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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소비자 피해구제 위해 제조물책임법 개정해야
연기영 동국대 법대 명예교수 | 승인 2020.11.29 23:58

[여성소비자신문]지난 11월 20일 6년간 끌어온 대규모 담배소송 1심판결에서 원고패소 판결이 나왔다.

서울 중앙지법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 2014년 제기한 KT&G와 브리티쉬아메리칸토바코(BAT)코리아, 한국 필립모리스를 상대로 낸 537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연이은 담배 위험 피해자의 소송 패소

패소 이유는 원고(건보공단)가 제출한 자료들은 환자들이 흡연을 했다는 사실과 해당 질병에 걸렸다는 사실만을 증명할 뿐 둘 사이의 인과관계를 증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환자들이 흡연 외에 다른 발병 요소가 없다는 점을 추가적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점을 대단히 중요시 여긴 결과이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이루어진 담배 관련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가 승소한 판례는 아직 없다. 2014년 폐암으로 사망한 유족들이 KT&G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흡연은 자유 의지에 따른 것’이라고 판결한 바 있다(대법원 2014. 4. 10. 선고 2011다22092 판결).

원고 승소 판결이 시작된 미국의 담배소송 과정

이러한 우리나라 법원의 태도는 미국 등 여러 나라 법원에서 담배 제조회사들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물론 미국에서도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약 300건의 담배소송이 제기되었지만 담배회사들이 한 번도 패소를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1990년 미국의 담배소송 판결에서 흡연과 폐암 간의 인과관계가 처음으로 인정되기 시작했다. 환경과 공해, 제조물 소송에서 통계학이 동원되고 역학적 인과관계의 적용이 주장되어 새로운 판례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1994년에는 미국 미시시피, 미네소타, 웨스트버지니아 3개 주정부가 담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기존 담배 소송처럼 흡연 피해자들이 직접 낸 것이 아니라 흡연 피해자들에게 주정부가 지불한 의료비를 담배 제조회사에 구상 청구하는 소송이었다.

결국 원고인 주정부들과 4개 담배 회사가 화해 합의로 담배 회사들이 25년간 2060억달러(약 200조원)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하기로 했고, 내부 문건을 공개하며 각종 광고에 제한을 받게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담배회사에 제조물책임을 지우는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담배 소송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판결은 2006년 미국 연방대법원 글래디스 케슬러(Gladys Kessler) 판사가 내놓은 이른바 ‘케슬러 판결’이다. 1999년 미 연방정부가 담배회사 필립모리스를 비롯한 7대 담배회사와 2개 담배 연구소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미 연방정부의 승리로 끝났다. 연방정부는 이 소송에서 “담배회사들이 50년간 공모하여 흡연의 유해성에 대한 정보를 숨겼고 담배가 유해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소비자(흡연자)를 속여 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케슬러 판사는 1742쪽에 달하는 판결문을 통해 담배회사의 기망 행위를 인정하여 원고(연방정부)의 승소를 선고한 것이다. 즉, “흡연은 암 등 질병발생과 사망의 원인이다. 담배회사들은 이 사실을 알고도 공식적으로 수십 년 동안 이를 인정하지 않고 사실을 왜곡했으며 그 피해 사실을 속여 왔다. 담배회사들은 담배의 유해성에 대한 연구를 못 하게 막았고 연구 결과를 은폐하며 니코틴 중독을 유지하기 위해 니코틴의 함량을 조작했다.

결국 담배회사들이 생산·유통시켜 온 위험한 중독 물질로 인해 많은 질병이 발생했고 사망자가 속출하여 회복할 수 없는 고통과 경제적 손실을 가져 왔을 뿐만 아니라 국가 보건 재정에 엄청난 부담을 지워 많은 이득을 올렸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이번 건강보험공단이 담배 제조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흡연과 질병사이의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아서 패소한 것과 대조적임을 알 수 있다.

담배소비자 피해가 구제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담배소송에서 소비자가 패소하는 이유는 결국 담배회사가 가지고 있는 담배의 유해성 연구 문서와 설계 및 제조 과정에 대한 내부정보가 공개되지 않아서 흡연과 질병발생의 인과관계의 입증이 좀처럼 쉽지 않다는데 있다.

