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옥 한국여성유권자연맹 명예회장.

[여성소비자신문 조미나 기자]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일-가정 양립'은 치열하게 논의하고 고민해야 할 정책과제로 손꼽히진 않고 있다.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이 자유롭게 활동하며 인정받는 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맏며느리로, 사회에서는 신임받는 환경공학 교수이자 여성 NGO단체 리더로서 활동 중인 김성옥 전 한국여성유권자연맹 회장은 여성의 '일-가정' 양립을 공론화하기 위해 노력해 온 여성계 리더 중 한명이다.

<여성소비자신문>은 이화여대 생물학과를 졸업한 뒤 결혼, 가정에 충실해 오다 60세 나이에 이화여대 환경공학 박사과정을 1등으로 마치고 이후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쳐 나가고 있는 김 전 회장을 만나 '일-가정 양립'에 대한 그의 생각과 향후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Q.비교적 늦은 나이에 사회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원래 가정주부를 희망했었나?

"원래는 의사를 하려고 미국 유학을 준비했다. 생물학을 공부한 것도 미국에 가서 의학공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 후 미국에 갈 생각이었는데 남편을 만나게 됐고 바로 결혼까지 하게 됐다.

결혼 후라도 유학 생각이 있었는데 시아버님이 공부하는 것을 반대하셔서 계획이 단절됐다. 그 당시에는 결혼 계획이 컸다보니 공부를 그만두는게 크게 다가오진 않았고, 어머니도 편찮으시다보니 살림을 계속하게 됐다.

처음에는 불만스러웠지만 ‘가정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기 때문에 하게 됐던 것 같다. 시부모님이 맏며느리로서 인정해주시고, 예뻐해주셨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가정에 몰두했다.

친정 어머니가 결혼 당시 하신 말이 '저녁 식사가 어떠냐에 따라 식구들이 집에 오는 시간이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한 두가지 씩을 해놓으면 가족들이 일찍 들어온다'면서 음식 스크랩 북도 주셨다.

그 소리가 머릿 속에 강하게 남아 매일 저녁마다 요리책을 보면서 음식을 만들었다. 나중에는 시동생이 말하길 '오늘은 뭐가 있을까' 하면서 들어왔다고 하더라. 맏며느리로서 누구에게도 자신있을 정도로 잘 해냈다고 생각한다."

김 전 회장의 연남동 자택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Q. 늦은 나이에 전공을 바꿔 환경을 공부한 이유가 있나?

"멋으로 학위를 따는 것도 아니고, 나이들어 공부를 한다면 활용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환경’이 그럴 것 같았다. 동네 엄마들하고도 동네 환경을 위해서 같이 봉사할 수도 있고 나아가 그게 퍼져나가면 전 지구적으로도 좋지 않나. 그래서 동네엄마들하고 환경봉사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환경공부를 하게됐다.

그러다 유권자연맹 회장을 맡으며 동네 엄마들과 만남 횟수가 자주 줄어들게 됐고, 학위를 딴 후로는 학교에서 학생들까지 가르치게 됐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히 감사하고 만족한다.

아이들에게도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 나중에 수업 끝나고 추천서 써달라는 아이들이 가끔 온다. 나는 겸임교수이니 과 교수님에게 받으라고해도 ‘수업을 들으면서 관심을 보여주고 잘 한 부분을 끌어내주고 한 교수님 추천서가 더 좋다’고 하더라. 대학원을 진학했는데 생각난다고 찾아오는 학생도 있다. 나 나름대로 열심히 한 것에 대한 보답인 것 같다."

