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 2020.10.22 목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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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래 그 사연]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왕성상의 그 노래 그 사연]가수 현철, 아내 위해 만든 히트곡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왕성상 언론인/가수 | 승인 2020.09.12 20:10
[여성소비자신문]   가수 현철, 아내 위해 만든 히트곡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무명가수생활 그만두려고 1982년 마지막으로 만든 노래로 ‘대박’
꺾기창법, 구수한 목소리, 사투리 입담 인기…“가장 애착 가는 곡”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떠오르는 당신 모습
피할 길이 없어라
가지 말라고 애원 했건만
못 본체 떠나버린 너
소리쳐 불러도아무 소용이 없어라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떠오르는 당신 모습
피할 길 없는 내 마음
가지 말라고 애원 했건만
못 본체 떠나버린 너
소리쳐 불러도 아무 소용이 없어라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떠오르는 당신 모습
피할 길 없는 내 마음
피할 길 없는 내 마음
 
가수 현철(본명 강상수)이 작곡, 취입한 노래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은 남편이 아내를 생각하는 대중가요다. 현철의 출세곡으로 빅 히트곡이다. 4분의 4박자로 멜로디가 부드러우면서도 리듬이 차분하게 흐른다. 노랫말은 현철이 알고 지내던 부산지역 방송국의 김양화 PD가 썼다. 노래제목의 ‘당신’은 ‘현철의 아내(송애경)’를 말한다.

노래엔 숨은 사연이 있다. 현철의 아내를 빼놓을 수 없다. 현철은 무명가수시절 친구 집에서 셋방살이를 하는 등 어렵게 살았다. 결혼 후 10여 년은 가난의 연속이었다. 집을 13번이나 옮겼을 정도였다. 봉지쌀을 사다 먹고 겨울엔 낱장 연탄으로 추위를 이겨냈다. 마지막 이사 땐 철거민 입주딱지를 사 12평짜리 주택에서 살다 서울로 이사했다.
 
가난해 물 한 그릇 떠놓고 결혼식
 
현철 아내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옷가게, 카세트장사를 하면서 살림을 살았다. 그럼에도 부부싸움 한번 하지 않았다. 집안일이나 자녀문제로 다투거나 목소리를 높인 적도 없다. 꾹 참고 버텨준 아내, 늘 따뜻한 말로 또닥여준 남편이었다.
 
결혼 때 물 한 그릇 떠놓고 식을 올렸지만 둘은 사랑의 힘으로 고비를 넘겼다. 부산서 힘들게 산 현철은 어느 날 “도무지 안 되겠다” 싶어 가요계를 떠나려고 마음을 정리했다. 고민 끝에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만들기로 했다. 제목은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평소 미안함과 사랑의 표시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1982년 아세아레코드사(대표 최치수)가 만든 ‘현철과 벌떼들’ 음반 앞면 여섯 곡 중 맨 위에 실렸다. 반응은 아주 좋았다. 현철은 TV방송에 자주 나가지 못해 ‘얼굴 없는 가수’였지만 노래는 인기였다.

이후 ‘사랑은 나비인가 봐’, ‘내 마음 별과 같이’, ‘들국화 여인’ 등도 줄줄이 터지며 1988년부터 3년 잇달아 KBS가요대상과 MBC 10대 가수상을 받았다. 1989년 KBS가요대상을 받을 땐 무명가수시절 의 설움이 생각 나 펑펑 울어 시청자들 눈시울을 적셨다.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히트덕분에 현철은 인기가수로 떠올라 생활이 풀리기 시작했다. 노래 삶을 접으려고 마지막으로 취입한 곡이 대박 나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것이다. 그는 언론인터뷰에서 “정말 출세곡이 될 줄 몰랐다. 그래서 가장 애착이 가는 노래”라고 말했다.
 
“아내가 없었다면 오늘의 성공은 불가능했다. 어린 나이에 시집와 고생을 무척 많이 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아내는 지금도 가끔 방송모니터를 하는 등 남편내조에 열심이다.

올 2월 1일 방송된 KBS ‘불후의 명곡’프로그램에서 현철은 가수 민우혁(본명 박성혁, 1983년생)이 부른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감회에 젖은 그의 모습을 본 관객과 시청자들을 뭉클하게 했다.
 
