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한글날 아침이었다. TV에서는 한글과 한글문화의 우수성과 함께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우리 전통문화들의 소개가 이어지고 있었다. 자랑스럽고 뿌듯함에 아파트 창문 밖으로 태극기를 내걸었다. 그 순간 길 건너편 언덕 아래로 태극문양과 함께 ‘000 영양탕’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동물보호단체들의 개고기 식용반대 피켓시위로 말다툼을 빚어내던 음식점이 보신탕 대신 영양탕으로 간판을 바꾸어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5000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나라는 한글 이외에도 한복 한옥 등이 K-POP이나 영화 등 한류를 타고 세계인들을 매혹하고 있다.

최근에는 넷플릭스를 통해 ‘오징어 게임’이 세계 젊은이들에게 우리 전통문화인 ‘딱지치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알리고 있기도 하다. 한국의 전통음식에 대한 관심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

세계적인 저명 학술지인 란셋(Lancet)이 2030년에는 한국이 세계 최장수국이 될 거라고 발표하면서 독특한 우리 음식인 김치, 비빔밥, 불고기 등이 유행을 타고 있다. 이들이 영양의 균형을 이룬 건강식품이며 장수국가로 되는데 중요한 요인으로 설명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전통문화라고 해서 모두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불란서의 여성철학자 시몬 베유(S. Weil)의 말처럼 “극히 제한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문화라도 그 속에 진리와 오류가 혼합되어 있는 것이다.”

특정 사회나 집단이 빚어낸 습관이나 생활양식 등 인간의 산물을 문화라고 할진데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한가지 문화의 강점이나 약점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생물학자 도킨스(R. Dawkins)는 생물체의 유전자(gene)가 복제되어 전달되는 것처럼 문화의 계승과 전달도 밈(meme)이라는 문화정보단위의 복제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음식 문화 가운데 전 세계의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식용견이라는 밈은 개를 가족으로 여기는 반려견 문화속에 복제를 계속하여 전통문화로 이어 나갈 수 있을른지 심각하게 고려해 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

음식문화의 형성은 해당지역의 풍토, 생활양식, 종교 등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지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고 발전한다. 개고기 식용문화는 4만여년 전 원시사회의 유적에서 나타날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중국 춘추시대의 진나라, 유럽 로마, 중남미 아즈텍 문명에서 개고기가 대중적인 식재료로 쓰였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전 지구상의 공통적인 음식문화이었다. 우리나라 역시 삼국시대 고구려인들의 식생활 기록이 개고기 식용을 말해준다. 식용견 문화의 형성은 개의 가축화가 손쉽고 크기가 가족단위의 식단에 적절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지역 환경 변화와 함께 개의 효용성에도 변화가 초래되었다.

우선 불교, 유대교, 이슬람교와 같은 종교에서는 개고기 식용을 금하였다. 목축문화가 발달한 서구 사회에서는 소, 돼지, 양 등 육류생산효율이 높은 가축들을 쉽게 구할 수 있고 개는 양치기, 사냥, 썰매끌기와 같은 용도에 효율성이 높은 관계로 사람과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게다가 개는 인간과의 공감 및 정서적 교감 능력이 매우 높다. 더욱이 민주국가로 전환이 빨리 일어난 서구사회에서는 사회적 약자를 우선 보호하자는 인권운동과 함께 동물에 대한 학대행위를 방지하려는 동물보호단체의 활동이 일찍 시작되었기에 반려견은 서구문화의 밈으로 복제되고 전달되어 나갔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동남아 등 아시아 지역은 농경사회이었기에 고기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따라서 집 근처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개를 식재료로 사용하였고 양반관료제의 계급사회에서 하층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에게는 개고기 식용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었을 것이다.

그 결과 이 지역의 반려견 문화는 서구사회에 비해서 역사가 짧다. 특히 일제 침략, 6‧25전쟁 등 지속되는 국란을 겪어온 우리나라에서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식재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영양결핍을 극복하는 방편으로 개고기가 보신 또는 보양의 용도를 띄며 식육견 문화가 거부감 없이 이어져 왔다.

그 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과 축산업발전으로 육류공급이 증대되자 식용견 소비는 점차 감소하여 왔다. 여기에 더하여 청소년들 사이에 반려견 문화가 크게 확산되고 노령인구의 증가에 따라 반려견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2021년 현재 우리나라 반려견 가구가 500만을 넘었고 반려견 인구가 1000만을 상회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몇 년전 개장한 대형쇼핑몰 스타필드(하남점)에는 미용과 악세서리로 치장한 다양한 종류의 반려견들이 주인과 함께 쇼핑을 즐기고 있다. 쇼핑몰 곳곳에는 반려견의 휴식과 배설물 처리를 위한 휴게소와 처리도구들이 준비되어 있고 쇼핑몰 주위에는 애견유모차나 팻캐리가방에 실려 산보하고 있는 행복한 반려견들을 볼 수 있다.

지하철에는 애견캐리어에 몸을 실은 반려견과 함께 출근하는 젊은 직장인들을 심심치 않게 볼만큼 반려견 문화가 우리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다. 이처럼 먹고 자는 것은 물론 직장 출근까지 같이 하는 반려견이 식용으로 살해된다는 것을 이들은 받아들일 수 없는 범죄행위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이들은 국내외의 동물단체들과 연계해서 개고기 식용반대 켐페인을 전개함은 물론 식용견 사육장에서 개를 구입하여 국내외로 양자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 최근 공개된 사례만 보아도 인천 계양산에서 160여마리의 식용견, 전남 진도에서 진돗개 및 혼혈종 60여마리가 구조되는 장면이 TV방송이나 유튜브를 통해서 공개되었다.

내가 미국에 있을 때 LA에 거주하는 중국계 미국 여성께서 한국에서 개 한 마리를 양자 받아 기르면서 한국의 반려견 학대에 분개하는 모습을 보고 한국인으로서 부끄럽고 안타까웠다. 미국의 영화 감독 케빈 브라이트(K. Bright)는 한국에서 입양한 개 두 마리를 키우고 있으며 자비로 4년에 걸쳐 한국의 식용견 산업을 그린 영화 ‘누렁이’를 제작하여 무료로 유튜브에 올렸다.

개고기 식용이 전통음식문화라고 아무리 강변해보지만 이 시대는 이 문화의 종언을 예고하고 있다. 브라이트 감독의 말처럼 전통과 문화는 존중되어야하지만 또한 시대에 발맞추어 변화될 필요성도 있다.

우리국민들 약 84%가 개고기를 꺼리고 있으며 문화적 소양과 수준이 높기에 식용견 문화 종식 조치에 크게 반발하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수천개의 식용견 사육장과 음식점들의 살길을 마련해주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식용견 문화 종식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이들의 생계유지를 위한 정부지원책 즉, 적절한 인센티브와 전업 프로그램을 포함한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

강창원 건국대학교 명예교수  kkucwka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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