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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 여성영화 스트리밍 플랫폼 '퍼플레이', "여성영화로 먹고 사는 세상 만들 것"
한고은 기자 | 승인 2020.02.23 22:41

[여성소비자신문 한고은 기자] 영화진흥위원회가 실시한 ‘2018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개봉한 상업영화 가운데 여성감독이 연출한 작품은 7.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퍼플레이(purplay.co.kr)’는 바로 이런 남성 중심 영화가 메인스트림을 장악한 영화산업계에 반기를 들며 탄생했다. <미쓰백>, <벌새>, <메기>,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 이르기까지 작품성과 화제성을 고루 갖춘 여성콘텐츠의 발견에 앞장서고 있는 퍼플레이를 만났다.

성평등 가치 담긴 여성중심 영화 발굴

퍼플레이는 (예비)사회적기업 (주)퍼플레이컴퍼니에서 운영하는 ‘여성영화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페미니즘을 상징하는 퍼플(purple)과 플레이(play)라는 두 단어의 합성어다. 여성 감독이 만든 영화나 여성 캐릭터가 주체적으로 등장하는 영화 또는 젠더 이분법에 도전하고 성평등 가치를 담은 국내외 영화를 장르·제작 시기·작품 길이에 상관없이 발굴해 알리고 있다.

퍼플레이 김하나 총괄매니저에 따르면 퍼플레이의 시작은 소박하고 단순했다. 2016년 페미니스트이자 영화관객으로서 기존 남성 중심의 영화 시장에 불만을 갖고 있던 6명의 멤버가 모였다. 뻔한 여성 캐릭터와 스토리, 대규모의 상업 영화가 아니면 개봉관을 찾기도 어려웠던 당시였다. 이에 여성영화 스트리밍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구상을 시작했다. ‘내가 보고 싶은 다양한 (여성)작품을 원하는 때에 쉽게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는 2017년 초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 지원으로 본격적으로 발걸음을 시작했다.

이후 크고 작은 지원사업, 크라우드 펀딩 등을 통해 여성영화 스트리밍 애플리케이션 개발과 서비스 작품 수급을 동시에 추진하며 틈틈이 오프라인 상영회를 개최하고 이름을 알려갔다. 2015년 하반기부터 온라인을 중심으로 페미니즘 이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해를 거듭할수록 여성들의 목소리가 사회전반에서 고조되자 퍼플레이의 활동에도 많은 여성들이 힘을 보탰다.

약 1년간의 개발 기간을 거쳐 2017년 12월, 베타버전의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했다. 이후 2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2019년 11월 퍼플레이는 약 7명의 구성원이 모여 ‘퍼플레이 리부트’라는 슬로건으로 새롭게 리뉴얼해 지금의 모양새를 갖췄다. 퍼플레이 애플리케이션도 리뉴얼해 최종 심사 단계를 남겨두고 있으며 2020년 2월 현재 퍼플레이는 100여 편의 여성중심 작품을 상영 중이다. 인스타그램 등 SNS 채널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큐레이션 포스트를 공유하고 이용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제공=퍼플레이컴퍼니

남성 중심 콘텐츠 범람, 여성소비자는 선택권 없어

자타가 공인하듯 그동안 미디어는 남성 중심의 콘텐츠가 장악해왔다. 미디어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은 매우 지대하므로 남성 중심 콘텐츠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미디어 속 여성이 재현되는 모습도 현실사회에 좋지 않은 영향을 상당부분 끼쳐왔다. 모성과 선정성이라는 두 가지 컬러로만 표현되던 숱한 여성 캐릭터들이 그를 반증한다. 때문에 미디어에서 더 다양한 여성상을 보여주고 성평등의 가치에 관해 이야기 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로 여겨진다.

퍼플레이에 따르면 전국의 대학 연극영화과 입학생 중 여성의 비율은 59%에 달하지만 개봉 시장으로 넘어가면 여성 감독의 비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는 여성의 이야기는 흥행력이 없다는 영화산업 종사자들의 고정관념으로 인해 활발한 제작투자가 이루어지지 않고 그에 따라 여성 영화인들의 입지가 좁아져 남성 중심 서사가 메인 스트림을 형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에 피해를 입는 것은 바로 여성소비자들이다. 주어지는 선택지 자체가 매우 편파적이었기 때문에 남성 중심 콘텐츠를 어쩔 수 없이 선택해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퍼플레이는 이러한 여성소비자들의 불리한 선택지와 공고한 남성 중심의 영화산업계에 조금이라도 균열을 내고자 ‘여성영화를 메인 콘텐츠’로 하는 플랫폼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중심 영화는 재미가 없다거나 완성도가 부족하다는 편견에 시달린다.

김하나 총괄매니저는 “이는 말 그대로 편견이며 <연애담>, <미쓰백>, <허스토리>, <벌새>,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등 2030 여성소비자들이 선택하고 반응하는 여성중심 작품들이 내놓는 유의미한 결과들을 본다면 앞으로 더욱 공평한 기회의 장이 마련되고 환경이 바뀔 때 보다 더 선명하게 이러한 결과가 두드러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성소비자들의 선택지는 협조하기 때문에 퍼플레이는 현재 약 90% 정도의 비중으로 여성 감독들이 연출한 작품을 서비스하고 있다. 생물학적 성별을 기준으로 한 구분이 편협하고 또 다른 차원의 편견을 공고히 할 수도 있다는 염려를 갖고 있지만 이 숫자를 유지하는 현재로서는 큰 상징성을 가진다는 생각이다. 종내에는 여성영화라는 구분과 개념이 완전히 사라져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놀던 날> 스틸컷. 제공=퍼플레이컴퍼니

이주영 배우 주연 <놀던 날>, 강유가람 감독 <시국페미> 주목

퍼플레이를 이용하는 소비층은 대다수 여성이면서 동시에 적극적인 문화 소비층이자 사회의 변화에 관심이 많고, 그 변화를 선도해 이끌어내고자 하는 이들이라는 특수성을 갖고 있다. 현재 퍼플레이에서 스트리밍 서비스 중인 작품 가운데 소비자들의 반응이 가장 좋은 작품은 이주영 배우 주연 및 조경원 감독 연출의 <놀던 날>이다.

