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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적 가치 통합한 미래의 리더십을 꿈꾼다"<인터뷰 현장> 김양희 젠더앤리더십 대표
일하기 좋은 공동체 만들려면 남녀 간 차이 존중해야
최문희 기자 | 승인 2014.09.29 17:21

   
 
[여성소비자신문=최문희 기자]우리 신체는 감기 바이러스만 침입해도 온몸으로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그러나 예외가 한 가지 있다. 바로 여성만이 경험할 수 있는 임신인데, 자궁 속의 태아는 우리 몸에 침입하는 이물질처럼 자신이 아닌 것, 즉 타자로 경험된다. 그럼에도 여성은 생명이 자라도록 관용하고 타자와 공존의 연결고리를 맺는다. 벨기에 태생의 프랑스 페미니스트 뤼스 이리가라이는 인간의 문명이 여성적 감수성에 기초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여성적 문명이 공존과 화해를 가능케 한다고 언급했다. 카페 어슬렁정거장에서 만난 김양희 젠더앤리더십 대표는 이처럼 이리가라이의 유명한 전언을 이야기하면서 “남성들도 여성적 가치를 내면화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홍대입구역 근처에 위치한 어슬렁정거장은 1인 여성가구를 위한 협동조합인 그리다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카페다. 어슬렁정거장은 성평등한 민주 사회, 여성의 자립 지원, 지속가능한 커피를 생산·판매해 3세계 노동자의 생태 환경을 보호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1층은 카페, 2층은 여성 교육과 상담·나눔을 나누는 공간으로 꾸려져 나간다.

어슬렁정거장 건물 위 오후의 느릿한 햇살이 드리운 가운데 김양희 대표는 특유의 부드럽고 소박한 말투로 여성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8남매에서 7번째로 태어나 엄격하고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자란 그는 유년시절부터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을 거듭해야만 했다.

여성에 관심이 모아진 첫 출발선

고민의 시초는 김양희 대표 자신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온실 속에서 엄격하게 자식을 키우셨던 부모님 아래 그는 유신정권 시기와 맞물리기도 했던 1974년도의 74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70년대 한국은 여성 리더십 개념이 전무한 시절이었다.

“74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그 당시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20%에도 미치지 못했을 거예요. 90년도 들어서야 32.6%에 도달했으니, 당시 여자대학생들은 오히려 엘리트에 가까웠던 셈이지요. 저와 같은 학번이 졸업할 무렵에야 삼성 같은 데서 여학생들을 처음 뽑기 시작했어요. 이전까지는 시골에서 상경한 여성들이 공장에 근무하는 정도에 그쳤지요”

혼란스러웠던 사회적 상황 속에서 그는 주체적인 삶을 산다는 것을 고민하다가 홀로서기를 실험해보기로 결단을 내린다. 김양희 대표는 대학에서 2학년을 마친 76년도에 외국 사회에서 나가 새 삶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여자 대학생이 자기 목표를 성취해나가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단련하는 과정의 신호탄인 셈이었다.

본래 전공이 영문학이었던 그는 버지니아 울프와 서머셋의 모험 등 세계 명작 들을 두루 읽으며 책의 세계에 푹 빠져들었던 문학소녀이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으로 건너가 영문학 공부를 하던 도중, 문학을 아우르는 학문 전반이 인간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부전공으로 심리학을 공부했던 그는 대학원에 입학해서는 심리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유독 현실문제에도 관심이 많은 그였기에 사회심리학은 그가 공부하기에 적절한 공기와 토양을 제공해주었다.

여성정책연구원 시절

이후 한국에 돌아와 응용사회심리학과 관련된 대학 강의를 시작했고 여성정책연구원(당시 여성개발원) 박사 1기 공채로 입사해 일에 대한 새 터전을 꾸렸다. 입사 이후에는 전공별로 부서를 쪼개는데 당시 복지나 사회학 전공이 대다수인 상황에서 심리학 부서는 마련되지 않았었다.

김양희 대표는 전공을 살려 여성문제에 대한 의식 조사와 문화 단체 활동, 시민활동 연구를 주로 하는 교육문화팀에 들어가서 연구 생활을 시작했다. 정책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여성의 문화활동, 생협활동, 환경 등으로 여성정책 연구의 외연을 확장하려고 노력했다.