이미 담배에는 약 1200 종류의 유해 화학 물질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 중 약 20 종류는 발암물질이라는 사실은 밝혀졌다. 또한 흡연과 폐암 발병 사이에 높은 정도의 역학적 인과관계가 존재한다는 점은 여러 연구를 통해 증명된 바 있다. 담배가 인체에 해롭다는 사실은 우리 법원 판례에서도 인정했다.

다만 소비자들이 인체에 해로운 기호품임을 알고서도 흡연을 했고, 흡연으로 인한 질병 발생의 인과관계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질병발생이나 사망 원인이 다른 사정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다른 사정이 없다는 것을 소비자가 입증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법원의 태도는 소비자에게 과도한 입증책임을 부담시키는 것으로 너무 보수적 입장이다.

담배의 중독성과 유해성은 인정하지만, 소비자들의 질병이 개개인의 생활습관, 유전, 주변 환경 등 흡연 이외 다른 요인에 의해 발병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담배회사의 주장을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또한 대기오염과 가족력, 음주, 스트레스 등 다양한 요인들이 폐암 발병 원인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 이를 흡연 등 특정한 병인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특이성 질환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피해구제 위한 제조물책임법 개정의 필요성 커져

미국의 담배소송에서 발전한 제조물 책임의 법리를 우리 법원에서 적용하기는 쉽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결국 법령의 개정을 통해 담배 소비자를 위험으로부터 구제해야 할 것이다.

2017년 소비자피해구제를 목적으로 제조물책임법을 일부 개정한 바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내용을 재개정해야 담배 흡연자 등 소비자보호의 실효성이 확보될 수 있다.

첫째 제조물의 결함과 인과관계에 대한 소비자(원고)의 입증책임을 완전히 완화해 주어야 한다. 그동안 일부 대법원판례에서도 인정한 입증책임 추정과 전환의 법리를 반영하여 증명책임을 완화하는 내용이 2017년 개정법에 반영되었다. 그러나 결함과 인과관계의 추정에 단서를 규정하여 그 실효성을 담보하지 못하게 되었다.

즉, “피해자가 해당 제조물을 정상적으로 사용하는 상태에서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만을 증명한 경우에는 제조물을 공급할 당시 해당 제조물에 결함이 있었고, 그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하여 손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 다만, 제조업자가 제조물의 결함이 아닌 다른 원인으로 인해 그 손해가 발생한 사실을 증명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제3조의2 신설).”는 바로 이 단서를 삭제해야 한다.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한 사고에 대해 인과관계의 추정력을 완전히 부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둘째, 집단소송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이 점에 관하여는 여성소비자신문 제186호, 12쪽, 2020.11.15.등 필자의 글에서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담배 소비자의 피해처럼 집단적 피해발생을 위해 사용되는 현행 공동소송제도나 선정당사자제도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셋째, 결함 제조물로 인한 집단적 소비자 피해분쟁 사건은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대체적 분쟁해결 절차를 거치도록 의무화하고, 분쟁조정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조정안에 대한 편면적(내지는 일방적) 구속력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일반 소비자분쟁조정 제도를 규정하고 있는 소비자기본법을 개정하는 방안과 제조물책임법을 개정하여 이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이 있다. 제조물책임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제조물책임법에 규정하는 것이 좀 더 실효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넷째, 제조물책임보험이나 피해보상기금의 조성의 의무화를 규정하여 소비자피해구제가 신속하고 철저하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에 규정된 내용과 유사하게 책임보험제도를 법제화해야 한다. 또한 담배사업자와 같이 독점적 전매사업으로 이익을 창출하고 불특정 다수의 흡연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개연성이 항시 존재함으로 일정 수익금을 출연하여 피해보상금으로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제도는 의약품 부작용에 대한 피해보상제도가 모델이 될 것이다.

 

 

 

 

연기영 동국대 법대 명예교수  yeunky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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