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 2020.11.25 수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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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래 그 사연] 사랑 고백 담긴 10월의 마지막 밤 가요 ‘잊혀진 계절’[왕성상의 그 노래 그 사연] 이용, 가요 大賞 휩쓸며 대히트…‘박정희 추모곡’ 등 헛소문도
왕성상 언론인/가수 | 승인 2020.10.28 11:12

[여성소비자신문] ‘잊혀진 계절’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를 남긴채 /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 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 나를 울려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 그대의 진심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 잊혀져야 하는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 나를 울려요

박건호 작사, 이범희 작곡, 이용 노래의 ‘잊혀진 계절’은 가을의 대표가요로 꼽힌다. 해마다 10월 31일 밤이면 전파를 탄다. 그날 국내에서 가장 많이 방송되는 곡이다. 하루 동안 단일곡, 단일국가 방송횟수 137회를 기록하며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4분의 4박자 슬로우고고 풍으로 운치가 있다. 떠나보내는 연인과 가을밤을 아쉬워하는 것 같다. 노래가 만들어지고 히트하기까지의 사연이 재미있다. 작사가(시인) 박건호의 대표작으로 그가 알고 지내다 헤어진 한 여인에 대한 이별의 아픔을 그린 것이다.

1982년 비가 내리는 9월의 어느 날 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소는 서울시내의 한 술집. 박 씨가 사귀던 ‘정아’란 여성과 술자리를 갖게 됐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그는 2홉(360ml)들이 소주 한 병을 비우고 취해 있었다. 함께 했던 그녀는 박씨가 걱정돼 술값을 치르며 주인에게 “더 이상 주문을 받지 말라”고 일렀다. 박씨는 여름옷을 입고 있어 찬바람에 옷깃을 스몄다. 그는 술에 취한 나머지 쓸쓸함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는 여인과는 ‘사랑’이란 말을 주고받을 만큼의 관계는 아니었다. 자주 만나 얘기하고 공감하는 정도의 이성 벗이었다.

“나 혼자만의 짝사랑일까?”

그날따라 박씨의 감정은 평소 같지 않았다. “나 혼자만의 짝사랑일까?” 그는 자신에게 의문을 던지며 “차라리 헤어져버리자”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더 이상 사랑을 이어갈 수 없는 마음의 부담 때문에 이별을 결심한 순간이었다.

박씨 마음을 아는지 그녀는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박 씨를 부축, 시내버스에 태워주며 안내양에게 “이 분 흑석동 종점에서 내리게 해주세요!”라고 부탁한 뒤 헤어졌다.

밤늦은 시간 버스 안은 만원이었다. 박씨는 문 쪽에서 흔들리며 서 있다가 자신의 집이 있는 서울 흑석동까지 가지 않고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다. 그러고선 그녀가 간 쪽으로 내달렸다. 그녀에게 무언가 꼭 할 얘기가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거리엔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그는 빗물에 옷이 젖어 한기가 들었다. 한참을 달려간 그의 눈에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보였다. 서울 동대문에서 창신동으로 꺾어 들어가는 곳이었다.

그는 숨이 턱에 닿는 목소리로 “정아씨!”하고 불렀다. 그녀는 깜짝 놀라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봤다. 박씨는 그녀 앞으로 달려가 “사랑해요!” 한마디를 던지고 달아났다. 용기를 내어 불쑥 말은 했지만 다음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두렵기도 했고 쑥스러웠던 것이다.

박씨는 내달리면서 “아~ 나는 왜 근사하게 사랑고백을 하지 못했을까?”하며 후회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그녀의 놀란 표정이 계속 따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 후 둘의 만남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날 밤 사랑고백과 이별의 경험이 박씨를 두고두고 괴롭혔다. 피어나지 못한 첫사랑의 아쉬움만은 아니었다. 뭔가 찝찝하고 아쉬운 비 내리는 9월의 밤 이별 때문일까.

그 무렵 신인작곡가 이범희씨 곡에 박씨의 이런 사연과 느낌을 노랫말로 새겨 넣어 신인가수 이용이 취입했다. 제목은 ‘잊혀진 계절’. 1982년 3월 17일 발매된 이용의 1집 음반 머리 곡으로 실렸다. 반응은 대박이었다. 방송전파를 타고 여러 무대에서도 소개되자 음반을 사려는 사람들이 레코드가게로 몰려들었다.

가요팬들의 인기는 대단했다. 실업자에 가까웠던 신인 작사가 박건호, 신인 작곡가 이범희, 무명 가수 이용은 한방에 떴다. KBS ‘가요 톱텐’에서 연속 5주 1위를 하며 골드컵을 받았다. 그해 말 MBC 10대 가수 가요제 대상, KBS 가요대상 작사부문상, 가톨릭가요대상 등 가요관련 상들을 휩쓸었다. 이용은 노래인기에 힘입어 1984년 5월 27일 개봉된 멜로영화 ‘잊혀진 계절’(감독 이형) 주연으로 출연했다.