당시 여성 리더십에 관한 책이 출판되기 시작한 시기는 80년대 중반부터였다. 하지만 그마저 대부분 외국에 국한돼 있었고 ‘여성 리더십’이라는 키워드가 우리 사회에 안착조차 하지 못한 형편이었다. 허허벌판이었던 셈이다. 김양희 대표는 정책연구원에서 연구를 거듭하면서 시야를 두루 넓히게 됐다.

인터뷰 당시 존경하는 여성리더를 묻는 질문에 그는 당시 여성정책개발원 입사 동기였던 김선욱 전 총장(이화여대), 심상정 의원을 손꼽았다. 김선욱 전 총장의 경우 자기의 확고한 중심이 있으면서도 타인에게 신뢰를 심는 포옹력을 가까이서 접하면서 존경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말처럼 김선욱 전 총장은 독일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대한민국 첫 여성 법제처장로 근무했다. 현재는 여성 인재를 모아 역량을 키우는 데 힘을 쏟고 있는 인물이다.

리우회의 사전회의 ‘세계여성환경회의’

그에게 인상적이었던 경험 중 하나는 1991년 마이애미에서 개최됐던 ‘세계여성환경회의’이다. 세계여성회의의 결과는 생태계 관리와 환경파괴 통제에 있어 여성의 참여를 강조하고 정책결정자, 계획자, 관리자, 과학자와 기술적 자문가로서 여성의 참여비율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을 검토·수립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으로 의제 21의 24장에도 수용돼 있다.

김양희 대표도 사전회의에 참석했다. 생활공동체와 환경, 여성리더십 문제 등을 연구했던 그는 국내에서 여성문화 전반과 생활공동체(생협)까지 연구 분야를 폭넓게 확장시키고 있었다. 그는 마이애미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여성리더를 한 자리에서 마주하게 됐다.

케냐의 환경·정치 운동가인 왕가리 무타 마타이부터 물리학자이자 에코 페미니스트인 반다라 시바에 이르기까지, 김양희 대표는 생태적이고 평화적이면서도 다른 가치를 제시할 수 있는 분야가 ‘여성리더십’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마이애미에서의 당시 경험은 여성리더십에 대한 파워를 느끼게 된 계기로 자리매김했지요. 돌아와서 여성 문화 활동을 비롯해 지역의 변화 운동 등을 연구해나가는 등 굉장히 많은 잠재력을 발견하게 해 준 작용점이 돼 주었어요.”

   
 
대안공동체 속 여성

이처럼 지역 생활공동체 연구에도 힘을 쏟은 그는 현재 여성환경연대의 공동대표인 ‘으뜸지기’ 중 한사람이기도 하다. 활동 내력과 에피소드를 묻는 질문에 김양희 대표는 지역연구를 하면서 만나게 된 대안공동체 상근 활동가들의 노고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지역연구를 하면서 돌아다니다 보면 잠재력 있는 멋진 여성분들을 뵙게 되요. 그 중 신의터 농원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여성 농업인을 뵙고 감동을 받았어요.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가 보수적인 경우가 불 보듯 뻔한데 무언가를 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상상을 이어나가고 개척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우리나라 여성 운동이 지역의 풀뿌리 여성의 역량을 결집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위의 말처럼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생협이기도 한 행복중심 협동조합 등 생활공동체에서의 여성의 역할에도 관심이 많다. “먹거리와 생활재에 여성들이 민감할 수밖에 없죠. 생활재에서 시작된 여성들의 지역사회 문제인식으로 하여금 연대를 하고, 바른 먹거리에 대한 생산을 생각하게 되니까요.”

그의 말처럼 한국여성민우회도 중산층 여성들의 생활공동체로 출발선을 그었다. 한때는 학생운동을 하던 여성들이 주부가 돼 자기 정체성에 혼란기를 겪고, 지역사회 문제를 목도한 후 연대를 시작해 오늘날의 의미 있는 공동체에 포진됐다.

부엌에서 세상이 보인다

“부엌에서 세상이 보인다’라는 말이 있어요. 두부 한모를 사서 찌개를 끓이더라도, 내 가족이 맛있게 먹는 식탁을 꾸미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어디서 수입한 콩인지, 수입률과 국산에서 나는 콩의 획득량은 어떻게 되는지 따져볼 수가 있죠.” 김양희 대표의 말처럼 식탁 하나에서 세상 전반을 아우르는 갖가지 사회 문제 대안이 다양한 방면으로 제시될 수 있다. 엄마의 작은 행동과 실천이 생태계의 온도를 조금씩 바꿔나갈 수 있는 셈이다.