1968년 ‘무정한 그대’ 부르며 가수 데뷔
 
현철은 1945년 6월 17일 경남 김해군 대저면 도도리 월포마을(현재 부산시 강서구 대저2동)에서 태어나 김해 대저중, 부산 동성고(9회), 동아대 경영학과(1965년 수석입학, 1966년 중퇴)를 나와 가요계에 뛰어들었다. 무명가수생활 20년을 합쳐 음악인생 반세기가 넘는다. 대기만성(大器晩成)형 음악인이다.

그는 ‘울고 넘는 박달재’를 잘 불렀던 어머니의 노래소질을 이어받았다. “목소리가 독특하니 그쪽으로 한 우물을 파라”는 동료와 주변사람들 권유도 있어 노래콩쿠르에 자주 나갔다. 아들이 은행원이 되길 바랐던 부모로부터 야단도 많이 맞았다. 그의 아버지는 종묘장사를, 어머니는 5일 장터 좌판에서 씨앗을 팔곤 했다.

대학은 갔지만 끼를 못 버려 가수의 길을 걸은 현철의 노래처럼 그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1968년 ‘무정한 그대’를 부르며 가수로 데뷔했으나 빛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솔로가수 활동을 접고 1974년 부산에서 록 밴드 ‘현철과 벌떼들’(작곡가 박성훈 등 7명)을 만들었다. 팝송을 리메이크해 열심히 불렀지만 눈길을 끌지 못했다. 무명시절은 길었다. 1980년 ‘현철과 벌떼들’도 깨졌다.

1982년 다시 솔로가수가 돼 첫 취입한 노래가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이다. 40대 중반 햇빛을 본 곡으로 그에게 희망과 용기를 줬다. 현철은 자신만의 주특기를 살리며 가요 팬들을 파고들었다. 구수한 목소리, 사투리가 묻어나는 입담, 편안한 느낌의 동네아저씨 같은 분위기로 점수를 높게 받았다. 민요풍이 더해진 구성진 꺾기창법은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다. 노래를 귀 기울여 들어보면 ‘도레미’ 음계 중 높은 ‘미’ 음에서 꼭 꺾어진다. 민요가락 ‘닐리리야  닐리리야 니나노∼’ 할 때 끝 음이 살짝 올라가는 식이다.
 
아내와 1남 1녀…며느리, 사위 얻어
 
무명가수시절 에피소드가 재미있다. 1987년 리비아 대수로공사 현장공연을 갈 때였다. 현지근로자들이 고국의 아내가 보고 싶어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을 부른 가수를 공연단에 꼭 넣어달라고 했다.

KBS방송팀은 현철을 조용필, 김세환, 주현미, 김연자, 현숙, 나미, 백남봉 등 인기스타들과 합류시켰는데도 얼굴이 안 알려진 그를 근로자로 알아 웃음 짓게 했다.

가난과 무명시절을 이겨낸 현철은 30년 가까이 인기를 끌며 성공한 가수로 우뚝 섰다. ‘사랑은 나비인가 봐’, ‘내 마음 별과 같이’, ‘청춘을 돌려다오’, ‘들국화 여인’, ‘봉선화 연정’, ‘사랑의 이름표’, ‘아미새’, ‘싫다 싫어’, ‘잘 했군 잘 했어 메들리’, ‘항구 메들리’ 등을 발표하며 국내 대표 트로트가수로 우뚝 섰다.

현철은 ▷1988년 KBS 가요대상, MBC 10대 가수상 ▷1989년 일간스포츠 골든디스크상 ▷1990년 KBS 가요대상, MBC 10대 가수상, 고복수가요제 대상, 제1회 서울가요대상 7대 가수상 ▷1999년 KBS 올해의 가수상 ▷2002년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특별공로상(대통령 표창) ▷2006년 목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그는 불교신자로 1남1녀를 뒀다. 며느리, 사위도 얻었다.

이 노래의 작사가 김양화씨는 일본서 태어나 부산지역에서 활동한 언론인 출신이다. 1965년 부산MBC에 입사, 2004년 은퇴할 때까지 PD 겸 작사가로 여러 곡의 노랫말을 썼다. ‘눈물이 진주라면’(이미자), ‘사랑과 우정’(이상열), ‘별이 빛나는 밤의 부르스’(문주란), ‘낙엽은 지는데’(조영남), ‘별 하나의 진실’(높은음자리), ‘소라의 노래’(김하정), ‘내일이면 간다네’(유연실), ‘슬픈 노래는 부르지 않을거야’(조덕배) 등을 작사했다. 가수 조용필을 대마초사건에서 일으켜 세운 대부로도 불린다. 2005년 회고록 ‘긴 세월 짧은 이야기’를 냈다.
 

왕성상 언론인/가수  wss4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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