이용은 해마다 10월말 밤이면 방송사를 돌며 ‘잊혀진 계절’의 노래사연과 추억을 나눈다. 방송국과 유흥업소들은 이용 모시기 경쟁이 뜨겁다. 스케줄이 많아 헬기를 동원, 전국을 다닌 적도 있었다. ‘잊혀진 계절’은 다른 가수가 리메이크하거나 무대에서 가장 많이 부른 노래 중 하나다. 유튜브에 음원이 있는 가수들이 적잖다. 나훈아, 전영록, 최백호, 설운도, 이선희, 박화요비, 김범수, 박강성, 임영웅 등 헤아릴 수 없다.

노래 원래 제목은 ‘9월의 마지막 밤’

이 노래는 처음엔 가수 장재현이 부르도록 됐다가 이용에게 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영남이 취입할 뻔했던 사연도 있다. 이용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 노래음반을 만든 지구레코드사 사장이 고음을 잘 내는 가수에게 주라고 해 원래는 조영남이 부르기로 했다. 그러나 바쁜 일정으로 약속이 틀어져 제가 부르게 됐다”고 말했다. 노래가 발표된 지 1년도 안 돼 히트했을 때 이용이 방송사 복도에서 우연히 조영남을 만났다. 조씨는 반가운 인사로 “야, 잘 나가지? 그거 원래 내 것인 줄 알지?”라고 했다는 후일담이 있다.

노래에 얽힌 뒷얘기들도 있다. 먼저 제목이 바뀐 사연이다. 원제목은 ‘9월의 마지막 밤’이었으나 음반발매가 늦어지면서 ‘잊혀진 계절’이 됐다.

노랫말 주인공이자 작사를 한 박건호의 마음을 말해준 것이다. 그는 여자친구와 만난 그날 밤 마음이 몹시 춥고 외로웠다. 그에겐 차라리 잊고 싶은 계절이었다. 젊음의 열병과 사랑의 시련, 현실적 장벽이 그의 섬세한 감성을 짓밟았던 것이다.

빅히트곡이 되면서 여러 얘기들이 나돌았다. 작사가 박씨의 노랫말 사연을 모르고 “유신의 후예들이 1979년 ‘10·26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추모해 만든 노래”라는 등 헛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취입과정에서 노랫말도 바뀌었다. 1절 앞쪽 ‘시월의 마지막 밤’은 원래 ‘9월의 마지막 밤’이었다. 노래 발표 시기와 느낌상의 문제로 녹음 직전에 바뀌었다. 중간 도입부로 넘어가는 ‘쓸쓸했던 표정이’란 표현도 ‘씁쓸한 표정이’가 바뀌어 녹음됐다.

노래가 갑자기 뜨자 그렇게 굳어버렸다. ‘잊혀진 계절’의 표기가 틀렸다는 지적도 있다. 맞춤법 잘못으로 바른 표기법은 ‘잊힌 계절’. ‘잊다’의 피동형은 ‘잊히다’이다. 따라서 ‘잊힌’이 돼야 옳다.

이용, 손석희 사장, 배우 송승환과 동기

이용은 1958년생으로 1981년 서울예전 재학 때 서울 여의도서 열린 ‘국풍81’ 대학가요제 때 ‘바람이려오’를 불러 금상을 받고 가수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서울 휘문고 재학 때부터 가수의 재질을 보였다. 손석희 JTBC 사장, 배우 송승환과 고교 동기다.

이용은 1999년 봄부터 대전 우송정보대학 방송음악과 겸임교수로 강단에 섰다. 그는 1985년 미국 필라델피아 템플대학교 음대에서 작곡공부를 했다. ‘몰래한 사랑’(김지애), ‘사랑은 길어요’(하춘화) 등이 그가 작곡한 노래다. 이용의 아들(이욱, 미국명 알렉산더 욱 리)도 음악가의 길을 걷고 있다. 성악을 전공한 테너로 2016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헌팅턴에 있는 마셜대학교 음대 성악과 교수가 됐다.

‘잊혀진 계절’ 작사가 박건호는 1949년 원주에서 태어났다. 1972년 박인희가 불러 히트한 ‘모닥불’ 작사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내 곁에 있어주’, ‘아! 대한민국’, ‘빙글빙글’, ‘환희’, ‘모나리자’, ‘오직 하나뿐인 그대’, ‘슬픈 인연’ 등 3000여 곡을 작사했다. 시집 ‘영원의 디딤돌’, ‘타다가 남은 것들’, ‘고독은 하나의 사치였다’, ‘기다림이야 천년을 간들 어떠랴’ 등도 냈다. 그는 2007년 12월 9일 오후 10시30분 별세했다. 향년 58세. 1980년대 후반 뇌졸증으로 언어장애와 손발마비 중풍을 겪다 눈을 감았다.

왕성상 언론인/가수  wss4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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