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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원영희 YWCA 부회장 "탈핵운동, 여성의 힘과 지혜로 세상을 바꾸는 일"
박상문 기자 | 승인 2016.04.01 19:10

[여성소비자신문 박상문 기자] 한국YWCA연합회는 1922년 창립한 이래 공익적 사회활동에 전력해 온 국내 대표 여성단체이다.

지난 2013년부터는 ‘어머니란 이름으로 탈핵을 외친다’는 기치 아래 매주 탈핵운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최근 100회를 넘어섰다. <여성소비자신문>은 YWCA 탈핵운동을 진두지휘해 온 원영희 YWCA연합회 부회장과 만나 탈핵운동의 필요성 및 향후 계획 등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원영희 YWCA 부회장

-지난 2013년부터 탈핵운동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시작하게 된 취지는 무엇인가. 그리고 한국YWCA연합회의 설립 목적과는 어떻게 부합하는지.

"한국YWCA는 정의와 평화를 이루고 창조질서를 보전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일어난 젊은 기독여성들의 시민공동체다. 1922년 설립 이래 YWCA운동의 목적은 언제나 생명살림에 있다. 이를 위해 아나바다 운동, 생명먹거리 운동, EM 땅살리기 운동 등을 해왔다.

탈핵운동은 핵으로부터 우리 생명을 지켜내는 일로서 그 가치가 있다.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탈핵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고 조사를 통해 한국이 25기의 핵발전소를 가동, 핵 밀집도가 세계 1위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고장과 사고를 반복하는 수명이 다한 핵발전소까지 있다.

핵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 모든 생명이 공생하는 생명사회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 운동을 시작하게 됐다."

-YWCA의 탈핵운동은 YWCA가 여성단체이기 때문에 특별히 더 주목받고 있다. 다른 단체의 탈핵운동과 차별화된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생명을 위협하는 환경파괴에 여성들은 누구보다 민감하다. 자연에 기대 생명을 기르고 보살펴왔기 때문이다. YWCA의 탈핵운동은 핵 발전으로 인한 위험과 고통에 내몰려 있는 여성들이 나와 내 가족의 안전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자 여성이 가진 힘과 지혜로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체르노빌, 후쿠시마의 재앙은 사고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고, 여성과 아이들이 가장 큰 고통을 당하고 있다. 방사능 피해는 아이들과 여성들에게 더욱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건강뿐 아니라 투병과 치료로 인한 실업, 빈곤, 가정불화 등도 큰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100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발생 30년이 됐지만 여전히 임산부들의 기형아 출산, 백혈병 같은 소아암, 여성들의 유방암과 갑상선암 등 그 여파가 지속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에는 국내에도 그 피해가 미치고 있다. 공기와 물이 방사능에 오염되면 먹을거리에 축적되고, 사람에게 치명적 피해를 끼치는데 이렇게 방사능에 오염된 먹을거리가 국내로 수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원전쓰레기 문제도 심각하다. 핵발전소의 평균 수명이 40년인데 폐로하고 나선 100년마다 시멘트와 철로 씌워 10만년을 기다려야 한다. 핵은 한번 반응을 시작하면 반감돼 아예 없어지기까지 기다려야하는데 이건 워낙 크기 때문에 그만한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결국 우리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그 원전쓰레기를 남겨주게 된 것이다.

지금 내가 추운 지하철 타고 다녀서 자녀들에게 이런 쓰레기를 남겨주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되니 이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자녀들을 위한다면 아낄 수 있는데 부모마음이지 않나. ‘안전한 먹을거리를 지켜내기 위해서,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 만들기 위해서라도 엄마가 나설게’란 마음이 근본이 된 운동이고, 그래서 더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탈핵캠페인이 벌써 100회를 넘겼다. 그동안 어떻게 발전돼왔는지 궁금하다. 주로 어떤 사람들이 모여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나.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국내 핵발전소가 있는 부산과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2013년에는 생명운동의 해로 선포, 모든 힘을 다해 탈핵운동에 집중하기로 결의하기도 했다. 이 때부터 지금까지 한국YWCA연합회와 52개 지역의 회원YWCA는 전국중점운동으로 탈핵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이 탈핵학교 개설, 탈핵교재 제작 등 탈핵교육이다. 그리고 2014년 3월부터는 매주 화(火)요일을 ‘탈핵 불의 날’로 정하고 핵 발전에 대해 알리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죽음의 불인 핵발전소를 끄고 생명의 불을 켜자는 구호로 전국 각지에서 캠페인을 벌인 것이 지난 3월 15일에 100회를 맞았다. 지금도 화요일마다 전국 캠페인은 계속되고 있다.

탈핵캠페인을 발판으로 ‘노후핵발전소 고리1호기 폐쇄를 위한 YWCA 10만인 서명운동’을 벌여 2015년 2월에는 고리원전 1호기 폐쇄를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된 서병수 부산시장에게 공약이행을 촉구하기도 했다. 집회, 기도회 등으로 고리1호기의 위험성과 폐쇄의 절박함을 계속 호소했고, 같은해 6월 ‘고리1호기 추가연장 가동 없이 영구 정지’ 결정을 이끌어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부천에서는 아이들을 방사능 오염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노력으로서 안전한 공공급식을 위한 진흥형 조례를 전국 최초로 만들어 냈다."

-최근 캠페인과 더불어 서명운동을 통해 발전차액지원제도(FIT) 입법도 추진하고 있다. 발전차액제도란 무엇이며 현재 진행상황은 어떻게 되는지.