Q. 가정을 나와 처음 시작한 사회활동이 유권자연맹 이사다. 연맹 일을 하게 된 계기는?

"매년 이화여대 동문을 대상으로 각 단과별 ‘올해의 이화인’를 뽑는데, 내가 생물학과 대표로 선출됐다. 그 모임에서 정치외교학과 출신 동문을 만났는데, 하루는 그 친구가 ‘한국연맹유권자연맹 중앙이사가 되지않겠냐’고 권하더라. 그래서 내가 ‘한국여성유권자연맹이 뭐하는데인지 모르고, 할 수 있는 일도 없다'고 하니, 친구 왈 ‘모임에서 너를 보면 말이 많은 편은 아닌데, 바른 소리를 잘 하는 것 같다. 한국여성유권자연맹 정기이사회는 두 달에 한 번씩이니, 의결 할 때 바른 소리를 해주면 된다’고 했다. 그 정도 일이라면 나도 NGO를 통해 봉사를 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아 나가기 시작했다.

당시 이춘호 회장의 위촉으로 중앙이사를 하면서 서울연맹 회장 또한 추천받았다. 그 당시에도 ‘연맹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회장직을 거절했으나 이연주 전 회장 재임 당시 부회장을 하면서 서울연맹 회장을 하게 되고, 연맹이 뭐하는 곳인지도 알게 됐다. 회원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연맹에 애정도 생겼다. 중앙회장은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결국에는 중앙회장도 됐다. 회장을 하면서 보니 개인의 삶보다는 연맹의 일에 치중, 친구모임에도 덜 나가게 됐다."

Q. 처음과는 다르게 열정적으로 연맹의 일을 하게 된 이유가 있었나?

"연맹은 전국조직이고 굉장히 큰 조직이다보니 그에 따른 일이 많다. 주로 정부지원사업을 하는데 여성가족부, 행정자치부, 선거관리위원회 쪽과 일을 한다. 그 일만 하려 해도 일이 엄청 많다. 그러다보니 다른 데에 신경쓸 새가 없었고, 하다보니 애정도 생겼다.

지방연맹과 함께 정부지원사업을 하면 중앙지부에서 해야할 일도 많다. 행사의 축사도 가야하고, 사업이 제대로 잘 진행됐는지도 미리 봐야하고, 행사 발제자의 원고가 누락됐는지도 확인해야한다. 지방연맹이 보내는 서류들에 미세한 누락이나 잘못이 있을 때가 있다. 그런 부분을 중앙에서 다시 점검해줘야 한다. 중앙은 전국 지방연맹들이 잘 하고 있는지 의논해주고 이끌어줘야 한다."

Q. 본인이 회장직을 맡은 후 가장 큰 성과가 있다면?

"회장이 되고나서 생각한 것이 정부지원사업을 중앙에서만 하지 않고 전국조직답게 지방연맹에서도 하게끔 하자는 것이었다. 전에는 정부사업을 받으면 중앙에서 하고 지방에서는 모니터링만 했는데, 회장이 된 이후로 지방연맹에 그 돈을 나눠주고 기획안을 내게 해서 지방에서도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NGO 단체다 보니 돈이 많지 않아 정부지원사업을 따서 지방연맹에서 토론회, 강연회 할 때 도움을 줬다. 사실 같은 행사라도 현수막이나 책자에 여성가족부 후원사업이라고 기재되면 훨씬 보기도 좋고, 좋은 분들도 많이 오신다.

지방연맹에 지원하는 돈을 늘리면서 “중앙 덕분에 큰 행사를 할 수 있어서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방연맹의 수도 많이 늘었다.

중앙지부와 지방연맹의 소통도 최대한 늘리려고 했다. 중앙 본부에서 행사할 때는 전국에서 회원들이 와도 눈인사만 하고 끝나는데, 지방 행사에 중앙이 내려가면 친해지는 계기가 된다. 행사 끝나고 임원들하고 차를 마시면서 행사평가도 하고 중앙의 입장도 알려주고 그러면 친해진다. 그 과정이 자꾸 넓어져야 되지 않을까 싶다. 회장이 되고 나서, 연맹에서 하지 않던 사업들을 많이 시작했다."

