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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
김희정 기자 | 승인 2020.06.01 10:45

[여성소비자신문 김희정 기자] 실험 기반의 접근법(무작위 통제 실험)으로 빈곤 퇴치 연구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9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들의 최신간이 출간됐다.

아비지트 배너지와 에스테르 뒤플로가 쓴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이 바로 그 책이다. 특히 뒤플로는 역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중 최연소이며 여성으로서는 두 번째 수상자다.

이 책의 두 저자는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이 등에 지고 살아가는 극빈곤 문제를 효과적으로 완화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주로 연구해 왔다. 그런데 이들이 가난한 나라에서 목도했던 문제들은 부유한 나라가 직면한 문제들과도 매우 닮아 있었다.

어떻게 경제를 성장시킬 것인지, 점점 더 심화되는 불평등, 인공지능과 일자리, 보편적 기본소득 논쟁, 곤두박질치는 정부에 대한 신뢰, 극단으로 분열된 사회와 정치, 기후변화의 위기 등은 오늘날 가난한 나라와 부유한 나라 모두가 겪고 있는 문제다.

이 이슈들의 핵심에는 경제학과 경제 정책에 대한 질문이 놓여 있다. 저자들은 우리가 ‘나쁜 경제학’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며, 기존 경제학의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새로운 연구 결과를 앞세운 (실증 증거 기반의) ‘좋은 경제학’으로 그 해법을 찾고자 시도한다. 즉, 이 책은 우리 시대의 긴박한 여러 문제에 대한 최선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저자들은 이주와 이민자 문제에서부터 시작한다. 오늘날 이민자에 대한 혐오는 세계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 멕시코에서 몰려온 이민자들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선동을 비롯하여 이민자 문제는 서유럽 대부분 국가의 첨예한 문제가 되었다. 방글라데시 로힝야족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이는 개도국 일부에서도 확인된다.

이러한 이민자 혐오의 기반에는 이민자가 너무 많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이민자는 전혀 ‘물밀듯이’ 밀려오고 있지 않으며(숫자들을 통해 명백하게 확인된다!), 인종주의자들의 선동을 통해 이민자의 숫자가 과장되게 인식되고 있을 뿐이다.

나아가 저자들은 이주와 이민이 되려 너무 적은 것이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이주나 이민을 통해 보다 나은 일자리와 경제적 보상을 얻을 수 있는데도 사람들은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은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도 떠나지 않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의 재난 상황이 아닌 한 고향에 머무르고 싶어 한다.

중국산 제품의 대량 수입으로 일자리를 잃은 미국의 노동자들 역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면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이주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민자가 많이 유입되면 도착국 노동자는 피해를 보게 되는가?

저자들은 쿠바의 ‘마리엘 보트리프트’를 비롯한 수많은 실증 근거들을 제시하며 통념과 달리 이민자가 상당히 많이 유입되어도 현지인의 고용과 임금에 부정적인 영향은 거의 미치지 않는다는 결론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저자들이 말하는 ‘좋은 경제학’과 ‘나쁜 경제학’은 무엇인가? 먼저 ‘좋은 경제학’은 무언가 의문을 제기하는 현상에서 출발하고, 인간의 행동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작동한다고 알려져 있는 이론들에 대해 몇 가지 추측을 한다.

그리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그 추측들을 검증하고, 새로운 증거와 사실관계에 기초해 때로는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을 전면 수정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운이 좋다면 해법을 발견한다. 가령, 좋은 경제학이 무지와 이데올로기를 누르고 승리한 덕분에 살충제를 뿌린 모기장을 아프리카에 지원할 수 있었고, 말라리아로 인한 아동 사망을 절반 이상 줄였다.

한편, ‘나쁜 경제학’은 대중 매체에 나와 단정적으로 말하고 예측하기를 좋아한다. 그 예로, 아무런 실증 근거도 없이 레스토랑에서 냅킨 위에 그렸던 래퍼 곡선(세율을 낮추면 일할 유인이 커져 세수가 늘어난다는 주장)이나 세금 인하로 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법안이 그렇다.

이제는 세율을 낮추는 것 그 자체로는 경제 성장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게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거의 합의된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의 법안에 명성은 있지만 옛 세대에 속하는 보수적인 경제학자 아홉 명(로버트 배로 등)이 “장기적으로 GDP에 향후 10년간 약 3퍼센트, 연간으로는 0.3퍼센트의 이득이 발생할 것”이라며 지지 서한을 보낸 일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흔히 무역은 모두에게 이득이 되고 모든 곳에서 고속 성장이 일어날 것이라 여겨졌다. 또 성장은 그저 더 열심히 노력만 하면 되는 문제이며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고통은 마땅히 감수해야 할 몫이라고 믿어 왔다. 하지만 이처럼 눈을 가린 경제학은 세계 전역에서 폭발하는 불평등과 사회의 균열을 외면했다.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의 저자들은 모든 경제 주체가 완벽하게 합리적이며 변화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이상적인 모델의 세계에서 작동하는 경제학을 언제나 경직적인 현실의 세계로 끌고 내려와 (실증 증거를 기반으로) 당면한 이슈들을 해결하는 데 활용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신발에 흙을 묻혀 가며 현실의 복잡성에 대해 열정적으로 고민하는 몇 안 되는 경제학자로 저자들을 평했고, ‘가디언’은 이 책이 경제학을 현실로 끌어내렸다고 평했다.

