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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연 탈북시인 엄마를 기다리며 밥을 짓는다
김희정 기자 | 승인 2015.08.24 14:04

 

이가연 시인은 황해남도 해주시 시골에서 태어났다. 2011년 한국사회에 정착했으며 2012년 등단한 후 2013년 시 부문 통일부 장관상, 2014년 한국평화인권문학상 시 부문 동상을 수상했다.

2014년 그녀의 처녀 시집 ‘밥이 그리운 저녁’이 출간된 후 2015년 5월에는 두 번째 시집 ‘엄마를 기다리며 밥을 짓는다’를 출간했다. 통일을 꿈꾸는 그녀. 통일을 기다리는 통일 시인이 되고 싶다는 이가연 씨를 <여성소비자신문>이 만나봤다. 

“저는 황해남도 해주시 작은 시골에서 살았어요. 가난한 저소득층에 속하는 가정에서 살았지요. 1년에 쌀밥 한번 먹기 힘들었습니다. 주로 산에서 산나물을 뜯어다 팔고 약초를 캐서 팔고 봄이면 미나리나 냉이를 캐고 그것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어요. 직장생활을 하긴 했지만 많이 힘들었어요. 그리고 어머니가 많이 아프셨어요. 아버지 없이 어머니가 혼자서 여동생과 저를 키우셨는데 엄마가 아파 돈이 절실히 필요했어요.”

“제가 탈북을 결심한 첫 번째 이유는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돈이 없다 보니 나의 꿈도 이룰 수 없는 땅이었어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열심히 노력해 예비대학시험에 합격해 너무 기쁜 마음에 엄마에게 달려갔었지요. 그날 엄마는 장화도 신지 못하시고 논에서 김을 매고 있었어요. 논두렁 머리에는 엄마의 구멍 난 신발이 있었어요. 눈물이 주르륵 흘렀어요. ‘엄마 나 대학에 합격했어’라고 말하자 엄마는 환하게 웃으시며 두 발로 뛰어 나오셔서 등을 두드려주었어요.

하지만 저는 가난 때문에 대학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곧 알게 됐습니다. 그때 만큼은 가난도 싫고 우는 자신도 싫었습니다. 밥상에 오르는 밥이 아닌 밥, 밥상에 둘러선 엄마와 동생을 볼 때마다 눈물이 마르지 않았어요. 그 후로 고향을 떠났고 엄마를 떠났어요. 이후 중국에서 라오스로, 라오스에서 태국으로 큰 감옥에서 작은 감옥으로 걸었고 2011년에 대한민국 땅을 밟게 됐습니다.”

이가연 씨가 공항에 내려서 처음으로 바라본 대한민국은 화려한 불빛과 아름다운 색깔의 예쁜 옷차림을 한 사람들로 넘쳐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북한에서 듣고 배운 한국사회와는 거리가 멀었다.

“한국에 오니 모든 것이 감사했어요. 2011년 하나원을 졸업하고 국가에서 배정해 준 임대주택에 입주해 지금까지 살고 있어요. 따뜻한 집, 더운 물이 나오는 내 집에서 생활한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그녀는 힘들었던 지난날 1년에 쌀밥 한 번 배불리 먹기 힘들었던 북한사회와는 달리 하루 세끼 쌀밥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처음이자 마지막 소원이었던 밥, 북한에서의 그 소원이 높이 오르고 싶은 자신의 꿈의 표현이었음을 대학에 입학한 다음 느낄 수 있었다.

한국에 정착한 후 이가연 씨는 언어에서 오는 어려움과 혼란이 컸다. 특히 새로운 문화에서 오는 어려움, 외국 문화에서 오는 어려움이 컸다. 홍대 부근에서 주로 일을 하다 보니 보니 이질적인 문화에서 오는 혼란도 컸다.

“여성들이 담배를 피는 것이나 술을 먹는 밤문화가 생소했어요. 한국문화가 좋은 것도 있지만 나쁜 것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요. 대한민국이라는 곳에 이런 또 다른 세상이 있구나 싶었어요.”

그녀는 한국에 와서 좋았던 기억들도 있지만 돈을 필요로 해서 일을 하다 보니 식당에서의 허드렛 일이나 불판닦는 일을 하며 무척 힘이 들었다. 또 노력한 만큼 돈이 들어오니까 좋은 점도 있었지만 돈은 쌓여가도 엄마에게 부칠 수 없는 상황에 많이 좌절했다.

