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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연안부두 외항선원 이별 그린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왕성상의 그 노래 그 사연
왕성상 언론인/가수 | 승인 2021.09.16 15:52

[여성소비자신문]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언제나 찾아오는 부두의 이별이

아쉬워 두 손을 꼭 잡았나

눈앞에 바다를 핑계로 헤어지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보내주는 사람은 말이 없는데 떠나가는 남자가 무슨 말을 해

뱃고동소리도 울리지 마세요

하루하루 바다만 바라보다

눈물지으며 힘없이 돌아 서네

남자는 남자는 다 모두가 그렇게 다 아~아~

이별의 눈물 보이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남잔 다 그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는 1984년 인천연안부두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가요다. 4분의 4박자, 슬로우 풍으로 애잔함이 느껴진다. 1979년 ‘10·26사건’ 뒤 방송출연 및 출국금지조치가 내려진 심수봉(67세, 본명 심민경 沈玟卿)이 이 노래로 가요계 활동을 다시 하게 됐다. 그는 ‘10·26사건’ 뒤 방송에 나가지 못하다 5년 만에 풀렸다.

심수봉, 1984년 친한 부부사연 떠올려 작사·작곡·취입해 빅히트
‘10·26사건’ 뒤 방송출연 못하다 이 노래로 가요계 활동 재개

1978년에 데뷔, 이듬해 MBC 10대 가수상과 KBS 신인가수상을 받은 심수봉은 자신이 부른 대부분의 노래들이 실제상황을 얘기하거나 있는 그대로의 삶을 소재로 삼는 가수로 유명하다. 꾸며낸 말이나 일들을 노래하지 않는다. 취입한 곡의 노랫말을 찬찬히 음미해보면 그 안에 담긴 생활모습이나 등장인물들 얼굴, 주변 분위기, 삶의 현장들이 손에 잡힐 듯 어렴풋이 보인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도 마찬가지다.

동년배 여성으로서 동병상련, 노래로 만들어

이 노래가 나오기까지는 사연이 있다. 서울에 심수봉과 친한 부부가 있었다. 남편은 외항선을 타는 뱃사람이다. 어느 날 허전함과 쓸쓸함이 부부의 얼굴에 가득했다. 남편이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떠나야해 어쩔 수 없이 이별을 해야 되기 때문이었다.

심수봉은 그 부부의 사연을 알고 인천연안부두까지 배웅해주기로 하고 그들과 동행했다. 그는 부부의 작별모습을 지켜보며 헤어짐을 함께 아쉬워했다. 붕~붕~붕~, 배는 고동을 울리며 항구를 미끄러지듯 떠나고 두 여성은 서울로 돌아왔다. 그러나 연안부두에서 헤어진 아내는 서울 신림동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차안에서 마냥 울고 있었다.

‘너무 애처롭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온 심수봉도 마음이 찡했다. 우는 모습이 너무도 절절하고 남편과 자식을 둔 같은 주부로서, 또 같은 연배의 여성으로서 동병상련(同病相憐) 입장이었다. ‘10·26사건’ 뒤 방송에 나갈 수 없었던 때로 자신의 일처럼 느껴졌다.심수봉은 그때의 느낌과 분위기를 메모해뒀다.

그런 일이 있고 얼마 뒤 그는 그때의 일을 떠올려 노랫말을 짓고 곡을 만들어 취입한 게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다. ‘심수봉 신곡 1집 음반’에 실린 이 노래는 크게 히트했다.

그를 가수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한 밑거름이 됐다. 심수봉 특유의 농염한 비음(鼻音, 콧소리)과 구슬픈 듯한 창법이 인기정상의 곡으로 만들었다. 노래의 흐름은 부부의 연안부두이별을 남녀관계와 삶에 빗대 음악적으로 적절히 그려냈다.

남자를 배, 여자를 항구에 비유한 신파조의 가사지만 기성세대와 젊은 층 모두가 좋아해 인기곡으로 떴다. “여성을 남자를 기다리기만 하는 수동적 존재로 묘사했다”는 비판도 있었으나 히트곡이란 대세에 묻혀버렸다.

노래 끄트머리 대목에서 ‘남잔 다 그래’로 표현한 건 어릴 적 집안 얘기를 은연 중 내비쳤다. 심수봉은 어릴 때 홀어머니 밑에서 컸다. 아버지 얼굴을 모르고 사랑도 받지 못했다. ‘과부의 딸’이란 놀림까지 받는 고통 속에서 자라 맘의 상처가 적잖았다. 그래서 그의 노래엔 자신을 감싸주는 큰 그늘로서의 남자, 아버지 같은 남자가 밑바탕에 깔려있다.

이처럼 심수봉의 노래는 실제상황이나 실화를 담은 게 대부분이다. ‘노래를 들으면 심수봉의 근황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그래서 많다. 작사·작곡을 하는 트로트 여성 싱어송라이터(singer-song writer)로 가슴에 쌓여있는 하고픈 얘기들을 소리로 풀어내는 까닭이다. 한국적 한이 깊이 배인 목소리의 대중가수로 꼽힌다. 

그는 2018년 신곡음반(‘내 삶은 빛나기 시작했다’)을 냈을 때도 묘한 일이 일어났다. 앨범 수록곡 중 ‘엄마 사랑해요’란 노래가 있다. 그 노래 발표 1년 뒤 그의 어머니가 별세했다. 모친과의 이별을 예견이라도 한 것 같은 일이어서 주위를 놀라게 했다.