김양희 대표는 앞으로 생협이 여성 생산자들과의 연대를 좀 더 강화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한살림 활동 등 저력 있는 여성 농업인들이 국내에 많지만 남성의 그늘에 가려져 빛을 보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당시 농촌을 지원하는 신활력사업이 가동된 바 있다. 농촌에 돈이 내려가면 각 마을마다 농촌체험프로그램 등을 추진했는데, 이 때 돈을 움직이고 중요한 결정을 하는 이들은 마을의 남성들이었다. 여성농업인들은 도시의 방문객을 받기 위해 접수와 청소, 음식하기 등 농사 이외에 부수적인 일을 많이 하게 되었다.

“사회적 기업 내에서도 여성 친화적인 모델들이 많이 나와야 해요. 여성농업인들의 능력을 한껏 끌어 올릴 수 있는 역할을 생협이 연대를 통해 이루었으면 합니다”

여편네 협동조합

마찬가지로 재래시장 활성화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도 지역경제부서의 남성 공무원과 남자 교수들, 상인 협회의 남성 임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실상 재래시장 상인 중에서는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대부분이죠. 재래시장을 어떻게 바꿀지 아이디어를 낼 때 여성이 의견을 내면 다른 차원의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어요. 파이를 넓혀달라는 차원에서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성의 관점이 반영돼야 한다는 이야기이지요. 남녀 간의 균형 차원에서 말입니다.”

김양희 대표는 사회적 기업의 한 모델로 ‘여편네 협동조합’을 예로 들었다. 여편네 협동조합은 독일의 여성 창업 주주들 간의 협동조합으로 ‘미래의 협동조합’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주목을 받는 곳이다. 독일 경제장관이 방문할 정도로 여성이 주도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이곳은 입주기업만 해도 현재 60개에 달한다. 실제 독일 여성들의 ‘창업 요람’으로 불릴 정도로 세력이 확장되고 있는 추세이기도 하다.

현재 조합의 건물 안에는 여성들이 창업한 사업체가 들어와 있는 가운데 서점, 식당, 카페, 약국, 변호사 사무실, IT 업체까지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창업을 하려는 여성들에게 창업 자본을 대출해주는 대출업체까지 건물 안에 함께 들어가 있다.

성(性)의 장벽 넘어 ‘통합의 리더십’ 추구

하지만 이 같은 여성 리더십에 따른 문제가 가장 많이 발발하는 곳은 우리 가장 가까이 있는 직장 내 조직일 것이다. 여성과 남성이 공존할 수 있는 바람직한 조직 문화가 궁금하다는 질문에 그는 산발적인 작업이 아니라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문화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 기업의 면접이 1차, 2차, 3차까지 있다고 가정했을 때 위로 올라갈수록 여성 합격 비율이 뚝뚝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들어와서 취업을 한다 해도 퇴사시기 곡선이 갑작스레 가팔라지는 쪽도 여성이구요. 이 곡선을 완만하게 유지하려면 일·가정 양립 정책에 따른 남녀 모두의 라이프 밸런스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해요. 여자들 뿐 아니라 남성들에게 출산 휴가를 제공하고, 성별 다양성에 대한 교육을 수행해야 하지요.”

김 대표는 여성적 리더십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젠더통합 리더십’의 필요성도 제기한다. “젠더통합 리더십을 통해 여성과 남성은 서로 다른 삶의 조건의 특성과 차이를 이해하고 다른 성의 구성원과 협력하고 보완하려 노력하게 됩니다. 남녀가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할 수 있도록 파트너십 멘토링을 도입해 젠더 훈련을 실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요.”

우리가 땀 흘리는 일의 울타리가 일반 조직이 됐든 사회적 기업이 됐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사람을 잘 이해하며 존중해나가는 일이 될 것이다.

“리더십 자체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입니다. 감정을 잘 읽고 관리해야 하는 일이죠. 때문에 조직에서 여성적 가치를 통합하고 여성과 남성이 서로 다른 관점에 대해 경청하고 이해해줄 때 보다 일하기 좋은 공동체가 활짝 열리게 되는 셈이죠.”

최문희 기자  moon@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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