"발전차액지원제도는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정부가 일정기간 매입하여 중소규모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의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함으로써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을 육성하자는 제도다.

발전차액지원제도를 가장 먼저 도입한 독일은 성공적으로 재생에너지를 확대해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초과 달성했고, 일본도 시행 3년 만에 핵발전소 15기에 해당하는 1500만KW의 재생에너지 설치신청을 이끌어냈다.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핵발전소를 폐쇄하고, 발전차액지원제도와 같이 지역분산형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법과 제도를 만들 수 있는 국회의원을 뽑는 것이 중요하다. YWCA는 이번 20대 총선에서 탈핵과 에너지전환에 대한 정책을 제시하는 후보를 지지하고, 핵 발전 확대정책을 추진하는 후보는 반대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재생에너지 생산을 더욱 확장하도록 발전차액지원제도 등 재생에너지원 관련법이 20대 국회에서 제정되도록 입법청원을 위한 서명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이 캠페인을 통해 실질적으로 이뤄내고자 하는 바나 목표가 있다면.

"아직도 핵 발전이 안전하고 경제적이라고 믿는 시민들이 많다. YWCA의 탈핵운동은 시민들의 핵 발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꾸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설계수명이 끝난 노후핵발전소는 폐쇄하고 신규핵발전소를 더 이상 짓지 않음으로써 단계적으로 핵발전소를 없애는 것이다.

이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에너지과소비 구조와 중앙집중적인 전력공급시스템을 동시에 바꿔나가야 한다. 핵발전소 확대정책의 명분이 에너지소비 증가이고, 핵 발전 시스템은 초고압송전탑 건설을 병행하기 때문에 한 지역의 큰 희생을 불러온다. 핵 발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대안, 지역에서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지역에너지 자립시스템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태양광과 풍력 중심의 지역에너지 생산과 동시에 에너지 효율화를 꾀하고 낭비를 줄여서 독일처럼 핵 발전에 의존하지 않는 시스템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것이 YWCA 탈핵운동의 실질적 목표이다."

-원영희 부회장님은 언제부터 이 일에 뛰어들게 됐나.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프로필과 경력사항에 대해 한 말씀.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제가 탈핵운동에 뛰어들게 된 계기였다. 당시 큰 충격을 받았고, 이후 후쿠시마 재앙의 참상을 직접 보고 듣게 되면서 시작됐다.

2013년 YWCA 동부지역회원 대회에서 후쿠시마에서 겪은 일을 직접 대본으로 쓰고 행위예술로 표현했던 일본 여성활동가의 외침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함께 내방했던 일본 학자의 사실적 데이터로 핵 발전 사고가 어떤 것인지를 과학적으로 확인하고 인식하게 됐고 이후 2013년 일본 아이즈방사능정보센터의 카타오카 테루미씨를 초청해 YWCA 전국순회로 강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원영희 YWCA 부회장

YWCA는 15살부터 지금까지 평생 인연을 맺은 단체라고 할 수 있다. 대학생 시절엔 대학YWCA에 가입해 활동하다가 대학원 입학 후에는 서울YWCA 국제친선부 간사로 일했다. 결혼하고 미국에 가면서부터 잠깐 떠나 있다가 귀국 후 다시 함께하게 됐다. 1989년 가을부터 서울YWCA 국제협력부 위원 활동을 하다가 연합YWCA 실행위원에 당선됐던 2000년부터 지금까지 여러 부서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YWCA가 세계적인 조직이지 않나. 세계120개국 YWCA 지부가 있고 오대양 육대주를 번갈아 가면서 4년마다 한 번씩 총회를 여는데 1995년 세계YWCA 창립 100주년 총회가 한국에서 열렸다. 그것을 계기로 한국YWCA가 세계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고, 2007년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총회에서는 이주 여성에 대한 결의안을 발표해 통과시키기도 했다.

당시 한국YWCA에선 ‘한 하늘 한 땅’이라는 이주여성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동남아에서 국내로 넘어온 여성들이나 중국 변방서 고생하는 탈북여성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세계적으로도 국경을 넘나드는 수많은 여성들에 대한 성폭행, 살인 등이 자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 이런 문제들을 세계적으로 공론화해 해결해보자고 제안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중요성이 인정돼 채택될 수 있었다.

그 후 2011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총회에서 이사로 당선됐다. 세계YWCA 이사의 경우 120개국이 참여한 가운데 20명을 선출하는데 그 중에 한국대표가 선출된 것이다. 또한 지난해 태국서 열린 총회에서는 공천위원으로 당선됐고, 그 후 지금까지 한국YWCA와 세계YWCA를 오가며 활발히 봉사하고 있다.

개인적으론 원래 영문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공부하면서 미국 여류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참새 한 마리가 고통당하는 것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면 인류를 사랑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반했던 기억이 난다. 성경번역으로 성균관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 후 15년간 성대에서 가르치다가 작년부터 한동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강의하고 있다.

또한 중학교 때 작문 가르쳐주신 어효선 선생님이나 고등학교 때 국어 가르쳐주신, 여성신문 기자로도 활동하셨던 우명미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 작년까지 한국YWCA 월간지 편집위원을 역임하는 등 꾸준히 저널리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대학 강의 등으로 바쁜 가운데서도 YWCA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건강한 생명운동에 대한 YWCA의 활동이 제 생각과 같기 때문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여성의 생명운동이라는 점이 특별하다. 또 다른 집, 가족과 같은 YWCA에서 앞으로도 필요한 곳마다 찾아가 이와 같은 생명운동을 지속적으로 해나갈 계획이다."

박상문 기자  msp29@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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