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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땀과 세월 존중되는 ‘차별 없는 세상’ 꿈꾼다<인터뷰>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목숨 걸고 일하는 풍토 당연히 여기는 기업문화 '작별 고할 때'
최문희 기자 | 승인 2014.11.27 16:41

   
 
[여성소비자신문=최문희 기자]1992년 초, 정부가 반국가 단체로 규정했던 사노맹 활동으로 6년 동안 교도소에 수감된 데 이어 회계 조작 의혹이 일었던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 노조파괴 컨설팅 업체인 창조컨설팅 활동 저지 등 숱한 노동문제를 오랜 세월 공론화시킨 인물이 있다.

땀 흘리는 자의 고통이 있는 곳이라면 온당한 목소리를 내고자 쉴 틈 없는 그는 환경노동위 소속 은수미 의원. “사람이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좌절하지 않고, 모두가 시민으로서 충분한 권리를 갖는 자유로운 사회를 원합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가 제 삶의 화두예요.”

그가 이처럼 꿈꾸고 개척하고자 하는 ‘내일’이 서산 너머 기울어지는 해처럼 가깝지 않은 것이 국내 노동계가 처한 현실이다.  삼성 백혈병 문제와 AS센터 내부 발암물질 검출 등 현재 거센 논란이 이는 노동계의 현안들을 은수미 의원과의 인터뷰를 통해 되짚어 보았다.      

"노동자들의 알 권리 보장·기업 영업비밀 투명하게 공개해야"

Q.국감에서 삼성전자서비스의 162개 센터에 대한 2010년 자체 작업환경측정 자료를 입수한 바, 센터 내부에서 발암물질인 TCE와 납, 생식독성 유발물질인 톨루엔 등이 검출됐다. 서비스센터 환경의 위험도는 얼마나 높은가.

“제가 확인한 자료는 삼성측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기준치 이하라는 점을 강조하긴 했지만 노말헥산이나 TCE, 납과 같은 유해물질이 검출돼 즉시 센터에서 치우도록 지시하는 내용이었죠. 문제는 지금 거론되는 유해물질들이 자료에 나와 있는 것뿐이라는 겁니다.

실제 의원실 자체조사결과, 더 심각한 물질들이 사용되는 것을 확인했어요. 서비스센터가 유해물질에 노출된다는 건, 그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건강과 직결되므로 당연히 문제가 되지만 더 심각한 사실은 노인이나 어린이 같이 면역력이 떨어지는 일반인들도 이용하는 장소라는 점에 있어요.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기업들의 책임감이 더 높아져야 하지요.”

Q. 삼성전자서비스는 IPA와 땜납(무연납)을 제외한 모든 물질을 전량 폐기토록 지시했다. 하지만 문제가 모두 일단락된 것은 아니다. 기업이 직업병 근로자에게 정신적·물질적으로 보상해야 할 대책들을 짚어본다면.

“우리나라는 비슷한 수준의 다른 나라에 비해 산재보상이나 안전관리 수준이 열악해요. 특히 기업의 직업병 발병 인정에 매우 인색하죠. 얼마 전까지 삼성전자 반도체 공정의 백혈병 발생과 관련해 노동자가 정부를 상대로 “산업재해로 인정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죠. 이에 회사가 변호사를 선임해 정부 측과 함께 소송에 참여하는 진풍경이 벌어졌고요.

다른 국가에선 이런 문제가 별로 사회적 이슈가 되질 않아요.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국민들에게 무상에 가까운 의료보험을 제공해 산재로 인정되느냐 아니냐가 크게 문제되질 않죠.

   
 
또한 기업의 책임감도 중요한 몫을 차지해요. 기업이 노동자의 생명을 담보로 비인륜적인 노동을 강요했다면 그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쇄도해 사실상 계속적인 사업이 불가능해지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목숨 걸고 일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기업문화를 바꾸고 건강권이 보장되는 일자리 풍토를 만드는 거예요.”

‘내가 월급 주는 사람’ 마인드 대신 같은 사회 구성하는 시민의 마음 품어야

Q. 20년간 삼성전자서비스 동대전센터에서 내근직으로 일하며 전자제품 수리를 담당했던 근로자 한 명이 루게릭병을 앓고 있다. 산재신청이 이뤄진 가운데 정부에선 어떤 차원의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내다보는가.

“매번 부딪히는 난관이 바로 ‘자료’ 문제예요. 이런 병들은 오랜 기간 병증이 나타나지 않고 요인이 잠복해 있다 나타나죠. 과거에 노동자가 무슨 일을 하면서 어떤 물질에 노출됐는지를 알 수 있어야 검증이 가능한데, 기업들이 오래된 자료라면서 폐기했거나 기업비밀이라면서 공개할 수 없다고 하면 진실공방에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게 돼요.

