, 김창기의 ‘그날들’ 등이 인기를 끌며 대중에게 다가섰다. 1992년 ‘나의 노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등이 실린 3집 음반을 내면서 민중가수출신이란 정체성도 다졌다.

민초들의 슬픔, 한, 고뇌, 행복의 감정을 아프면서도 아름답게 풀어낸 게 먹혀든 것이다. 특히 1993년 대학로 학전 소극장에서 노래생활 10년 결산공연에 들어가 1995년까지 1천회를 펼쳤다. 소극장 공연문화를 뿌리내리게 했고 힙합, 댄스, 발라드에 밀려 꺼져가던 포크송의 불씨도 되살렸다.

가수로서 잘 나갔던 그는 1996년 1월 6일 새벽 32살로 생을 마쳤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원음빌딩’ 4층 자신의 집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 음악팬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경찰에 따르면 김광석은 새벽에 술을 마시던 중 평소 우울증으로 자살한 것으로 발표됐다. 그는 ‘원음(圓音)’이란 법명을 썼다. ‘둥근 소리’란 뜻으로 법정스님이 지어줬다. 김광석 팬클럽명이었고 김광석 팬페이지 이름으로도 쓰인다.

김광석 죽음과 관련 이상호 영화감독(전 MBC 기자)이 만든 영화가 관심을 모았다. 이 감독의 2번째 작품으로 2016년 7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 상영된 고발다큐멘터리 ‘일어나 김광석’이다.

이듬해 8월 3일 언론시사회를 가진 이 영화는 ‘김광석19960106’이란 부제는 그대로지만 제목은 ‘일어나 김광석’에서 ‘일어나’가 빠졌다. 관객들이 ‘일어나’라고 외쳐야지 감독이 그래선 안 된다는 게 이 감독의 견해였다. 부천영화제 개봉 후 제보가 있어 추가 취재부분이 들어가고 영화적으로 미비하고 미숙한 내용을 손질했다. 장면순서도 바뀌었다.

2017년 8월 말 개봉된 영화 ‘김광석’을 통해 김광석 죽음에 관한 진실을 밝혀야한다는 소리가 높아지면서 ‘김광석법’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그해 9월 6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광석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회견 때 이 감독, 가수 전인권이 참석해 ‘김광석법’ 추진 지지입장을 밝히고 국민들에게 관심도 호소했다. 독일의 언더그라운드 힙합그룹 Die Orsons가 2009년 ‘Kim Kwang Seok’이란 노래를 발표했다. 유튜브에 공개된 이 곡은 김광석을 찬양·추모하는 내용이다.

가수·작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인

대구태생인 김광석은 5살 때 서울로 이사, 창신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경희중학교 때부터 바이올린, 오보에, 플루트를 배우며 악보 보는 법을 익혔다. 1979년 서울 대광고에 들어가선 합창단 활동을 했다.

1982년 명지대 경영학과에 입학, 대학연합동아리 ‘연합메아리’에서 기타를 본격적으로 치기 시작했다. 그는 1985년 1월에 입대했으나 큰형이 군대서 사고로 숨져 6개월 만에 제대했다. 그 후 서울 안암동 고려대 앞에서 카페(‘고리’)를 열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후배가수와 동료들에게 밥과 술을 공짜로 주는 바람에 얼마 안 돼 접었다.

추모콘서트가 열리는 국내가수들 중 김광석의 무대가 가장 많이 펼쳐지고 있다. 그는 가수·작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인으로도 꼽힌다. 절망과 희망의 경계에서 서성거렸던 김광석은 저 세상으로 갔지만 ‘영원한 청년가객(歌客)’, ‘노래하는 시인’으로 대중들 마음에 살아있다.

왕성상 언론인/가수  wss4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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