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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임 보고펀드 전무, "유리천장, 본인이 스스로 만들면 안돼"
조미나 기자 | 승인 2016.04.20 17:35

[여성소비자신문 조미나 기자]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여성 리더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으나, 유독 경제계만은 여성의 입지가 여전히 낮은 편이다. 특히 금융권의 경우, 보수적인 조직 문화가 상당히 많이 남아 있어 유리천장이 더욱 두텁다는 평이다.

실제 7대 시중 은행(신한·국민·우리·하나·농협·씨티·SC) 내 여성 임원은 각 사당 1명도 채 되지 않는 6명에 불과하다. 보험사, 증권사 등 전국사무금융노조 산하 제2금융권 40개사 전체 임원 670명 중에서도 여성은 29명(4.3%) 뿐이다. 금융권내 부서장급 이상 중간 관리자 중 여성비율 역시 2%대에 머물고 있다.

결혼과 출산, 육아 등의 이유로 회사를 떠나야 하는 여성들이 많고, 경력단절 여성의 복직이 어렵다 보니 커리어 유지가 되지 않고 있는 것.

이런 업계 문화에도 불구하고 일부 금융계 여성리더들은 돋보이는 활약을 펼쳐보이고 있다. 이들은 과거 금융사 여성임원들이 주로 담당했던 대고객 서비스 분야를 넘어 자산운용, 리스크 관리, 내부감사 등 다양한 전문분야에서 본인의 기량을 펼쳐 보이며 여성의 활동범위를 넓혀가는 중이다.

오세임 보고펀드 전무 또한 시대를 앞서가는 여성리더 중 한 명이다. 1984년 씨티은행에 입사한 오 전무는 골드만삭스·바클레이즈 등 외국계 금융사에서 약 27년간 근무하며 그 역량을 인정 받았고 우리투자증권 CIO(최고정보관리책임자)를 역임하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는 오 전무는 국내 최초 사모투자 펀드인 보고펀드에서 준법감시인을 맡고 있다.

'타산지석’, ‘모든 것이 스승’이라는 오 전무를 만나 여성 금융인으로서 오랜 시간 리더의 자리를 지켜온 그만의 비법 및 후배 여성 금융인들을 향한 진심어린 조언을 들어봤다.

오세임 보고펀드 전무. <사진=여성소비자신문>

-지금까지 금융권에서 커리어를 확실히 쌓아왔다. 금융권에 발을 들인 계기가 궁금하다.

“처음부터 금융계에 발을 들인 것은 아니다. 사회초년생이던 1980년대는 지금하고 달라서 ‘금융계를 가야겠다, 선생님을 해야겠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스펙을 준비하던 시대가 아니었다. 일을 하고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금융계를 가겠다는 구체적인 생각은 없었다.

또 지금하고 달라서 대학 4학년 때 다 취직이 되곤 했는데, 남학생들은 8월쯤 거의 대부분 취직을 했다.

그런데 나는 취업이 잘 안됐다. 당시만해도 여자 대학생이 드물던 시대였는데, 대학을 졸업한 여자를 남성과 동등하게 뽑는 곳이 거의 없었다. 졸업을 했는데도 찾아주는 곳이 없어, 요즘 대학생들과 비슷한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던 중 전산 컴퓨터 사업본부의 전산직무 공채로 들어갔는데 그게 내 인생의 첫 직장이었다. 수학을 전공했다 보니 전산쪽으로 취직이 됐다. 그때만해도 지금처럼 컴퓨터가 흔하던 시절이 아니었다. 150여명을 뽑았는데 그 중 6명만 여성이었다.“

- 일반회사에서 금융권으로 옮기게 된 이유가 있나?

“회사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었다. 그 시절에는 '여자는 결혼하면 그만둔다'는 인식이 있어서, 결혼 각서제까지 있을 정도였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그렇지 않았지만 '결혼한다면 그만둔다'는 각서를 쓰고서야 뽑아주는 곳이 많았다.