이런 문제들이 보통사람들로 하여금 대기업을 상대로 산재소송을 할 수 없도록 하는 현실적 제약을 초래하죠. 정부가 나서 기업의 영업비밀과 노동자들의 알권리 양자를 충족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해요.”

Q. ‘삼성반도체 백혈병 산재’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세월이 7년을 훌쩍 넘어섰다. 반도체 직업병 예방대책을 위한 토론회에서 공유정옥 전문의는 교섭을 통해 노동자와 시민의 알 권리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정보공개’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기업의 책임과 의무가 더 강화될 필요가 있어요. 기업활동에 노동력은 자본이나 토지, 재료나 작업도구와 같이 반드시 투입돼야 할 요소지만 사람은 작업공구나 기계가 아니에요. 그래서 반드시 다른 경제활동의 요소들과 다르게 다뤄져야 하고 존중돼야 해요.

기업이 ‘내가 월급 주는 사람’이 아니라 같은 사회를 구성해 살고 있는 시민들이라고 생각해야 마땅하죠. 우리가 정보공개나 알권리 보호와 같은 여러가지 정책을 내놓더라도 기업의 근본적인 의식변화가 없으면 법망을 피해 달아나려는 모습만 재현될 뿐이죠. 법 제도는 껍데기만 남게 되고요. 이를 위한 시민사회의 엄중한 경고와 지속적인 관찰 역시 필요한 부분이죠.”

   
 
Q. 최근 국회 본청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들과 11일간 단식 투쟁을 했다. 단식을 이어나가면서 파악한 민심은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단식을 하며 가장 고통스러웠던 이유는 배고픔보다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신에 있었어요. 국민들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에 대해 ‘우리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 ‘우리 고통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느끼고 배척하고 있다는 경험, 또 그 경험이 반복되면서 만들어진 불신, 이를 어떻게 깨 나갈까 하는 고민이 절 고통스럽게 했죠.

다른 한편 세월호 사건을 통해 드러난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는 국민적 명령이 있었어요. 다신 그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 위해 법제도를 보완하고 공직사회의 부당한 관행을 바꾸어 나가라는 것이었죠.

세월호 단식과정에서 이 두 가지를 직접 확인하면서 고민도 커졌어요. 민심은 정치를 불신하면서도 정치에 대한 기대와 요구를 버리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죠. 다소 이중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결론은 명확했어요. 지금의 정치로는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민심이 정치를 자신의 대변자라고 인정하지 않으면서 제대로 대변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에 답이 있다고 생각해요. 과거 높은 곳에 앉아 소수 의견만 믿고 결정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해요.

낮은 곳에서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국민이 자신의 의견이 정치에 반영된다고 믿을 수 있을 때 정치가 바뀌고 비로소 민심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지난 달 20일, 의원님께선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을 통해 ‘돈 먼저 기업 공화국’을 ‘사람 먼저 시민공화국’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겠다던 약속을 지키는 일”이라고 했는데.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 종합판입니다. 돈을 위해 규제를 푼 결과, 사회적 약자들부터 죽음의 벼랑에 내몰렸기 때문이죠. 세월호 참사 뿐 아니라 그와 유사한 많은 문제들이 그렇죠.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 그래서 모두가 존중받고 자유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치가 해야 할 중요한 과제예요. 세월호 참사는 그 과제의 시급성을 고통스럽게 웅변하고 있지요.”

‘노동의 가치 존중받는 올곧은 민주주의’의 염원

Q. ‘노동의 가치를 존중받는 올곧은 민주주의를 염원한다’는 신념처럼 줄곧 노동 문제를 해결하는 데 구슬땀 행보를 걸어왔다. 노동 문제에 매달리게 된 최초 계기가 있을까.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은 가정환경이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거나 진학을 포기하고 공장에 나가야 했어요. 친구들도 저처럼 괜찮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놀고, 쉬는 것이 맞는데 왜 그것이 안 될까 하는 고민이 들었죠.

이 질문은 중학교 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의 책들을 통해 사회가 정의롭거나 평등하지 않구나, 라는 발견으로 이어졌어요. 이어 20대 시기의 공장 경험에서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소망으로 발전했고요.”

Q. 말씀대로 80년대 시절 의원님은 봉제공장 노동자로 근무했고, 사노맹 사건으로 6년간 옥살이를 겪기도 했다. 이처럼 국내 노동계의 현실을 숱하게 들여다보면서 우리나라 노동자의 인권은 세계적으로 어느 정도 수준인지 진단한다면.  