가령 저자들은 무역이 각국의 자본과 노동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스톨퍼-새뮤얼슨 정리에 대해 경제학 이론으로는 그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다고 극찬한다. 그리고 동시에 반문한다. “그것은 진리인가?”

스톨퍼-새뮤얼슨 정리에 따르면, 무역은 모든 나라의 GNP를 올리고, 가난한 나라(노동이 풍부)의 가난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며, 부유한 나라(자본이 풍부)에서는 반대로 노동자가 손해를 보고 자본을 소유한 사람이 득을 본다.

그렇다고 부유한 나라의 노동자, 이를테면 미중 무역 분쟁으로 미국의 노동자가 꼭 그전보다 못살게 된다는 말은 아니다. 자유 무역을 하면 국가 전체적으로 소득이 올라가므로 미국 사회가 자유 무역의 수혜자들에게 세금을 걷어 무역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재분배하면 미국 노동자들의 생활 수준도 전보다 나아질 수 있다. 문제는 이 ‘만약’이 너무나 큰 ‘만약’이라는 데 있다.

결과적으로 시장이 늘 공정하고, 용인 가능하고, 효율적인 결과를 가져다주리라는 믿음은 합리적이지 않다. 저자들은 책 전체에 걸쳐 그러한 사례들을 제시한다. 가령, 경직적인 경제에서는 시장에만 맡겨 둘 게 아니라 정부가 개입해서 이주를 촉진해야 사람들이 실제로 이주를 해 이득을 볼 수 있다.

또한 이주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생계와 존엄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터전에 머물 수 있도록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더 일반적으로 말해 불평등이 극단적으로 심화되는 승자 독식의 세계에서는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 사이에 격차가 점점 벌어지게 되는데, 모든 사회적 결과를 오로지 시장에 의해 결정되게 놔둔다면 이들 사이의 차이와 간극은 돌이키기 어려운 상태가 될 수 있다.

일류 운동선수들은 연봉 상한이 있다고 해서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세율이 올라가면 세금을 회피하려는 시도는 늘어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자들이 일을 덜 한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다. 가난한 사람들도 복지 혜택을 많이 받게 되었다고 해서 일을 그만두거나 덜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경제적 인센티브에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라면 무엇을 신경 쓴다는 말인가? 사람들은 자신의 존엄을 지키길 원하고, 사회적 지위를 높이기를 원한다. 최고경영자들과 일류 운동선수들은 이기고자 하는, 그리고 최고가 되고자 하는 열망에 추동된다.

또 가난한 사람들은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존엄한 인간으로 대우받길 바란다. 심지어 자신들이 범죄자 취급을 받는 상황에서는 차라리 복지 혜택 수혜를 포기하는 일까지 빈번하게 나타난다.

지금껏 많은 정책이 수혜자들의 존엄성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 결과 정책적 지원을 가장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 정책들을 지지하지 않았고, 그러한 정책들은 종종 실패했다. 그러므로 이제 공공 정책은 ‘돈’과 ‘존엄’ 사이의 긴장 관계를 핵심적으로 고려해 설계되어야 한다.

저자들은 개도국에서는 기존의 복지 프로그램을 보편기본소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행정적 여력이 부족하며, 절대 빈곤층 대부분을 빈곤선 위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보편기본소득을 도입하는 데에는 반대한다. 사람들의 ‘존엄’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찰스 디킨스가 소설 ‘어려운 시절’(이 책의 영문판 제목 중 일부이다)에서 그렸던 상황보다 더 복잡하고 첨예한 문제들이 얼키설키하게 엮여 있는 오늘날 그 명쾌한 해법을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무역 확대와 중국 경제의 놀라운 성공에 힘입어 세계 경제가 성장하던 호시절은 가고, 이제는 도처에서 무역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중국의 경제 성장도 둔화되고 있다. 세계 경제의 호황 속에서 성장했던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국가들도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우려하며 잔뜩 긴장하고 있다.

또한 ‘울트라 슈퍼 리치’들의 소득 증가는 ‘성층권으로’ 치솟았지만 나머지 99퍼센트 사이의 불평등은 점점 더 심화되고 있으며, 당분간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최근에는 전 세계를 휩쓰는 새로운 바이러스의 등장과 같은 또 다른 위기를 맞고 있다.

저자들은 자신들의 지식이 불완전하다고 인정한다. 심지어 경제학자들이 빠른 경제 성장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고 실토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거대한 어려움에 맞서 ‘자명’해 보이는 것의 유혹에 저항하고, ‘기적의 약속’을 의심하며, 실증 근거가 무엇인지 질문하고,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으며 알 수 있는지를 솔직하게 인식해야 한다. 좋은 경제학만으로 우리를 구할 수는 없겠지만 좋은 경제학이 없다면 우리는 어제의 치명적인 실수를 반드시 반복하게 될 것이다.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는 경제학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더 나은 세상, 더 제정신인 세상, 더 인간적인 세상을 원한다. “경제학은 경제학자에게만 맡기기에는 너무나 중요하다.”

 

김희정 기자  penmoim@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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