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이 세상의 부모 마음 다 같은 마음
아들딸이 잘 되라고 행복하라고
마음으로 빌어주는 박영감인데
노랭이라 비웃으며 욕하지 마라
나에게도 아직까지 꿈이야 있다
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청춘
부라 보 부라 보 아빠의 인생

세상 구경 서울 구경 참 좋다마는
돈 있어야 제일이지 없으면 산통
마음 착한 며느리를 내 몰라보고
황소고집 부리다가 큰 코 다쳤네
나에게도 아직까지 청춘은 있다    
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청춘
부라 보 부라 보 아빠의 인생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등 집과 가족, 삶을 생각하게 하는 기념일이 이어진다. 이 맘 때면 떠오르는 추억의 대중가요가 있다. 반야월 작사, 손목인 작곡, 오기택 노래인 ‘아빠의 청춘’이다. 갈수록 어깨 힘이 빠지고 설 땅이 좁아지는 아버지에게 힘을 주고 자녀들에도 “아빠를 이해해 달라”는 아우성이기도 하다.

재즈풍 멜로디, 흥겹고 부르기 쉬워

‘아빠의 청춘’은 4분의 4박자, 스윙리듬으로 흥겹다. 미국음악 영향을 받은 재즈풍으로 작곡됐다. 멜로디가 복잡하지 않고 부르기도 쉽다. 1964년 발표곡이지만 어버지들 권위가 크게 떨어진 요즘에도 더러 불린다. 가사가 그림을 그린 듯한 내용으로 재미있다. 트로트 복고 리메이크열풍을 타고 여흥행사 때 등장한다.

특히 2008년 우리나라 치매환자들이 좋아하는 노래 1위로 조사돼 이채롭다. 재활치료의 한 방법으로 노래 부르기가 채택되기도 했다. “다함께 부르면 우울증을 이겨내고 사회적 기능을 되찾는데 효과적”이란 분석이다.

이 노래는 1966년 같은 제목의 영화 ‘아빠의 청춘’(감독 정승문) 주제가(OST)로도 크게 사랑 받았다. 촌부 박 영감 역을 맡은 인기배우 김승호(해수)가 아버지, 태현실․신성일 등이 아들․딸로 나온 영화의 주제곡으로 쓰인 것이다.

주인공 박 영감의 머릿속엔 자식 밖에 없다. 그는 일찍 아내를 잃고 순두부집(‘평창옥’)을 하며 3남매를 힘겹게 키워냈다. 아들 또한 홀아비가 돼버렸다. 아버지는 몰래 아들의 재혼자리를 알아보지만 자식들은 새 어머니를 들이려는 줄 알고 아버지를 차갑게 대한다. 아버지의 속 깊은 마음을 자식들이 몰라준 것이다.

노랫말처럼 이 세상에 부모 마음은 다 같은 마음, 아들딸이 잘 되라고 행복하라고, 마음으로 빌어주는 박 영감 마음을 자식들이 어찌 알까. ‘노랭이라 비웃으며 욕할’ 뿐이었다.

노래가 처음 나왔을 땐 그렇게 인기를 끌지 못했다. “아빠의 청춘이라니, 무슨 소리냐”는 반응이었다. 작사가 반야월의 대표곡 ‘울고 넘는 박달재’와 ‘단장의 미아리고개’, 작곡가 손목인의 대표곡 ‘타향살이’와 ‘목포의 눈물’이 더 많이 불리고 알려졌던 원인도 있었다. ‘아빠의 청춘’ 노래는 영화개봉과 더불어 시대흐름을 타고 히트곡 대열에 올랐다.

1980~1990년대 부권상실(父權喪失), 흔들리는 아빠들의 사회현상과 맞물리면서 더 많이 불린 것이다. 2000년대 들어 가수 비(본명 정지훈, 1982년 6월 25일~)가 나오는 보험회사광고에도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아빠자동차의 조수석에 앉아 레코드가게에서 어렵게 찾아낸 이 노래 음반을 틀어놓고 아빠를 향해 미소 짓는 비처럼 우리의 아빠들에게 이 노래를 한번쯤 불러주면 어떨까. “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청춘, 부라 보 부라 보 아빠의 인생~”으로 말이다.

오기택은 ‘아빠의 청춘’을 휴대폰컬러링 곡으로 썼다. 자신의 대표곡이자 가장 좋아한 노래였다. 지치고 힘들 때 용기를 준 가요로 전화를 건 사람에게도 ‘힘내라’는 응원메시지로 삼았다.

오기택, 추자도 밤낚시 때 뇌출혈‧별세

‘아빠의 청춘’ 노래를 부른 오기택(1939년 4월 2일생)은 전남 해남군 북일면 월성리 출신의 매력적인 저음가수로 유명했다. 북일초등학교 졸업 후 해남중학교에 다니던 그는 같은 동네 선배(박승남)를 만나면서 가수 꿈을 키웠다.

서울성동공고로 진학한 그는 어머니가 외삼촌 집에서 공부하라고 보냈으나 마음은 노래 쪽에 있었다. 고교를 졸업한 1959년부터 2년 과정의 동아예술학원(가수 고복수가 운영)에 다녔다. 1961년 말 KBS 제1회 TV 직장인콩쿠르에 나가 신곡 ‘비극에 운다’로 최고상을 받은 그는 김부해 작곡가에게 발탁됐다.