“과거 권위주의 정부로부터 수평적 정권교체가 있었죠. 이후 전교조 합법화부터 국가인권위 설치와 같은 일정한 인권성장을 가능케 하는 조치들이 있었고요. 한국은 지난날 인권 후진국이라는 오명으로부터 벗어난 듯 보였어요.

하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오늘날까지 한국의 인권상황은 다시 1996년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갔다고 할 수 있어요. 언론노조 탄압, 전교조 및 전공노 법외노조 통보, 쌍용차정리해고 정당 판결에서부터 국정원 선거개입, 불법감찰 등 최근의 각종 사건들은 국내 인권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죠. 지난해 국제적 노동조합 연합조직인 ITUC가 한국의 노동권에 대한 심각한 경고를 내린 것도 결코 간과해선 안 되는 부분이고요.

인권은 헌법이 보장하고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보편적으로 보장돼야 하는 권리에요. 이러한 권리보장이 정부가 교체될 때마다 오락가락하는 일은 있어선 안 되죠.

범국민적 민주화운동의 열망이 민주주의를 통해 정치를 강화하고 국민 인권을 보호하고자 했던 것이 헌법의 기본정신인 만큼, 현재 인권보장을 위한 정치의 역할이 적극 요구된다고 생각해요.”

권리가 권리답게 보장되지 않는 ‘땀의 현장’ 

Q. 그렇다면 오랜 세월 노동운동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처음 미싱사로 공장에 들어갔을 때 미싱일을 제대로 못한다는 이유로 ‘개씨부랄년’이라는 욕을 먹었어요. 단 한 번도 그런 대우를 받아본 적 없던 저는 하루 종일 눈물바람이었죠. 하지만 제 옆의 동료들은 매일같이 욕을 먹는 이유 때문이었을까, 그 상황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더군요.

누구는 인격적 모욕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혹은 받아들여야 했고, 누군 그 이전까지 단 한 번도 그런 대우를 받은 적이 없었던 이유로 욕 한마디에 충격을 받았던 당시 대조적 상황을 떠올리면 아직까지 가슴이 아파와요.

누구나 다 그렇게 살고 있는 것처럼 현실에 대해 순응하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 반응하는 것 중에 어떤 태도가 올바른 것이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항상 가지고 있어요.

   
 
영화 카트에서 보여준 것처럼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이런 상황에 놓여 있어요. 당장의 경제적 보장을 의미하는 ‘재계약’과 인간다운 대우를 보장받기 위해 ‘싸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은 부당한 고통이에요. 이런 현실은 권리가 권리답게 보장되지 못한 까닭에 나타나는 것이죠. 그런 점이 제가 항상 ‘시민의 권리’를 주목하고 강조하는 이유에요.”

Q. 노동문제를 파고든지도 30년 세월이 도래했다. 연구위원(노동연구원) 시절과 현재 의원으로 의정활동 시 온도차이가 있을까.

“온도 차이가 큽니다. 아마도 책임의 차이겠지요. ‘연구자’로서의 저는 노동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를 하고 결과에 대해서만 책임졌죠. 국회의원으로서 저는 노동문제를 사회적 쟁점으로, 법과 예산으로, 국가의 정책으로 만들어야 하지요. 온도차이는 바로 이 과정에서 노동의 가치를 대변하고 책임지기 때문에 발생하죠.

연구자일 땐 느껴보지 못했던 무력감과 좌절감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비례초선인 저를 계속 정치에 몰입하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해요. 책임지고 해결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정치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올바른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간절함으로 증폭되지요.”

Q. 앞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정치는 무엇이며, 향후 계획은.

“민주주의는 힘있는 사람과 힘없는 사람, 돈 있는 사람과 돈 없는 사람을 가리지 않아요. 모두에게 한 표를 주고 투표를 통해 사회를 운영할 권력을 구성하도록 하는 제도지요.

투표과정에서 모든 주권자는 동등합니다. 그런 이유에서 구조적으로 민주주의는 약자를 위한 이념이지요. 제가 하는 정치는 이런 해석이 충실한 정치였으면 좋겠어요.

약자를 대변하는 정치, 약자와 함께 하는 정치,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정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정치를 하고 싶어요. 그런 정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제가 부여되길 진심으로 희망해요.”

Q. 마지막으로 국민에게 어떤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항상 정치를 바로 세우고 사회를 바꿀 능력이 있는지 스스로 질문해요. 부족함이 많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질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자유와 정의와 권리를 막고 서 있는 벽을 뚫어내려는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두려워하지만 물러서지 않는, 벽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했던 정치인으로 남고 싶습니다.”

최문희 기자  moon@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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