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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달의 교육칼럼]'원형 동물 아파트'의 비밀
조영달 서울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 승인 2020.12.21 11:30

[여성소비자신문]덩치 만 큰 곰이 왕으로 있는 동물왕국은 과거 수 십년 동안 많은 발전을 이룩하였다. 그 동안 산업을 발전시키고 다른 동물 나라와 교류하면서 경제적으로도 크게 부유해졌으며 더하여 일반 동물들도 자유롭게 자기의견을 말하고 왕궁을 비판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곰 왕의 신하들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게 되었으며 그는 이러한 비판이 자신을 목 죌까 두려워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곰 왕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그것은 거대한 둥근 원형의 아파트를 만들어 모든 동물들이 거기에 거주하게 하고 둘러 처진 원형 아파트의 중간에 탑을 세워 왕을 보좌하는 왕궁의 관료 동물들을 거기에서 일하게 하는 방안이었다. 중앙의 탑에는 창문을 내고 원형 아파트는 밝게 하여 중앙 탑에서 아파트에 거주하는 동물들을 잘 들여다 볼 수 있게 하였다.

이렇게 되자 중앙에 있는 왕궁 관료들은 쉽게 일반 동물들을 볼 수 있었고 원형 아파트에 거주하는 일반 동물들은 둥근 중앙 탑의 한 쪽 만을 볼 수 있어 왕궁 관료들의 행동을 모두 파악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즉, 왕궁의 관료들은 분명히 중앙에 있지만, 일반 동물들은 그 존재를 제대로 알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시선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원형 아파트에 거주하는 일반 동물들은 자신이 항상 감시받고 있다는 환영에 시달리면서 심지어는 곰 왕국의 일에 대해서는 스스로 말과 행동을 자제하는 상태까지 이르게 되었다.

더하여 왕궁 관료들은 중앙에 있는 탑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원형 아파트에 거주하는 동물들을 쉽게 둘러보면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잘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활용하여 왕궁의 생각을 더욱 잘 홍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원형 아파트에 거주하는 일반 동물들은 왕궁의 정책이나 일에 대하여 자유롭게 말하기 더욱 힘들어졌다. 곰 왕의 아이디어는 적중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의 책(‘감시와 처벌’)에 소개된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의 원형감옥(Panopticon)을 우화의 형식으로 언급한 것이다. 오늘과 같은 지능정보사회에서 권력의 감시체계는 원형 동물 아파트와 매우 유사하다.

오늘날 우리의 경우에도 국가와 큰 기업들은 손쉽게 개인을 감시하는 체계를 갖출 수 있다. 소비자 데이터 베이스, 스마트폰, 신용카드, 컴퓨터, CCTV, GPS가 부착된 각종 기기, QR 코드 등 디지털의 흔적이 남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감시당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코로나19의 방역을 위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QR코드 확인도 이러한 체계를 활용한 것이다. 서울의 어떤 지역은 수 백 개의 CCTV로 방범을 위해 24시간 행인을 관찰하고 있기도 하며, 때로 휴대전화의 위치 추적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또한 개인과 관련된 모든 정보가 쌓이는 오늘의 빅데이타 시대에서 앵커링(anchoring)을 통해 여러 이질적인 정보를 모아 한 개인을 파악하는 일도 가능하다.

그런데 이러한 지능정보 사회에서 널리 퍼진 다수의 상호연결과 네트웤은 동시에 다수의 시민들에게 기업과 국가를 상호 감시할 수 있게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갑질 사례를 인터넷에 공개하거나 국가의 불합리한 정책이나 행위를 SNS를 통해 공개하고 여론에 호소하는 것 등도 그 사례이다. 과거 미국에서 있었던 로스앤젤레스 폭동에서 한 시민이 로드니 킹 구타 장면을 찍어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경찰의 대화를 공개한 것도 이러한 상호감시의 예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호 감시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비판의식과 더불어 잘못된 일에 행동으로 나서려는 태도도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일종의 익명성에 대한 보장도 중요하다. 이것이 보장되지 않으면 어떤 개인 선뜻 나서서 국가를 상대로 감시자의 역할을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더하여 정보 윤리의 확립도 매우 중요하다. 물론 프라이버시의 권리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은 화상 채팅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서 자신의 사진을 올리고 자신의 사생활을 공개하는 것을 즐겨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프라이버시는 단순히 침해 없이 자유롭게 혼자 있을 수 있는 권리가 아닌 개인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이라는 관점에서 재조명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가 비판의식과 정보윤리의 확립을 통하여 자신의 정보를 자기 뜻대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하려는 노력을 포기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복잡한 지능정보 시대에 그저 세상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목격자에 불과하게 될 것이며 그 순간부터 원형감옥의 감시체계를 벗어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정책결정자나 통치자가 말하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며, 스스로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존재이기를 포기하게 될 것이다.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조영달 서울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k-leec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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