20살 때 데뷔곡 ‘영등포의 밤’과 ‘가버린 영아’를 취입, 빅히트했다. 인기를 끌던 1963년 4월 그는 선배가수 최희준, 도미 등의 추천으로 해병대 연예대에 입대했다. 제대 후 매달 두 곡씩 취입했을 만큼 인기는 대단했다. 1966년에만 ‘고향무정’, ‘충청도 아줌마’, ‘마도로스 박’ 등을 내놓으며 국민가수로 떠올랐다.

그해 전체 언론사 선정 10대 가수, 1967년 부산문화방송 선정 10대 가수가 됐다. 1998년까지 녹음한 노래만 1000곡이 넘는다. 1979년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장이 됐고 1990년 싱가포르 렉스오픈 아마추어 1위, 2006년 반야월 가수예술공로상을 받았다.

그렇게 잘 나갔던 오기택에게 한순간 먹구름이 덮쳤다. 1996년 12월 추자도 부근 무인도에서다. 밤낚시를 하다 뇌출혈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됐다. 그는 허리띠로 소나무에 손목을 묶고 19시간을 버텼다.

졸음을 이기기 위해 1000여 곡의 노래를 밤새 부르다 다음날 구조돼 서울성모병원에서 뇌수술을 받았지만 정상을 되찾지 못했다. 그때부터 언어장애, 마비증세로 힘든 삶을 살았다. 재활훈련을 받고 한때 KBS 1TV ‘가요무대’ 등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다시 건강이 나빠져 2022년 3월 23일 오후 83세로 눈을 감았다.

평생 미혼이었던 그는 생전에 “자신의 모든 재산을 모교인 해남고에 장학금으로 내어놓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고향 해남에선 2007년부터 해마다 가을이면 ‘오기택 가요제’가 열리고 있다.

‘아빠의 청춘’ 후속곡 ‘엄마의 청춘’ 발표

노랫말을 쓴 반야월(본명 박창오)은 1917년 8월 1일 경남 마산태생으로 1939년 태평레코드사 전속가수로 가요계에 발을 디뎠다. 김천에서 열린 조선일보·태평레코드사 주최 전국가요음악콩쿠르 때 1등을 해 가수가 됐다.

진방남이란 예명으로 1940년 취입한 ‘불효자는 웁니다’, ‘꽃마차’, ‘마상일기’, ‘고향만리 사랑만리’, ‘잘 있거라 항구야’ 등 100여 곡을 불렀다. 그러나 그는 작사가로 더 유명하다. 1942년 가수에서 작사가로 변신, 5000여 곡(2000여 미발표곡 포함)의 노랫말을 지었다. 국내작사가 중 최다기록이다.

‘소양강 처녀’, ‘산장의 여인’, ‘단장의 미아리고개’, ‘삼천포 아가씨’ 등 서민적인 노랫말을 주로 썼다. 추미림, 박남포, 남궁려, 금동선, 허구, 고향초, 옥단춘, 백구몽 등의 예명으로 다양한 노래 작사를 했다.

밀양출신 작곡가 박시춘, 목포출신 가수 이난영과 함께 ‘우리나라 가요계 3대 보물’로 불린 그는 2012년 3월 26일 96세로 별세했다. 2남4녀를 뒀으며 대부분 음악관련 일을 하고 있다. 그의 고향 마산에선 해마다 ‘반야월 가요제’가 열린다.

‘눈 감기 전에 은퇴는 없다’며 말년까지 노랫말을 썼던 반 선생은 ‘아빠의 청춘’ 후속곡 격인 ‘엄마의 청춘’ 가사를 2006년 발표하기도 했다. ‘아빠의 청춘’을 리메이크한 곡으로 멜로디는 같지만 ‘박 영감’을 ‘윤 여사’로, ‘노랭이’를 ‘치맛바람’으로 바꿨다. 국악도 출신 트로트가수 예진(본명 최예진)이 취입했다. 반 선생의 차남(박인호)이 매니저를 맡고 있던 신인가수 아미도 취입했다.

작곡가 손목인은 1913년 경남 진주태생으로 본명은 손득렬. 손안드레, 양상포, 임원 등의 예명도 썼다. 한의사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란 그는 서울 재동보통학교, 중동중학교를 거쳐 일본 도쿄고등음악학교에서 작곡을 공부했다.

1934년 처음 작곡한 ‘타향살이’(원제목 ‘타향’)를 고복수가 불러 히트하면서 OK레코드 전속작곡가가 됐다. 이어 ‘목포의 눈물’을 비롯, 많은 히트곡들을 작곡해 유명해졌다. 말년에 미국에 이민 갔다가 1999년 일본 도쿄출장 중 세상을 떠났다.

‘아빠의 청춘’ 주연배우 김승호, 연예인 집안

영화 ‘아빠의 청춘’ 주연배우 김승호(1918년 7월~1968년 12월)도 얘깃거리가 많은 연예인이다. 한양대 영화학과를 졸업한 그는 1960년대 서울 충무로 영화거리는 ‘김승호 시대’라 해도 지나침이 없었을 만큼 인기스타였다.

그의 연예인핏줄은 후손들에게 이어졌다. 외아들인 영화배우 김희라, 손자인 가수 기주(본명:김기주, 1979년 5월 24일생)가 눈길을 끈다. 김희라는 1960년 제7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을 탄 김승호의 뒤를 이어 1970~80년대를 풍미했다.

1969년 영화계 데뷔 후 40년간 500여 편에 출연했다. 기주는 2001년 ‘남자의 이름으로’란 곡으로 가요계 데뷔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명성에 누를 끼칠까봐 성을 빼고 이름만으로 데뷔한 게 흥미롭다.

왕성상 언론인 / 가수  wss4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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