입사 후 부서 배치를 받고 자리에 앉는데, 옛날에는 보통 직급 순으로 앉았다. 자리 순서가 직급을 반영했다. 일을 시작하고 몇 달 지나 어떤 남자 신입사원이 들어왔는데, 상사가 나보고 ‘신입사원과 자리를 바꿔달라’고 하더라. 이유는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서 더 우대해줘야 한다는 거였다. 그때 당시에는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신입사원이 군미필자였다. 상사에게 물어보니 그제서야 ‘대학나온 남자는 3급이고, 대학나온 여자는 4급, 고등학교 나온 사람은 5급’이라고 말해줬다. 남자와 여자 대졸자는 뽑을 때부터 전형이 아예 달랐다는걸 그때서야 알았다.

또 '대졸 여성 출신을 뽑은 것은 회사 입장에서 큰 모험'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여자는 아이를 낳으면 다니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데 회사가 선 투자를 하는 것’이라는 거다. 옛날은 SNS가 있던 시대도 아니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지금처럼 소문이 나는 시대가 아니었다.

상사가 말하길 '너희가 제도 도입 초기이기 때문에, 열심히 하면 제도를 바꿔서 3급으로 바꿔줄 수 있다'라고 하더라. 상황을 바꾸고 여성의 권익 개선을 위해 싸워야 할 상황이었지만, 에너지를 그렇게까지 쓸 필요가 있을까 생각도 들었다. 그때쯤 씨티은행에서 연락이 왔다. 전산 업무 인력을 뽑던 중이라, 자격조건에 맞아 금융권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 때 국내 회사에서 8개월 근무 경험이 없었으면 이후 30년의 직장생활을 못 견뎠을 것이다. ‘많은 부분이 나의 부족함에서 기인한다’는 생각을 하게끔 한 것이 그때 8개월의 경험이었다. 다른 회사가 첫 직장이었다면 비교대상이 없으니 거기서 느끼는 속상함을 못이겨냈을텐데, 그 곳에서의 8개월이 너무나 큰 자양분이 됐다. 스티브잡스가 ‘커넥팅 더 닷츠(connecting the dots)’라고 했듯, 지금 내가 경험을 한게 미래에 어떤 도움이 될지 몰라도 나중에 보면 그 경험들이 다 연결된다고 믿고 있다".

- 씨티은행 입사 후로도 몇차례 더 이직을 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라 본다. 주변의 반대는 없었나?

"씨티은행을 다닐때만 해도, 여자가 커리어 개발을 위해서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 당시에는 40살이 넘은 여성이 회사를 다니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씨티에서 다른 회사로 옮겼을 때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했다. ‘직장을 그만둘 나이에 왜 회사를 옮기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후배들이 이직에 대해 나한테 물어보면 해줄 얘기가 많다. 왜냐하면 나도 한 회사에서 오랜기간 근무하다 옮겼기 때문이다. 나는 씨티은행에서 씨티증권으로 간 다음에 13년 간 근무하고, 임원까지 한 후에 직장을 옮겼다. 뿌리내린 나무가 뿌리를 들고 다른 데를 갈 때는 시들하거나 힘든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그 부분을 얘기해주고 싶다. 가자마자 되는 건 없다. 한 회사에서 계속 있을 때랑 옮겼을 때 각각 장단점이 있다. 절대 장점만 있지 않다.

2000년대 들어 영국계 증권회사인 드레스드너은행에 다니다 한 번 이직을 했는데 그때는 경우가 좀 달랐다. 당시 드레스드너은행이 독일계 은행인 코메르츠은행한테 합병이 됐는데, 코메르츠은행의 자회사가 알리안츠였다. 합병과정에서 알리안츠가 내건 조건은 '인원 6000명을 감축하라'는 거였고, 전세계 지사에서 구조조정이 실시됐다. 그 과정에서 한국지사가 철수했다. 만 6년만에 철수를 한 거다. 그래서 회사를 옮긴 적이 있다."

- 다양한 외국계 회사를 다니면서 느낀 외국계 회사만의 특징이 있다면?