‘MBC 대학가요제’ 출신가수로 43년째 활동

가요계생활 43년째를 맞은 심수봉은 ‘그때 그 사람’을 부른 가수로도 유명하다. 정치적  격랑기 때 트로트의 예술성이 뛰어난 소리꾼으로 돋보였다. 그는 대중음악계에서 트로트가수로는 드물게 수준 높은 자작곡으로 음반을 내왔다. 나라안팎을 오가며 월드음악장르로도 바탕을 넓히고 있다. ‘하늘이 내려준 비음’에다 독특하면서도 맛깔스러운 목소리로 ‘그때 그 사람’, ‘사랑밖에 난 몰라’, ‘비나리’, ‘백만 송이 장미’, ‘미워요’, ‘무궁화’ 등 히트곡들을 내면서 대중의 정서를 사로잡고 있다.

그의 집안은 증조부 때부터 음악과 연관이 많았다. 아버지, 큰아버지, 고모 등이 음악을 했다. 심수봉도 자연스럽게 음악인 삶을 걷게 됐다. 주전공은 재즈지만 미8군 무대에 로큰롤밴드 ‘논스톱’의 드러머로 서기도 했다.

1955년 7월 11일 충남 서산에서 무남독녀(아버지 심재덕, 어머니 장형복)로 태어난 그는 인천 인화여고(1974년 졸업), 명지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생 때인 1978년 제2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그때 그 사람’을 불러 이름을 알렸다. 그때 상은 못 받았지만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젊은 여대생이 트로트를 부른 것도, 비음의 목소리도 특이했다. ‘그때 그 사람’ 노래가 히트하면서 1979년 10월 26일 밤 서울 궁정동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현장에 있었던 목격자로 법정에 서기도 했다.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은 2006년 10월 25일부터 ‘무궁화의 여인, 가수 심수봉의 반생(半生)’ 제목으로 5차례 실었다. 그때 심수봉은 “10·26사건 직후 정보기관 지하실에서 조사받을 때 전두환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이 나타나 ‘당신 대단하다. 남자들은 다 도망갔는데 용기를 내서 현장에 남아 있었다. 영양제라도 사 먹으라’며 용돈을 주었다”는 비화를 전했다. 그는 또 “방송출연이 금지됐을 때 박태준 전 국무총리(전 포항제철 회장)가 쌀을 보내주고 모임에도 불러 노래를 부르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2009년 3월 30일 서울 조선웨스턴호텔에서 ‘30주년 기념 콘서트-뷰티풀 데이 제작발표회’ 겸 기자간담회 때 의미있는 말을 했다. 힘들고 아팠던 것을 이겨내기 위해, 호흡하고 싶어 노래했다면 이젠 한 단계 더 비상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박 대통령 시해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가수활동을 멈췄을 때부터 얘기를 풀어갔다. “처음 10년은 가슴 울렁거리는 두려움을 떨쳐낼 수 없었던 때였어요. ‘왜 인생이 이렇게 될까’란 생각과 함께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계속 펼쳐졌습니다. 결혼생활도 비참한 가운데 첫 단추가 끼워졌죠. 어이가 없고 꿈을 빼앗긴 암울한 시절이었습니다. 다음 10년은 가정사로 힘들었다. 세상이 나를 배신해도 실망시키지 않을 한 남자를 향한 집요한 노력이 있었지만 이혼했다”고 털어놨다. 정신적으로 방황했던 시절 그녀는 두 번 결혼하고 두 번 이혼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는 1985년부터 시작한 신앙(기독교)생활이 크게 도움 됐다고  했다. 이어진 10년에 대해선 “보람이 있었던 때였다”고 지난날을 떠올렸다.

2004년 11월 1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선 심수봉 가수생활 25주년 기념콘서트가 열렸다. 이에 앞서 10년 만에 재회한 딸과의 애틋한 모정을 노래한 제10집 음반(‘꽃’)도 냈다. 2009년 4월말엔 히트곡, 신곡, 개사한 북한가요, 이스라엘노래를 담은 30주년 기념음반 ‘뷰티 풀 러브’를 냈다.

남북통일이 될 날을 생각하며 북한노래를 넣었고 우리와 정서가 닮은 이스라엘곡도 담았다. 2018년 10월엔 제9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그의 삶은 파란장만 했지만 열매와 보람도 컸다.

KBS 한가위 대기획 ‘피어나라 대한민국, 심수봉’

심수봉은 60대 중반임에도 젊은 가수들 못잖게 뛰고 있다. 오는 9월 19일(일요일) 밤 8시 KBS 2TV ‘2021 한가위 대기획 ‘피어나라 대한민국, 심수봉’에 출연한다. 그가 단독 TV무대에 서기는 1995년 4월 8일 KBS ‘빅쇼’ 이후 26년 만이다. 공연에선 그의 명곡퍼레이드는 물론 어디서도 공개 안 했던 심수봉의 새 모습도 볼 수 있다.  KBS는 TV녹화뿐 아니라 다양한 나이대, 계층들이 심수봉 공연을 즐길 수 있게 특별 비대면(언택트)무대도 펼친다. 8월 27일~29일 경기도 일산 킨텍스 특별무대에서 녹화와 언택트 참여공연이 있었다.

왕성상 언론인/가수  wss4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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