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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집단소송법 제정, 소비자주권 보장 위해 필요
연기영 동국대 명예교수 | 승인 2020.11.16 14:36

[여성소비자신문] 집단소송제도 도입의 찬반 여론

정부가 지난 9월 28일 ‘집단소송법 제정안’을 발표하자, 소비자 관련 단체와 경제인 단체 간에 제도 도입에 관한 찬·반 의견이 엇갈려 충돌이 심화되고 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등 소비자 관련 단체들은 “집단소송제도의 확대·도입을 시작으로 부도덕한 일부 기업들로 인해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이 제대로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으며, 이 제도는 사후 구제책이 아닌 사전 예방적 효과를 발휘해 소비자피해예방은 물론 건전한 기업 육성으로 기업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집단소송법의 제정은 우리나라 헌법에 규정된 경제민주화와 소비자주권 보장을 위해 당연한 입법정책이라는 것이다.

반면, 경제인총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등 기업인 단체는 일제히 이 법안을 반대하는 의견서를 정부에 제출했다고 한다. 경총은 “기업은 소송 제기만으로 이미지 타격을 받고, 이는 주가 폭락·신용경색 등 경영상 피해로 이어진다”며 “소송대응력이 취약한 중소·벤처기업들은 금전적 부담으로 생존 위협을 받게 된다”고 주장했다.

중기중앙회는 “집단소송법이 제정될 경우 자금여력이 없고 법적 대응능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은 도산에 까지 이를 수 있다”며 “집단소송제는 개별법에 선별적으로 도입하고 소송허가 요건을 강화해 남소를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소비재 중소기업 500개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집단소송제 확대도입에 대한 의견조사’에서 응답 업체의 68.8%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단소송법은 왜 필요한가?

정부가 집단소송법의 입법예고를 하면서 법 제정의 이유를 분명히 밝혔다. 즉, 2005년부터 시행되어 온 증권 분야의 집단소송제를 모든 분야의 소비자피해로 확대하여 도입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집단적 피해사고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으나, 개별 소송 수행의 부담 및 소송 실익의 한계로 인해 피해구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가 꾸준히 지적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단적 피해에 대해 효율적인 구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정부 법안에는 집단적 피해분쟁 해결을 위한 절차의 신뢰성과 사회적 타당성을 제고하고자 현행 형사 분야에 한정된 국민참여재판을 도입하고, 집단적 피해구제 절차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소송 전 증거조사 제도를 두고자 함이 우리나라 민사소송제도의 틀 속에서는 새롭고 특이하다.

이미 헌법재판소의 2001년도 판결에서 “우리 헌법의 경제 질서는 사유재산제를 바탕으로 하고 자유경쟁을 존중하는 자유시장 경제 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이에 수반되는 갖가지 모순을 제거하고 사회복지·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적 규제와 조정을 용인하는 사회적 시장경제 질서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선언한 바 있다.

또한 헌법상 소비자 주권의 보장은 국가의 의무로 규정되어 있어 소비자 보호 실체법의 정비는 물론이고 소비자 피해구제를 위한 절차법의 마련은 입법정책의 기본방향임이 분명하다.

그동안 16년을 시행해 온 증권 분야의 집단소송제도도 절차적 복잡성과 실효성의 미약함으로 인해 소송사례도 겨우 13건으로 1년에 채 1건도 제기되지 않은 셈이다. 이처럼 증권집단소송 사례가 드물었던 가장 큰 이유로는 증권집단소송법 특유의 ‘6심제’ 구조가 꼽힌다.

이 재판 1심에서 집단소송 허가 결정이 나와도 피고가 항소하면 3심까지 갈 수 있어 사실상 6심제 구조로 운영되면서 일반 소송보다 원고의 시간과 비용 부담이 훨씬 컸다.

실제로 증권집단소송법 시행 이후 첫 본안 재판 사례로 지난 2010년 1월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로열뱅크오브캐나다(RBC)를 상대로 낸 집단소송의 경우 무려 6년이 지난 2016년 3월에서야 소송 허가 결정이 나왔다.

두 번째 집단소송 허가 사례로 2011년 상장 폐지된 씨모텍 주주들이 동부증권 상대로 낸 집단소송도 2016년 11월에 대법원에서 소송 허가 최종 결정을 받는 데 꼬박 5년이 걸렸다. 이밖에 첫 집단소송 승소 사례인 2012년 ELS 투자자들이 도이치은행을 상대로 낸 소송도 4년여가 지난 2016년 6월에서야 소송 허가 결정이 나왔다.

