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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숙의 행복한 시읽기] 가을 거울
구명숙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19.11.27 16:34

[여성소비자신문]가을 거울

-김광규-

가을비 추적추적 내리고 난 뒤

땅에 떨어져 나뒹구는 후박나무 잎

누렇게 바래고 쪼그라든 잎사귀

옴폭하게 오그라진 갈잎 손바닥에

한 숟가락 빗물이 고였습니다

조그만 물거울에 비치는 세상

낙엽의 어머니 후박나무 옆에

내 얼굴과 우리 집 담벼락

구름과 해와 하늘이 비칩니다

지천으로 굴러다니는 갈잎들 적시며

땅으로 돌아가는 어쩌면 마지막

빗물이 잠시 머물러

조그만 가을 거울에

온 생애를 담고 있습니다.

-시 해설-

가을 하늘 서늘한데, 빗방울 하나 둘 떨어지면 마음들이 조급해진다. 곧 겨울이 불어 닥칠 예감에 마른 꽃잎위에서 놀던 나비는 멀리 날아가 버린다. 가을비 듣는 소리에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빗방울은 뒹구는 나뭇잎을 적시고 땅을 적시고 지나가는 나그네도 적신다.

비에 젖은 가을날, 김광규 시인은 ‘가을 거울’ 을 노래한다. “누렇게 바래고 쪼그라든 잎사귀/옴폭하게 오그라진 갈잎 손바닥에/ 한 숟가락 빗물이 고였습니다/ 조그만 물거울에 비치는 세상/ 낙엽의 어머니 후박나무 옆에/ 내 얼굴과 우리 집 담벼락 /구름과 해와 하늘이 비칩니다”라고.

빗물은 나뭇잎에게 마지막 거울을 선물해 주었다. 요술거울이라도 만들어 준 걸까? 시인은 나뭇잎의 “온 생애”가 그 거울 속에 담겨있다고 한다. 옴폭 들어간 후박나무 잎, 조그만 품안에 가을 달빛 같은 추억을 담아주고, 한 생애를 돌아보게 한 시인의 마음이 엿보인다.

갈잎은 지상을 덮고 나뭇잎과 나무 꼭대기의 거리는 아득해졌다. 이제 흙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낙엽은 스스로 거울을 본다. 푸르게 살아온 가족들과의 아름다운 추억을 뒤로하고 새 봄, 다시 새싹을 틔울 꿈을 안고 떠나가리라. 우리 인생도 가을을 맞으면 그리하리니.

구명숙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k9350m@han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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