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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인 권력 위한 ‘감시 역할’과 함께 한 20년<인터뷰 현장>
이승희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경제개혁연대 사무국장
재벌개혁 대안책 ‘소액주주운동’ 등 다양한 개혁활동 전개
최문희 기자 | 승인 2014.09.29 16:34

   
 
[여성소비자신문=최문희 기자]시민의 입장에서 갖가지 사회 모순을 지적하고, 대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온 참여연대가 올해 20살이 되었다. 1994년 300명의 시민으로 시작했던 참여연대는 지난달 말 기준 총 1만4505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이에 <여성소비자신문>은 ‘시민의 마음을 담는 그릇’으로 개혁의 제도화와 다양한 시민행동 영역을 개진해 온 참여연대의 창립 멤버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 위치한 경제개혁연대 사무실에서 마주한 이승희 협동사무처장은 참여연대 출범 당시부터 현재까지 그 맥을 함께 지켜 온 인물이다. 

“참여연대는 크게 세 그룹이 모여 만들어졌어요. 우선 진보적 학자 그룹과 변호사 그룹, 세 번째로 학생운동을 하다 사회운동에 전업으로 뛰어 들고자 했던 청년 학생운동 그룹이 한데 모여 결성하게 됐지요.”

전국연합 등이 해체된 후 민주화 운동 기반을 어떻게 이어 나갈까에 대한 고민과 함께 참여연대의 첫 문이 열렸다. 참여연대는 과거 민주화 단체들이 해나갔던 운동과는 또 다른 방식을 많이 도입했다. 변호사 그룹과 진보적 학자 그룹이 만나면서 사회 복지 쪽으로도 활동 반경을 넓혀갔다. 

특히 참여연대의 핵심 업무는 권력 감시에 있다. 초창기 의정감시센터와 사법감시센터로 시작된 감시활동은 1996년 맑은사회만들기본부로 이어졌다. 1998년에 들어서는 정보공개사업단이 만들어지면서 행정 전반에까지 영역이 넓어졌다.

시민의 이해 대변하는 ‘카운터파트너’

“정부와 정당과의 관계에서의 참여연대 역할은 권력의 감시자이자 시민의 이해를 대변하는 카운터파트너이다.” 이승희 협동사무처장은 참여연대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과제를 모색하는 심포지엄에서 참여연대의 역할에 관해 위와 같이 언급한 바 있다. 그렇다면 그의 말에 앞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위해 마련해야 하는 사회적 장치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승희 협동사무처장은 우선 제도적으로 시민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유로운 목소리의 장이 시급하다고 내다봤다. 

“집회를 연다고 하면 차로 가로막는 경우, 인터넷상에 특정 발언을 언급하면 모욕죄로 기소하는 경우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지요. 시민들의 자유나 생각을 위축시키지 않고 제도적으로 보장해 줄 수 있는 문화가 급선무에요. 극단적으로 상대방을 비판하고 인정해주지 않으려 드는 인식도 개선돼야 하고요. 냉전 논리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진보든 보수든 양쪽 다 무시하는 문화는 유효하지 않죠. 자유로운 토론 문화가 뒷받침돼야 시민사회도 활성화될 수 있어요.”

그는 참여연대가 공공의 이익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강화하기 앞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가지 예를 들어, 전 국민의 이슈인 세금문제만 하더라도 개개인마다 이해관계가 다 달라요. 부자들이 더 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고 일률적으로 똑같이 내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인 셈인데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중요해요. 기업의 근로자면서도 단체 회원인 다양한 조직 단체들이 사회적 이슈를 논의하고 합의하는 기구가 필요해요. 대표성을 가진 집단을 구성해 거기서 결정까진 아니더라도, 정부 정책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기구를 많이 만들어야 하지요.”

재벌개혁 대안책 '소액주주운동' 등 다양한 개혁활동 전개

이승희 처장은 현재 참여연대와 함께 경제개혁연대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경개연은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에서 출발해 2006년 독립 분리돼 출발선을 그었다. 당시 가장 큰 이슈가 됐던 소액주주활동에 대해 이승희 처장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국내에 사례가 없던 터라 법에 적혀 있어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일이 알아봐야 했던 시절이었어요. 외국 사례를 하나하나 뒤져보면서 소송을 준비해야 했죠. 삼성전자만 해도 장정 13시간 30분에 걸쳐 마라톤 주총이 진행됐어요.”

국내에서 주주대표소송으로 처음 제기돼 승소한 ‘제일은행 주주대표소송’ 역시 큰 이슈였다. 참여연대가 전신인 경개연은 1998년 7월 400억 반환 판결(1심)을 이끌어내 소액주주운동에 따른 성과를 거뒀다.

소액주주들의 의결권을 위임받아 주주총회에 참가해 재벌기업들의 부실경영과 내부거래를 질타하거나 장부열람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법에 보장된 소액주주권을 이용한 기업감시활동을 본격화하면서 삼성일가의 변칙증여, 현대전자의 주가조작 등을 지적해내 재벌개혁운동의 뜻 깊은 성과를 보였다.

물론 외부에 따른 압박도 따랐다. 삼성에 대한 소액주주활동을 진행할 때는 항의하는 일반 시민의 전화도 빈번했다. “너네 삼성 망하게 하려고 하냐” 라며 걸려오는 전화는 어린 나이의 그 역시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경험을 겪게 했다. 직접적인 압력 이외 삼성소액주주활동에 대해 전경련 산하에 있는 자유기업원에서는 이를 비판하는 보고서나 칼럼이 쓰여지기도 했다.

사실 그가 이 길에 들어서게 된 까닭은 시대적인 상황이 그를 호출했기 때문이다. 사회운동에 진입하게 된 특별한 계기를 질문하자 그는 “자연스레 이 일을 하게 됐다”고 짧고 굵은 대답을 내놓았다. 환경·여성 운동 등 다양한 사회운동 붐이 일어나던 90년대부터 경제분야에 특화된 경실련이 생겨났고 이승희 협동사무처장도 특화된 분야의 사회운동에 몸을 담아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왔다.

95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노동 인권 단체에서 6개월 동안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시민활동이 발전한 미국을 경험해보자는 취지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답했다.

“당시 미국은 비영리단체에 대한 소득공제가 활성화됐어요. 시민사회를 지원하는 시스템이 자리잡혀 있었죠. 시민들이 기부도 많이 했고 세금 혜택에 따른 정부의 지원책도 존재했어요. 국내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죠. 집회문화 또한 자유로웠어요. 90년대 초반만 해도 이 땅에서 집회를 하면 최루탄이 여전히 남아있었죠.” 

으레 시민운동을 하는 이들에게 단골메뉴처럼 따르는 질문이 있다. 사회개혁운동에 따르는 고초에 대해 조심스레 묻자 그는 강직한 어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선택한 길이잖아요. 어느 직장이든 힘든 부분이 있는 것처럼, 분야가 서로 다를 뿐 제가 있는 분야에서 책임을 다할 뿐입니다.”

최문희 기자  moon@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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