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뉴스TV 캡쳐화면.

[여성소비자신문=이근하 기자] 갑과 을, 본래 계약서 작성 시 당사자를 일컫는 용어였지만 언젠가부터 약자를 향한 강자의 부당행위를 상징하고 있다.

지난해 대표적인 갑질 사건,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땅콩리턴’ 사건에 이어 올해 역시 대형 광고대행사의 하도급 대금 꼼수, 커피프랜차이즈 업체의 알바생 모독 등 우리 사회 내 갑질은 이제 흔한 풍경이 돼버렸다.

갑질 사건과 관련해 보도된 인터넷 뉴스 중 화제를 모은 댓글이 있다. ‘너희들도 조현아가 아니란 법이 없다. 누구든 조현아가 될 수 있다’ 해당 댓글은 많은 네티즌들의 공감을 얻어 한국 사회의 슬픈 자화상을 대변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고착화 돼버린 갑을 관계의 시발점은 어디인가.

혹자는 “사회에 대한 이해 부족이나 직업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 특히 보여지는 걸 유난히 중시하는 한국의 문화적 특성도 한 몫 한다”고 말한다.

덕성여자대학교 김성진 교수는 “갑을관계는 금전만능주의의 권력적 표현”이라며 “지금 우리사회에 나타나는 현상은 물질만능 풍조에 근거, 과거 중세 신분제 하의 갑을 관계는 전통적 신분제에 기초했지만 둘 다 인간존엄을 부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속성을 지녔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교수는 “그것은 일종의 잘못된 믿음이 뒷받침된 것이고 그런 점에서 인문학적 혹은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고민 없이 경제성장만 이룩한 경우의 병폐”라고 덧붙였다.

갑을관계 배경, 관존민비가 출발

조선 말기, 매관매직(賣官賣職)이 성행했던 당시 과거제도는 무너졌다. 다만 과거 시험 중 소과 급제엔 3만 냥, 대과 급제엔 10만 냥이 필요할 뿐이었다.

그 결과 탐관오리들이 득실거리는 사회가 형성됐고 돈 주고 벼슬을 산 이들은 본전 이상의 이익을 거두고자 백성을 착취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조선시대 공직자들의 부패는 중앙집권 구조와 맞물려 만연했고 시대에 따라 변형된 모습으로 지속되면서 현재 갑을 관계를 공고히 하는데 일조했다.

이는 2013년 발간된 ‘갑과 을의 나라(저자 김준만)’의 일부 내용으로 갑을 관계, 그 배경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저자가 주장하는 갑을관계의 원형, 관존민비는 오늘날 역시 건재하며 전관예우 관행이 나날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관존민비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굳어져 사회 전 분야에 확산된 것.

특히 한국의 역사를 반추해보면 과거 강대국들의 지속적인 위협과 강탈로부터 시달려온 국가적 운명이 한국인 개개인에게까지 내면화된 결과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갑을관계가 한국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 사는 곳이라면 존재한다. 일례로 유럽 역사의 대표적 산물인 ‘성’은 절대 왕권 하에 민초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졌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기반으로 지금의 삶을 누리고  때문이다.

갑질 관련내용, 수단 다양화로 급부각

지금까지 갑의 횡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갑의 횡포가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갑을 관계의 불공정을 주장하는 이, 자신을 ‘을’이라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았음에도 불구, 대중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수단이 없었기 때문.

하지만, 인터넷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등장은 을의 입장을 공론화 하는 장을 마련했고 자유로운 표현의 방법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통적 언론 매체 외에도 소셜네트워크 기반의 새로운, 그리고 다양한 폭로 창구 메커니즘이 구축되면서 그 누구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이슈화 할 수 있는 시대를 맞고 있다.

실제 최근 젊은이들의 노동을 착취했던‘열정페이’의 경우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공개된 모 편의점의 채용공고문에서 논란이 불거졌고,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관련 업계 ‘갑’들의 사과가 이어진 바 있다.

갑을 관계 개선, 인간 가치 본연에서 찾아야

회사를 비롯해 우위에 서 있는 주체들의 갑질 관련 기사들의 연이은 보도는 갑을 관계 조명 효과를 낳았고 대중의 관심도가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갑을 관계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갑을 관계는 단순히 갑의 횡포를 고쳐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수준과 사안에 따라 모두 갑이 되는 상황에서는 유사한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 갑질 하는 손님이 대표적 해당 사례다.

더욱이 세상의 변화가 권력의 본질마저 변화시킬 수는 없다. 이에 대해 김성진 교수는 “권한의 경계가 있는 한 권위의 경계를 허물기는 어렵다”면서도 “다만 자신의 존재의미를 지나치게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찾는 것을 지양하고 인간의 가치를 인간 본연의 모습에서 찾는다면 비인간적 성격이 강한 갑을 관계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또, “갑을 관계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조차 스스로 대중매체에 환호하면서 어떤 누구의 지지자 정도로 축소되기도 한다”며 “스스로를 발견하고 자신의 생각을 소통하고 그런 사람의 생각이 수용될 수 있을 때 비로소 갑을 관계가 변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근하 기자  5dlrmsg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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