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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정서적으로 얽힌 것 풀어내기
김혜숙 백석대학교 교수 | 승인 2021.05.16 20:07

[여성소비자신문]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정서적으로 학대를 받았거나 방치당한 사람들은 부모에 의해 정서적으로도 매어있어 개별화 과정을 끝내지 못한 사람이다. 성장하면서 자신의 개별성, 타인과의 차이성, 나만의 가치와 신념으로 목표를 이루면서 나다운 삶을 지향해야 하는데 타인에게 의존하고 밀착된 체 자신의 문제를  배우자나 자녀탓을 하고 또 다시 학대를 하곤 한다.  

40대 P씨 남편은 부인이 이혼하겠다고 집을 가출한 상태다. 부부가 싸울 때 마다 P씨는 칼을 들고 위협하며 자기 인생이 뜻대로 안 풀리고 직장도 없이 지내야 하는 자신의 불행한 상황을 모두 부인 탓, 아이 탓으로 돌리며 “난 너희들 모두 필요 없어, 아이도 난 필요 없어”라며 폭탄선언을 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이런 것을 목격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니 엄마는 가슴이 찢어지고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다고 결단을 내린 상태다. P씨는 엄마가 아버지 밑에서 아버지의 돌변하는 성격을 맞추고 홀로 된 시어머니도 평생 모시고 살아야만 했고 암 투병 중에도 이런 생활은 계속 유지해야만 했었다. 

결혼 이후에 P씨는 불쌍한 어머니를 볼 때는 어머니를 위해 살아야 할 것 같아 엄마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그것도 내가 하는 것보다는 며느리가 더 해주기를 바라고 종용하고 안하면 소리지르고 위협하며 다그쳤다. 직장생활과 가정을 책임져온 부인이 “나는 너의 엄마처럼 그렇게 살 수 없다”고 얘기해도 통하지 않았다.

40대가 넘어도 P씨는 자신의 부모로부터 별개의 독립된 개인으로 자아분화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성장기에 어머니의 방치와 아버지의 학대 속에서 거부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부모의 가치관을 거스르지 못하고 인정과 사랑을 얻으려는데 사로잡혀 자신의 정체성을 발달시키기가 어려웠다. 

부모와 무의식적으로 연결된 폭력적인 행동방식을 자신도 모르게 다시 반복하고 있었다. 정서적으로 학대를 당한 사람들은 어릴 때 받지 못했던 것들을 받고 싶은 간절한 욕구로 인해 성인이 되어도 부모로부터 분리되지 못한다. 그러나 어릴 때 받지 못한 것은 어른이 되어서도 받지 못한다. 부모와  자아분화가 아직 덜 된 사람은 다음과 같은 특성이 있다. 성인이 되어도 독립된 개인이 아니라 아직도 내면에 상처 받은 어린아이처럼 행동한다. 

자기 뜻대로 안되면 울어버리는 아이처럼 감정적으로 대응한다. 타인에게 밀착의존한 채 내가 못하는 것을 네가 대신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 인정하지 않고 계속 부인하며 지낸다. 

또 아무 비판이나 의문 없이 부모의 가치관과 믿음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부모의 행동을 따라 하고 똑 닮은 사람이 되거나 정반대가 되려고 애쓴다. 부모를 절대 화나게 하거나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결혼 이후에도 부모와 건강한 경계나 한계선을 긋지 못하고 고무줄처럼 계속 끌려다닌다. 부모의 인생과 나의 인생을 구분짓지 못한다.

과거의 자아가 해결되지 않은 채 엉킨 관계는 치유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 계속해서 괴롭히며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P씨가 부모와 정서적 분리와 자아분화를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들이 있었다.  부모의 인생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면서 수용하고 내가  엄마 인생의 결핍을 대신 채워주려고 해서는 안된다. 어렸을 때 받지 못했던 지지와 격려를 나에게 해주기, 표현하기 두려웠던 분노를 표현하기, 자신의 채워지지 않는 욕구들을 인정하기 등이다. 이제 그는 그러한 욕구들을 부모에게 기대할 시기는 지나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부모 밑에서 겪은 모든 고통과 거부, 유기, 그리고 배반에 대해 충분히 슬퍼하고 가슴 아파하기, 나 자신에게 공감해주고 위로 해주면서 나를 보살펴야 한다. 자신의 분노를 표현하고 떠나보내기다. 학대한 사실을 부모에게 직면시키는 행동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분노 편지(부모의 행동, 자신의 느낌, 영향, 그때 부모에게 원했던 것, 지금 부모에게 원하는 것)를 미리 써서 자신의 감정을 자신감 있게 긍정적으로 표현하기다.

용서하기는 나에게 미친 영향력을 정확히 알고 충분히 그에 따른 감정을 재경험하고 발산할 때 가능하다. 그렇게 해도 괜찮은 것이 아니라 그 일로 더 이상 힘들어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자신을 위해 용서하기다. 이런 과정 속에서 P씨는 엉킨 부모와 매듭을 풀어나갈 때 부부관계에서도 관계회복이 가능하다. 

 

김혜숙 백석대학교 교수  kimhes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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