Q. 이를테면 어떤 활동들을 했었나?

"여성 정치참여 확대에 주력하는 단체이다 보니, 선거 관련 활동을 많이 했다. 또한 정치에 진출하고 싶은 여성들이 ‘한국여성유권자연맹에서 도움을 주는 것 없느냐’고 물어, 도움을 줄 것을 찾아보게 됐다.

연맹 회원이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다. 지방선거 때는 여성후보들이 대학 교수님들 앞에서 간단한 스피치를 통해 공약들을 이야기하고, 교수님들이 피드백을 해주기도 했다. 공약을 만들 때 전문가들에게 의뢰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한다. 주로 선거 시즌에 그런 프로그램이 운영이 되고 있다.

평상 시에는 일년에 한 번씩 여성지도자교육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꼭 정치가가 돼야 여성지도자인 것은 아니다. NGO를 하든 동네 모임을 하든 지도자로서 필요한 소양 등을 기를 수 있는 수업들을 열고 있다.

안보 교육도 진행했다. 탈북자와의 대화, 통일 전문가의 수업, DMZ 견학 등이 있다. DMZ 견학은 청년들 중심으로 가게 하지만 어른들도 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성인들도 다녀오면 ‘우리 나라가 분단국가인걸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잊어버리면 안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기회를 넓히면 좋겠는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정부지원사업에서 보조받으면서 하면 좋은데 쉽지는 않다.

학교 학생들과도 일년에 한번씩은 가고 있다. 다녀온 후에 학생들에게 보고서를 쓰라고 했더니 ‘서울에서 너무 편하게 지냈는데 오빠, 동생인 젊은 남자들이 긴장하고 서있는 것을 보니 우리나라 현실도 알게 됐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Q. DMZ에 특별히 관심을 두는 이유가 있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거다. 학생들을 왜 DMZ에 데려가냐면, 그 곳이 전세계 석학들이 인정하는 생태계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보존해야하는 곳이다. 환경공부하는 애들이 한번쯤은 다녀와야 할 곳이기도 하고, 세계 사람들이 와서 보고싶어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것 때문에 수강 신청했다는 학생들도 많다.

국가에서는 그 곳을 자꾸 개발하려고 한다. 관광으로 개발을 해도 환경적으로 중요한 것은 보존하면서 개발해야한다. 요즘 뜨는 것이 ‘에코투어’다. 이처럼 거기를 개발을 한다 해도 생태관광 쪽으로 개발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두루미도 머물다 가고 독수리도 머물다 가는 곳이니까 이 곳을 보존해야 한다고 제가 GIS를 통해서 면적을 뽑아냈다. 박대통령이 거기를 세계생태평화공원으로 만든다는 말을 했을 때 반가웠다. 국립공원으로 만들어 관리를 하고 보존을 해야한다는 쪽으로 정책논문을 썼다."

Q. 여성관련 활동 뿐 아니라, 환경운동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어떤 환경사업을 했었는가?

"유권자연맹의 회장이 됐을 때, 마침 이명박 대통령이 ‘녹색성장’을 강조해 연맹에서도 환경 사업을 했다. NGO의 사업도 정부의 지향 방침에 따라 달라진다. 제가 회장이 되기 전에도 연맹에서 환경사업을 했었지만, 그때는 자료집만드는 정도에 불과했다. 제가 회장이 되고 나서 실생활에서 실천하는 쪽으로 사업 방향이 바뀌었다.

환경 운동은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제가 결혼했을 때 시아버지가 절약정신이 투철하셨다. ‘화장지 아껴라. 전기 아껴라. 수돗물 아껴라’가 매일 듣는 얘기였다. 그게 조금은 불편했는데 틀린 소리는 아니잖나. 저도 모르게 아끼는게 몸에 뱄다.