"장·단점이 다 있다. 본인이 마음만 있으면 실력 양성에 큰 도움이 되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외국계 기업의 경우 음주 문화, 회식 문화가 거의 없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그 시간에 일을 한다. 물론 자기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새로운 프로젝트나 업무가 주어졌을 때 도전하는 사람은 일이 많아질 것이고, 겁이나서 ‘하던 걸 하겠다’ 라고 결정하는 사람은 편하게 일 할 수 있다. 성별의 제약 없이 직무능력만 보기 때문에 그런 점은 여성에게도 좋은 부분이라 생각한다.

또 워낙 능력있고 실력있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그들하고 계속 경쟁하거나 같이 일을 해야한다는 것 때문이라도 더 노력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나는 100m를 10초에 달릴 수 있는 사람인데, 계속 10초보다 빨리 달려야하는 상황에서 달리다보니 10년 후에는 9초에 달리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자꾸 도전하게 하고 성장시키게 하는 동력이 회사 내부에 있다고 본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일하며 내가 모르는 부분도 계속 나타났지만, 제자리에 있지 않게 하는 부분이 참 좋았다.

80년대에는 외국을 한 번 다녀오면 없어지는 단수 여권이 있었다. 여행 한번에 여권 한번이던 시절로 그만큼 해외여행이 어렵던 시절이었다. 그 시기 한국에 있으면서 전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도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는 장점이었다. 외국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해야하니까 한국에서 일을 하지만 전세계 금융시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또 외국계 회사에서는 업무 때 직급이 아닌 이름을 부른다. 국내 회사라면 부장과 사원 사이 대화에서 ‘부장님’이라고 부르는 순간 하고 싶은 말이 막히는 경우가 생기는데,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도 이름으로 부르니 하고싶은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 좋았다고 본다."

오세임 보고펀드 전무. <사진=여성소비자신문>

-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외국계라고 하지만, 결혼 이후 일과 가정을 병행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쉽지는 않았다. 국내기업이든, 외국계든 일과 가정을 모두 병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한 쪽을 포기하라고 종용하는 일은 없었다.

우선 나 스스로 직장을 그만둘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직장을 그만두는 이유가 ‘이 직장이 싫어서는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내가 회사생활을 접고싶은 이유가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것’이라면 그만둘 수 있다. 하지만 회사가 싫어서 그만두면 그건 실패한다고 생각했다. 여기가 싫어서 다른 곳에 가더라도 또 다른 싫은 이유가 생길거라 생각하기도 했다.

육아에 있어서도, 내가 집에서 아이를 키운다고 해서 아이가 더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시어머니, 친정어머니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처음부터 도와주셨던 것은 아니다. 지금은 직장을 다니는 며느리가 많아졌지만 당시에는 며느리가 직장다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도와주시거나 아이를 키워주신다는 얘기는 안하셨는데 아이를 낳고 직장을 계속 다니게 되면서 자연스레 봐주시게 된거지, 부모님을 믿고 아이를 낳은 것은 아니었다.

항상 중요한 것은 쉽게 결정했다. “오래 생각하면 악수를 둔다‘는 말이 있다.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다보면 오히려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없다.

다만 일 따로, 가정 따로 본 것이 아니라 인생 전체를 보려고 노력했다. 자녀 계획의 경우도 그렇다. ‘내가 회사를 다니는 이유가 뭘까’를 생각했다.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 회사를 다니는데, 회사를 다니기 위해서 아이를 하나만 낳는다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회사는 내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하나의 윤활유인데 회사만 생각하면 안될 것 같았다. 회사를 열심히 다니지만, 그로 인해 아이들이 피해를 보면 안되지 않나. 내 스스로와 아이들의 생활에 허용범위를 설정하고, 아이들이 이 범위를 벗어나거나 문제가 생기면 어떤 상황에서도 회사를 그 즉시 그만둔다고 생각했다.

요즘 보면, 젊은 세대들이 걱정이 많은 것 같다. 멘토링을 하러 특강을 하거나 강의하러 가면, 빤짝빤짝한 눈을 가진 젊은 후배들이 손을 들고 질문하는 것 중 하나가 “결혼과 직장생활을 양립할 수 있냐”는 질문을 꼭 한다. 그럼 나는 “애인이 있냐”고 물어본다. 미리 걱정하지 않았으면 하는 이유에서다.