집단소송법 도입은 어떤 효과가 있는가?

집단소송법이 제정되면 그동안 활성화가 어려웠던 증권분야의 집단소송절차도 간소화되어 최근 대형 소비자피해를 발생시킨 라임·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사태 등 관련 소송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의약품, 식품, 가전제품 등의 대형 제조물 책임 소비자피해구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동안 많은 인명피해를 가져온 가습기 사건을 예로 들어본다.

SK케미칼은 글로벌 제약사 옥시레킷벤키저의 가습기 살균제 원료를 공급한 바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6823명으로, 이 중 사망자는 1553명에 이르렀다. SK케미칼은 지난 2016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400여 명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 중이다. 코오롱생명과학은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의 성분이 뒤바뀐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난해 환자 900여 명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인보사를 투여한 환자는 총 3201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의 경우 인당 손해배상 청구액은 3000만~5000만원이다. 집단소송법이 적용되면 2000억~3000억원을 배상해야 할 수도 있다. 인보사의 손·배 청구액은 인당 700만~1400만원으로, 전체 환자들이 구제신청을 할 경우 총 금액은 224억~448억원에 달한다. 만약 이들 제약기업들이 패소한다면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수천여명에 손해배상까지 감당해야 한다.

일부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허가와 다른 원액을 사용해 보툴리눔톡신을 제조‧생산했다가 국내 품목허가 취소 처분을 받으면서 인터넷상에서 소비자들의 소송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유통 및 이물질로 문제가 된 독감 백신도 마찬가지다. 현재 독감 백신에 따른 부작용 신고사례는 1787건에 달한다.

집단소송법안에는 증거조사 특례 조항이 담겨있어 기업들에게 더욱 부담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사전 증거조사는 소비자가 개략적인 증거를 제시하면 기업은 구체적인 인과관계와 정보 등 증거를 제출하여 입증책임을 부담하는 입증책임전환의 법리가 적용되는 것이다.

한국형 집단소송법 도입 필요

무엇보다 바람직한 한국형 집단소송법의 도입이 필요하다. 현재 입법예고한 정부의 입법안에는 이른바 미국식의 집단소송은 미국형의 집단소송법제인 제외신고(opt-out) 제도가 들어있다. 즉, 집단소송의 확정판결은 제외신고를 하지 아니한 구성원에 대하여도 그 효력이 미치도록 한다는 것이다(법안 제41조). 물론 지난 19대 국회 및 20대 국회에서 의원입법으로 제출되었던 20여개 법률안들도 대부분이 미국식 모델 을 제시한 바 있다. 현행 증권집단소송법에 이 제도를 도입했지만,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일반 집단소송법에는 우리의 법제에 적합한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러한 미국식 제도는 우리나라 사법제도에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적합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첫째, 미국형의 집단소송법제인 제외신고(opt-out)형 소송절차는 헌법상 보장된 피해자의 재판상 청구권 및 민사소송법상 처분권주의에 위배될 수 있다.

둘째, 미국식 대표당사자형을 일반법으로 도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만약 집단소송의 제소권을 소비자단체 등 제3자에게 국한시켜야 한다. 현행 소비자 기본법 상 소비자단체 소송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올바른 입법정책이다. 민사상의 성공보수 약정이 자유롭기 때문에 변호사에 의한 집단소송 제기의 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실정에 적합한 한국형 집단소송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공통심리와 개별심리를 구별하지 않고 하나의 소송에서 구성원 전체를 위한 총액판결이나 급부판결을 구하는 유형(소위 ‘1단계형’)보다는 공통심리와 개별심리를 구별하여 1단계 소송에서는 공통되는 쟁점을 심리하고, 2단계 소송에서 개별 피해자의 권리확정을 통해 개별적 급부이행을 명하는 일본형(소위 ‘2단계형’)을 채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2018년 독일이 집단소송법을 제정했고, 프랑스도 2014년 집단소송법 제정 이후 지속적으로 개정을 하고 있다. 일본도 집단소송법을 제정했다. 미국식 모델만을 고집하지 말고 기업과 소비자가 상생할 수 있는 우리 법제에 맞는 새로운 한국형 모델을 심도 있게 연구·개발하여 향후 입법과정에서 반영되기를 바란다.

연기영 동국대 명예교수  yeunky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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