“6개월 동안 우울증을 앓았어요. 그러다 이런 나의 모습을 엄마가 꿈에서라도 보시면 얼마나 괴로워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북한에서 엄마와 함께 한 순간들이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그때가 행복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가연 씨는 우울증을 극복하고 다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힘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때는 멘토가 없어서 혼자서 알아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대학도 혼자서 알아서 결정하고 모든 것을 혼자서 결정했어요. 탈북자들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뉩니다. 한국 사람처럼 살아가는 유형, 북한사람들 속에서만 살아가는 유형, 자신이 체험하고 경험한 것을 토대로 해서 살아가는 유형이죠. 저는 그 중 세 번째 유형에 속해요.”

그녀는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외국어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2년간 학교에 다니면서 자신은 전공 공부보다도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외국어대학교에 다니는 동안 3수에 도전해 끝내 고려대학교 국문학교에 입학했다.

“고려대에 들어가서 가장 좋았던 것은 제가 하고 싶었던 글을 쓸 수 있다는 점이에요. 저는 3년 동안 ‘밥이 그리운 저녁’ ‘엄마를 기다리며 밥을 짓는다’ 두 권의 시집을 냈어요.”

처음엔 시인이 된다는 생각을 못했지만 한국에 와서 감사한 마음으로 계속 일기를 쓴 게 계기가 됐다. 한 장애인단체에 글을 써 냈는데 주위 사람들이 시인 같다는 말을 해 준 것에 용기를 냈다.

이가연 씨는 한국에서는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을 찬양하는 글을 써야 하고 특히 글재주가 없으면 시인이 될 수 없어요. 그런데 어떤 분이 등단을 할 수 있는 단체에 추천을 해줘서 등단을 했습니다.”

그 때부터 이가연 씨는 자신의 글을 꾸준히 모았다. “한번은 아는 목사님에게 책을 내고 싶다고 했더니 시집은 안팔린다고 하시는 거에요. 사실 제 책장을 봐도 책꽂이에 시집은 10% 밖에 없었어요. 나도 다른 작가들의 시집을 사지 않으면서 내 시집을 내는 게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때 미국에 사는 재미교포 언니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 언니가 ‘가연아 시집 내! 내가 읽어줄께’ 하는 거에요. 그래서 저는 그 언니를 위해 시집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첫 번째 시집은 롯데재단의 후원을 받았다. “아는 분들과 함께 조그맣게 시집 출판회를 가졌어요. 그 자리에 통일단체 대표님들이 많이 오셨어요. 그분들은 광복 70주년을 맞아 많은 행사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저는 준비할 게 하나도 없는 거에요.”

그녀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책을 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탈북자로서 교회나 단체에서 한국분들에게 받은 게 너무나 많은데도 저는 준 게 하나도 없는 거에요.”
이가연 씨는 책을 내기 위해 먼저 여러 중소기업에 기획서를 제출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나눔을 하겠다고 했더니 그분들이 그게 자신들에게 어떤 이익이 있냐고 묻더군요. 그리고 제가 쓴 원고를 다 넘기라는 거예요. 자존심이 확 상했어요. 그래서 제 돈으로 시집을 내야 겠다고 결심했지만 막막했어요. 그런데 아는 전도사님이 독일 베를린에 계신 익명의  후원자로부터 200만원을 받아주셨어요. 그리고 미국에 계신 황기선 박사님에게 말씀을 드렸더니 수표 100만원을 건네주셔서 책을 낼 수 있었어요.”

이가연 씨는 교회에 다니는 양 아버지의 사무실에서 어렵사리 출간한 시집 850권을 통일 단체 등에게 기부하고 지난 5월에는 광화문에서 열린 통일박람회에서 시집 출판회도 가졌다.

앞으로의 비전을 묻는 질문에 그녀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지금은 시나 글들의 내용이 부족하지만 국어국문학과에서 내공을 쌓아 3~4년 후에 소설을 쓰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작가로서 자리잡고 싶어요. 저의 꿈이 통일이다 보니 통일을 준비하는 통일 작가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을 맺었다. 상처 난 곳에서 꿈은 시작된다. 오늘도 이가연 시인은 꿈을 밥에서 키운다. 가족과 함께 밥상에 마주할 그날을 그리며 오늘도 밥을 먹는다. 밥이 그리운 저녁이다.

 

 

김희정 기자  penmoim@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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