미리 걱정을 해서 더 좋은 결과가 나면 괜찮은데, 내가 인생을 살면서 깨달은 것은 ‘닥치면 다 하게 돼있고, 닥치면 생각보다 안 어려운게 인생’이라는 거다. 물론 어려운 것이 있지만 미리 걱정해서 행동을 제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굉장히 긍정적인 것 같다. 그런 성격이 직무적으로도 도움이 됐는가?

“다니던 회사에 어떤 상사가 계셨는데, 마른 체구에 표정도 예민한 분이었다. 너무 불행해보였다. 그때 그 분을 보면서 ‘참 이상하다, 저 분은 회사다니는게 저렇게 싫고 스트레스 받으면 그만두면 되지, 이왕 회사 다니는 것 왜 저러고 살아야 하나. 나는 저분 나이에 절대 저런 표정으로 회사에 있지 말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선악이 개오사’라고,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다 나한테는 스승이다. 직장생활이 참 고맙다. 내가 직장생활을 안했으면 지금 나의 모습과 다른 모습으로 나이 들었을 것 같다.“

- 금융인이 아닌 꿈꿨던 다른 분야가 있었나?

“딱히 특정 직업을 꿈꾸진 않았다. 다만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이야기해주신 것이 인상깊었다.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쓸모 있는 사람, 쓸모 없는 사람, 있으나 마나 한 사람’. ‘쓸모있는 사람이 되고싶다’라는 것 말고는 되고싶은 것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 내가 꿈꿨던 두 가지 단상이 있다. ‘비지니스 수트를 입고 ,뾰족구두를 신고, 책을 들고 복도를 또박또박 걸어가는 모습’, ‘아주 많은 사람을 앞에다 놓고 사람들한테 비전을 역설하는 모습’. 이 두 가지만 있었고, 뚜렷한 진로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꼭 필요한 사람이 돼야지 라는 생각이 있었다.“

- 본인이 생각하기에 그 꿈을 이룬 것 같나?

“아니다. ‘미생(未生)이라고 생각한다. ‘백세시대’라고 하는 이 때에 지금 그것을 평가하기엔 이른 것 같다. 30년 직장생활을 마치고 우리투자증권에서 나왔을 때, 사회가 나를 필요로 할 줄 알았다. 요즘을 ‘여성의 시대’라고 하고, 나는 IT와 금융, 영어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나는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나이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학 졸업한 여자를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았던 취준생 시절처럼 막막한 상황이 다시 와있더라. 1년 후에 다시 일을 시작했지만, 요즘 우리 대학생들이 얼마나 막막한지를 공감할 수 있었다. 이걸 느낀 이후로 한국장학재단에서 대학생 멘토링을 3년 째 하고 있다.“

- 오랜 기간 근무했기 때문에, 잠깐의 공백이 느낌이 남달랐을 것 같다.

“1년 정도 공백이 있었다. 회사를 다닐 때는 5시 40분쯤 집을 나왔었다. 월요일부터 회사를 안나갔다. 눈은 떴는데 갈 데가 없더라. 무엇보다 황당한 건 내가 30년동안 명함을 가지고 다녔는데 더이상 나를 소개해줄 수 있는 명함이 없는 거였다. 임원이라는 직무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로운 편이었는데도, 조직이 없어지니까 황당했다.

무엇보다 낮에 밖에 다니는 것이 정말 어색했다. 그래서 그때 새로운 인연을 많이 만들었다. 코칭 공부도 하고,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여성인재 아카데미 강의도 하고, 운동도 하고 그러면서 지냈다. 1년 공백 이후에 싱가폴계 OCBC 은행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했다. 현재는 보고펀드에서 내부통제인으로 리스크 관리, 준법감시 쪽을 맡고 있다.”

오세임 보고펀드 전무. <사진=여성소비자신문>

- 일·가정 양립으로 어려움을 겪는 여성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는가?