학교에서 강의하면서도 학생들에게 “환경 보호도 습관이다. 학교 화장지 무분별하게 쓰면 그 휴지를 만드느라 전 세계에 있는 나무들이 없어지고, 종이를 만드느라 석유, 석탄이 많이 든다. 결국에는 에너지 소비도 많이 되고 CO2가 나와서 지구온난화가 된다. 일상생활이 전지구적인 현상에 영향을 주는 만큼, 자기가 할 수 있는 캠페인 한 가지씩만 실천해라”고 했다.

다들 나중에 보고서를 썼는데 “환경 캠페인, 환경 보존은 정부가 하는 것이고 개인하고는 상관없는 것인줄 알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는게 너무 신기했다”더라.

우리는 사실 엄마 뱃속에서부터 환경 캠페인을 겪은 거다. 엄마가 먹을 것을 가려먹고 좋은 음악 듣고, 행동도 조심하는 것. 그것들이 다 환경 운동이다. 물건만 아끼는 것이 환경이 아니다. 환경운동의 가장 큰 순기능은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사람만이 삶의 질이 높아지면 안된다. 모든 미생물들이 살 권리가 있다."

Q. 지금도 하고 있는 환경운동이 있는가?

"한국여성유권자연맹에서는 에코맘 체크리스트 활동을 했다. 엄마들이 일상생활에서 환경운동을 펼쳐야한다고 생각해, 에너지 절약이나 종이 절약 등 항목들을 만들어서 자신이 그날 뭘 했는지 체크하는 책자를 만들었다.

엄마들에게는 '에코맘', 학생들에게는 ‘에코던트’라는 이름을 붙여 환경운동을 펼쳤다. 학교 학생들에게는 ‘이화 그린’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환경운동을 했다. 기숙사 사는 아이들에게 세탁기 세제 양을 정량화해서 써붙여놓으니, 실제로 따라서 하더라. 그런 캠페인을 기숙사 아이들도 했다. 처음에는 기숙사 사감 선생님이 불편해하더니 나중에는 좋아하시더라. 또 엘리베이터 대신 걷기 운동을 했다. 교양과목에서 그 캠페인을 시작했는데 공대 엘리베이터에 다 붙어있다. 쓰레기통에 분리수거하는 것, 수업 듣는 아이들이 박스를 여러개 만들어서 올려놨더니 학교에서도 동일하게 만들었다. 그 운동을 할 때 교수님들도 학생들도 열심히 따라줘서 고마웠다."

Q. 연맹 회장에서 물러난 후 생활이 조금 달라졌을 것 같다. 어떻게 지내는지.

"연맹사무실을 안나가는 것 뿐, 달라진 건 많이 없는 것 같다. 현 회장하고 연맹 일에 대해 의논하거나, 지방연맹 회장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 있을 때 조언하기도 한다. 외부 행사 등에 초청받으면 다녀오고 있다. 하는 일은 비슷하지만 이전에 비하면 부담감이 많이 사라졌다.

회장을 맡은 당시에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적당히’라는 말을 싫어해서 잘 하려고 하느라 부담감이 있었다. 아까 이야기했듯 칭찬에 약한 편이다. 결혼했을 때에도 집안일만 하며 살 생각은 없었는데, 결혼을 했으니 며느리로서의 역할은 다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성격이라 연맹일도 잘 하려니 자연히 시간이 모자랐다. 자료를 찾고 임원들하고 회의를 하다보니 힘들었지만 하는 모든 일이 잘 풀렸다. 처음에는 염려를 했던 것들이 잘 되는 것들을 보면서, 이 모든 것들이 혼자의 힘이 아니라 연맹 자체의 힘이라는 것을 느꼈다. 역대 회장님과 임원들이 뒤에서 지켜보시고, 전국조직이 있어서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회장 혼자 연맹을 지고 가지 않도록 특별위원회를 두기로 했다. 회장이 하지 못하는 부분을 도와주면서 의논도 하고, 특별위원들이 중앙회원으로 있으면 작은 행사들을 지원하는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명예회장이 맡아서 하면 유연하게 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서 올해부터 활성화하고 있다."

조미나 기자  mina77@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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