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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독립운동가' 권애라·남자현·조마리아·장성심의 잊혀진 이름
한지안 기자 | 승인 2019.03.01 15:07

[여성소비자신문 한지안 기자] 1919년 3월 1일 이후로 100년이 흘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독립 유공 포상자는 총 15511명이다. 1949년 포상이 시작된 이래 건국훈장이 10965명에 수여됐고 1280명이 건국 포장을 받았다. 대통령 표창은 3266명에게 전해졌다. 이 중 여성은 432명이다.

실제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여성들은 2000여 명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까지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은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했다. 유관순을 제외하고 권애라, 남자현, 장성심, 조마리아 등 열사들의 이름은 사뭇 낯설게 다가온다.

김구, 안창호 등과 마찬가지로 만주와 연해주, 상해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이끈 이들은 최근에야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사진=선거관리위원회. 1970년 선거 포스터 갈무리

권애라, 개성 만세 운동을 이끌다 

1897년 개성에서 태어난 그녀는 권애라 열사는 1919년 어윤희 등과 함께 개성에서 ‘독립 만세’를 외친 인물이다.

이화학당에 입학한 그는 1917년 졸업해 개성으로 다시 돌아와 충교 예배당에 새로 지은 유치원에서 교사로 일했다. 만세 선언 이후 일본 경찰에 체포돼 경성 서대문 형무소로 압송됐다. 이곳에서 이화학당 시절 함께 공부한 후배 유관순을 만나 옥살이를 함께 했다.

권애라 열사는 3·1운동 1주년 당시 유관순, 교회 전도사인 어윤희, 이신애 등과 함께 기념식을 갖고 죄수들과 만세를 부르는 등 옥중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유관순은 그해 9월 28일 옥고를 견디다 사망했고, 권 열사는 출소 후 강연회 열며 여성들의 애국 사상을 키워낸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에서 십 수년간 지하 항일 운동 등을 이끌다가 1942년 일본 관동군 특무대에 체포됐다. 그 후 1년 이상 비밀 감옥에서 고문을 받는 등 옥살이를 하다가 광복으로 석방됐다.

1970년에는 경북 안동에서 국회의원 입후보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1973년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후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사진=국가보훈처

‘여자 안중근·독립군의 어머니’ 남자현

1872년 경상북도에서 태어나 1933년 생을 마감한 남자현 열사는 여성독립운동가 중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을 받은 유일한 인물이다.

그간 역사 속에 묻혀 있다가 지난 2015년 개봉한 영화 ‘암살’ 속 안옥윤(전지현)의 모델이 그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야 주목을 받았다.

당시 기준으로 상당한 고령이었던 47세에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손가락을 잘라 세 차례 혈서를 쓰고 무력 투쟁에 앞장서는 등의 모습을 보여 ‘여자 안중근’으로 불리기도 했다.

남자현 열사는 1919년 3·1운동 직후 압록강을 건너 서로군정서에 가입해 활동했으며 ‘독립군의 어머니’로도 불렸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북만주로 향하던 여정에서 기독교 신자가 돼 북간도에 교회 12곳을 설립하고 여자교육회를 조직해 여성 교육에 힘썼다.

그는 독립군의 가족을 보살피는 등 후방 지원에서 멈추지 않고 무력으로 일본 수뇌부를 암살하고자 계획한 인물이다.

일본 총독 ‘사이토 마코토’와 만주에 파견된 일본 전권대사 ‘무토 노부요시’를 암살하려 했으나 도중에 계획이 탄로나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단식 투쟁을 하다가 풀려났지만 61세에 끝내 숨졌다.

사진제공=뉴시스. 조마리아 열사의 생전 모습.

‘임시정부의 정신적 지주’ 조마리아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다른 마음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刑)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죽음을 앞둔 아들에게 보내는 어머니의 편지에서 비장함이 느껴진다. 조마리아 열사는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로, 아들에게 ‘나라를 위해 죽으라’는 편지와 직접 만든 수의를 전한 인물이다.

그의 편지는 사형을 선고받은 안중근 의사가 “나는 처음부터 무죄요, 무죄인 나에게 감형을 운운하는 것은 치욕”이라며 항소 포기를 결심하게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현세에 재해 하기를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생애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라”는 것이 그가 아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한 말이다.

황해도 해주군에서 태어난 그는 1907년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서서 참여했다. 평안남도 ‘삼화항 은금폐지부인회’에서 은 패물을 헌납하고 주위에도 참여를 독려했다.

1910년 안 의사의 사망 후에는 연해주, 상해 등지에서 김구의 어머니 곽낙원과 함께 임시정부 요인의 아내들과 힘을 모아 독립운동을 지원하며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1927년 7월 15일 상하이에서 위암으로 별세했다.

그가 안중근의 어머니가 아닌 한 명의 독립운동가로 알려진 것은 2008년 8월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으면서다. 1962년 이뤄진 안중근 의사에 대한 훈장 추서로부터 46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사진=국사편찬위원회. 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 인물이 장성심 열사다.

장성심 열사, 3·1운동 100주년 맞아 건국포장 추서

올해 새로 건국 포장을 받는 여성 독립운동가도 있다. 지난 26일 국가보훈처는 “올해 제100주년 3·1절을 맞아 3·1운동과 학생운동, 의병, 국내외 항일운동 등을 통해 조국 독립에 기여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333명을 발굴, 건국훈장과 건국포장, 대통령표창을 추서하게 됐다”고 밝혔다.

장성심 열사는 이에 따라 건국포장을 받는다. 그는 1906년 11월 2일 황해도 봉산군에서 태어나 1981년 12월 20일 중국 남경에서 사망했다.

장 열사는 1920년 4월 황해도 봉산군에서 사립 왕성학교 교사로 재직 중 여자청년회 활동으로 체포되어 일본경찰의 조사를 받은 인물이다. 1921년 중국 남경으로 건너가 1924년 흥사단에 입단, 상해에서 활동하다 1925년 귀국했다.

이후 1932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수양동우회 평양반우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다 1938년 10월 봉산군에서 수양동우회사건으로 체포되어 고초를 겪기도 했다. 이후 중국 상해로 다시 건너가 1940년까지 흥사단 단원으로 활동했다.

장성심 열사의 활동은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20년 이상 국내외를 넘나들며 오랫동안 독립운동에 참여한 사례로 꼽힌다. 일제 정보문서 ‘흥사단사건 검거에 관한 건’에서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유관순 열사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가 서훈

한편 3·1운동의 상징인 유관순 열사는 3·1운동 100주년을 계기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가로 받게 됐다.

보훈처는 유관순 열사의 서훈 등급 상향을 요청하는 국민청원 및 국회 특별법 제정 등 사회 여러 분야의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여 추가 서훈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유 열사의 이번 훈장은 기존 독립운동 공적과 별개로 수여된다. 3·1운동으로 국민의 올바른 역사관과 애국정신 함양에 공헌하고, 비폭력·평화·민주·인권의 가치를 높이고 국민통합에 기여한 공로다.

한지안 기자  hann9239@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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