“타의에 의해 직장을 그만둘 수도 있지만, 결정권은 자신에게도 있다. 만약 육아를 일차적 이유로 그만둔다면 절대 그만두지 말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후배들 중에도 퇴사를 결정하기 전에 컨설팅을 받는게 아니라, 결정을 하고 컨설팅을 받는 경우가 있다.

본인한테 직장이 어떤 의미인지를 모르는 여성들이 있다. 회사를 옮기지 않고 계속 다니는 사람들은 10년 이상 다니면서 자신의 시장가치를 잘못 인지하고 과대평가해, 회사를 쉽게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회사를 정말 나오고 싶을 때는 컨설팅이나 코치를 받고 결정했으면 좋겠다. 그것도 자기가 원하는 답을 해주는 사람을 찾지 말고, 객관적인 대답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웬만하면 그만두지 말라는 말을 하고싶은 이유가, 요즘은 100세까지 사는 시대다. 내가 아이 둘을 키우면서 절절하게 원했던 것은 ‘커피 한 잔을 따뜻하게 끓여서 식탁위에 놓고 그 커피한잔을 끝까지 마실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당시에는 커피를 앉아서 한 잔을 마실 시간도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커피를 얼마든지 마셔도 되는 시간이 주어졌다.

인생이 그런 거다. 미친 듯이 바쁘고, 나의 모든 것을 요구하는 시간이 1년일지 5년일지 10년일지 몰라도 지나고 나면 다시 오지 않는다. 부득이한 사고와 질병을 제외하면 현재 한국인들의 평균 연령이 80세 중반이고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내 나이에서 앞으로 30년이 남았다. 지난 30년은 회사에 다니고, 결혼하고, 아이도 키웠다. 남은 30년은 그런 것 하나도 없는 30년이지 않나.“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100세 시대에 어른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나 스스로도 만족하고 사회에도 그렇게 도움이 되는 그런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 중이다. '알파고'라는 로봇도 생기는 변화의 시대에 사람들의 인생은 어떻게 바뀔 것이며, 또 나는 뭘 해야할까 생각이 많다. 답은 찾는 중이다. CEO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남성들에게도 천장과 벽이 있다. ‘베타보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요즘 남성들이 여성에게 비교당하고 주눅들며 자란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물론 여성들에게 유리천장이 없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런데 유리천장 자체에 너무 신경쓰지 않았으면 한다. 남성, 여성으로 나눠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공정한 사회, 다양성이 있는 사회 쪽으로 시각을 옮긴다면 변화를 만드는 엔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앵글을 여성, 남성으로 양분하니까 ‘똑같이 능력이 있는데, 똑같이 올라가야 하지 않냐’라고 하는데 사회에서 안 받아들여진다. 패러다임을 바꾸면 되지 않겠나.

여자들한테 하고 싶은 말은 리더의 위치에 오른 여성들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전우의 시체를 거쳐 왔는지 기억하면 좋겠다는 거다. 내가 잘난 여자여서, ‘나’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 왔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실은 수많은 능력있는 여자들이 결혼과 동시에 회사에서 쫓겨나거나, 부부가 함께 회사를 다니다 IMF 같은 상황 속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만둬야 하는 상황을 겪었다. 여성에게 선거권이 갑자기 주어진게 아니듯, 내가 이 자리에 온 것도 누군가가 뭔가를 다져놨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국내기업들을 보면 ‘행복한 마이너’가 많다. 뭐냐면, 직장에서 남자들이 여자들한테 배려해준다는 거다. ‘여자니까 힘쓰지 말라’든지, ‘넌 여자니까 늦게까지 일하지 않아도 된다’든지 겉으로 보면 행복해보인다.

이 ‘행복한 패턴’이 언제 무너지냐면, 여자들이 자기의 경쟁상대라고 인식되는 순간이다. 남성이 여성의 직무 능력을 자신보다 아래로 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여자들이 팀장 이상까지 올라가는 사례가 없으니 잘 드러나지 않는다. 여성들 또한 그걸 받아들이고 이용하면 안된다. 본인의 능력을 기반으로 여성의 능력을 보여주면 좋겠다.“

조미나 기자  mina77@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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