김 총괄매니저는 “이 작품은 막 대학을 졸업한 주인공이 명확한 용건 없이 자신의 친구들을 만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조금 이상한 청춘영화’다. 섣부른 위로나 과장된 하소연이 담기지 않은 적당히 불안하지만 편안한 20대라는 시간의 질감을 잘 담아낸 독특한 매력의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작품에 출연한 배우 이주영은 젠더 뉴트럴 코드의 매력과 출중한 연기력으로 지난해 개봉한 <메기>(감독 이옥섭)의 주연으로 열연했으며 최근 방영 중인 TV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 출연해 다수의 팬들을 확보하고 있다.

퍼플레이가 추천하는 작품은 강유가람 감독의 <시국페미>다. 이는 2016년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을 시작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광장까지로 이어진 ‘페미니즘 리부트’를 집중 조명하며 현장에서 목소리를 냈던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새롭게 점화된 ‘뉴 페미니즘’의 시작과 그 과정 등을 명료하게 정리해주는 작품으로 ‘페미니즘 입문작’으로 꼽히기도 한다.

특히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가 여성문제를 포함한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고 여성들은 어떤 것을 기대하거나 또는 직접 도모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신체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귀여운 애니메이션으로 잘 표현한 <겨털소녀 김붕어>,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아름답게 진행된 레즈비언 커플의 결혼식을 따라간 정소희 감독의 <퍼스트 댄스> 등이 주목받고 있다.

<퍼스트댄스> 스틸컷. 제공=퍼플레이컴퍼니

초박빙 OTT 싸움… 퍼플레이 강점은 ‘콘텐츠 그 자체’

넷플릭스가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인 OTT 시장점유율에서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국내 통신기업들도 웨이브, 시즌 등을 출범 시키면서 치열한 파이 싸움에 뛰어드는 지금, 퍼플레이의 경쟁력은 기성의 작품들을 뛰어 넘어 여성영화, 젠더 이슈를 다루는 작품들을 선별하고 대부분 독점으로 제공한다는 데에 있다. 퍼플레이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퍼플레이에서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신뢰하고 볼 만 하다’는 브랜드 이미지 구축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차별화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작품 선별에 가장 힘을 쏟고 있다. 여성감독이 만들었거나 여성이 주체가 되어 이야기하거나, 젠더 이분법에 도전하거나 성평등의 가치를 담고 있으면서 작품성과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매력 있는 작품이면서 가급적 다른 유통망을 통해 서비스되고 있지 않은 작품에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여기에 오프라인 커뮤니티 행사를 통해 퍼플레이의 사업 가치를 공유하고 확장하고 있기도 하다. ‘퍼플데이’는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상영회로 2017년부터 진행해 직접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영화를 상영한 후 작품의 성격에 맞는 게스트를 섭외해 영화를 더 넓고 깊게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있으며 퍼플레이 SNS를 통해 사전 신청을 받아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퍼줌(purzoom.com)이라는 여성영화 온라인 매거진도 서비스 중이다. 퍼플레이 내 작품은 물론 다양한 여성영화의 비평글, 리뷰, 인터뷰 등을 소개하는 매체다. 일반 개봉작에 비해 작은 규모의 여성영화는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매우 제한적이므로 여성소비자들이 보다 쉽게 여성영화에 접근할 수 있는 일종의 통로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으로 탄생했다.

퍼플데이 행사 현장. 제공=퍼플레이컴퍼니

여성영화로 먹고 살 수 있는 세상 만들 것

퍼플레이의 비전은 ‘여성영화로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여성영화를 만들고 출연하고 배급하고 글을 쓰는 모든 사람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통해 먹고 사는 것이 가능한 세상을 꿈꾼다는 것. 이를 위해 퍼플레이는 ‘여성영화라는 콘텐츠를 가지고 유의미한 시장을 만드는 것’을 우선으로 여성영화의 제작과 배급·유통 등이 선순환을 이루며 자생할 수 있는 미래를 꿈꾸고 있다.

이를 통해 ‘여성영화’ 하면 ‘퍼플레이’라는 단어가 자동으로 연상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역시 갖고 있다. 그러나 한편, 궁극적으로는 여성영화라는 말이 없어지는 세상을 꿈꾼다. 여성중심의 작품이 메인 스트림에 공고히 자리 잡아 퍼플레이와 같은 별도의 플랫폼조차 필요하지 않은 그런 세상을 뜻한다.

김하나 매니저는 여성소비자들을 향해 “누군가는 ‘세상은 이미 변했다’고 말하지만 수치와 통계, 그리고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많은 끔찍한 일들이 아직 멀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면서 “여성영화인의 영화를 더 많이 보고 그들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지지해주는 것부터 시작해보길 제안하며, 일주일에 한 편쯤은 여성영화를 보고 같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세상은 변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여성영화는 재미있고, 여성감독은 좋은 영화를 만듭니다. 그들이 더 큰 야망을 갖고 더 멋진 영화들을 만들 수 있게 여성소비자들이 비빌 언덕이 되어줍시다. 여성영화가 세상을 바꿀지도 몰라요!”

 

한고은 기자  h9@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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