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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의 불모지대에 평화의 나무를 심은 사람최영애 <여성인권을 지원하는 사람들> 대표 인터뷰
남북한 여성 잇는 '허브' 역할 서울시여성상 대상 수상
여성운동 보금자리 다지려면 "여성 공동체의 응집력 중요"
최문희 기자 | 승인 2014.07.29 17:03
   
 

[여성소비자신문=최문희 기자]최근 여성 상위시대라는 목소리가 두터워지고 있다. 하지만 여성의 지위를 여성정치인과 각료 등 사회를 움직이는 영향력 있는 수치로 따져보면, 우리나라는 136개국 중 고작 111위에 머물고 있다.

“법과 제도는 마련돼 있지만 실질적인 주도권은 획득치 못한 단계예요. 우리나라 여성이 주도적인 삶을 사는가에 대한 사회적 고민은 아직 갈 길이 먼 셈이죠.”

올해 서울시 여성상 대상을 수상한 최영애 ‘여성인권을 지원하는 사람들’ 대표는 NGO와 GO의 영역을 자유자재로 횡단해 온, 그야말로 국내 여성 대중운동의 초석을 일궈낸 인물.

한국 최초로 성폭력상담소를 개소한 데 이어 여인지사를 이끌고 있는 그는 탈북여성의 생활권에 대한 길잡이 역할과 평화적 모델을 제시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남한사회에 거주하는 북한이탈주민의 수는 3만명에 달한다. 그 중 70~80%가 여성이다. 그러나 남한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꾸려갈 수 있다는 희망과 달리, 국내에 정착한 탈북 여성들의 삶은 고단한 경우가 허다하다.

중국과 제 3세계를 거치면서 인신매매와 성매매 등 많은 고초를 겪은 데다 국내에 정착한다 치더라도 아이를 홀로 키워야 하는 등 갖가지 고난에 부딪히기 일쑤기 때문이다.

이에 북한이탈 여성들에게 ‘여성의 눈’으로 힘을 보태고, 남북여성들 사이의 다름과 같음에 대한 소통의 장을 열어 평화의 모델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바로 ‘여성인권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들이다.

최 대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관계지향적인 삶을 살아가는 여성의 강점을 살려 평화로 나아가는 지름길을 모색하는 데 소중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남북한 여성 연대와 역량 다지기

최 대표에 따르면, 여인지사는 크게 세 가지 역할에 주력하고 있다. 첫 번째로 북한이탈주민 지원기관들과 여성인권단체들 간의 유기적 네크워크 형성에 앞장선다.

지난 2012년부터 2013년에 이르기까지 여성가족부와 공동협력 사업으로 ‘여성폭력 예방교육 매뉴얼’을 제작했고, 이듬해에는 전국 7개 지역 하나센터와 탈북자 지원 단체들과 반여성폭력상담기관 실무자들 간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사업을 진행해 성과를 거뒀다.

북한이탈여성을 위한 가이드북도 활발하게 발간했다. 탈북여성들을 위한 ‘여성인권 지침서’를 펼쳐보면, 탈북여성들이 알아야 할 네 가지 여성폭력(가정폭력·성폭력·성희롱·성매매)에 대한 대처방법과 예방 매뉴얼이 상세하게 서술돼 있다.

‘새터민 여성을 위한 가이드북’ 역시 탈북여성들이 남한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일·성과 연애 등 여섯 가지 챕터에 나눠 생활 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최근에는 북한이탈여성들을 위한 성폭력예방 영상물도 제작 중이다.

여인지사는 북한이탈여성의 역량강화를 위한 ‘남북여성연대’의 틀을 창출해내는 데에도 총력을 기울인다. 남북여성들의 소통과 내면의 힘을 기르기 위한 ‘여성, 힐링, 평화역랑 강화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평화옹호자로서의 역량 역시 부단히 길러내고 있다.

오감으로 소통하는 화합의 장

최 대표는 워크샵 초기, 탈북 여성들이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단체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 그들을 자문위원으로 섭외했다.

이후 각계 각층에서 리더 역할을 하는 탈북여성 10명과 남한 여성전문가 대표 10명을 엮어 총 20명이 제주도로 이박삼일간의 워크숍을 떠났다. 당시  ‘선녀와 나무꾼’ ‘해와 달’이라는 형식으로 서로 짝을 지어 자리를 앉는 방법으로 프로그램이 기획됐다.

때문에 이들은 서로 ‘짝꿍’이 됐고 잠자리도 함께 하고 춤과 노래를 연습하는 등 남북한여성들이 최초로 진솔한 관계맺음의 고리가 형성됐다.

이 때 출발한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져 남북여성합장단인 ‘여울림’이 2011년 창단되는 성과를 누렸다.

“세월이 지난 지금에는 언니나 동생, 친구 사이로 발전했지요. 또 여울림과 취지가 비슷한 ‘남북대학생 청년 합창대회’에 우리가 찬조 출연을 하면 그들이 우리 공연에 찾아와 합창을 하지요.” 최 대표의 말처럼 여울림은 폭 넓은 오감의 소통으로 현재까지 끈끈한 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성폭력 상담소에서의 10년

이처럼 남북한 여성들의 다리를 놓는 ‘허브’ 역할을 자처해 온 최 대표의 여성 운동의 행보를 살펴보면, 10년 동안 성폭력 상담소 상담소장으로 종횡무진해온 부분이 눈에 선하게 들어온다.

“미국에서 여성학을 공부한 이후 셋째 아이를 데리고 한국으로 귀환했어요. 1985년 9월, 여성학과가 있는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가장 은폐된 여성 문제를 끄집어 낼 수 있는 ‘여성 대중 운동’에 관한 고민에 봉착했지요.”

최 대표는 당시 여성노동운동이 팽배했던 사회적 분위기에 관련해 이것이 대중적 운동으로는 뻗어나가지 못하고 있던 현실에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고민을 거듭했다.

이에 1991년, 성폭력 상담소를 개소했고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김보은­김진관 사건, 군대 내 성추행 문제를 처음으로 수면 위에 떠올리게 했던 이중위 사건 등을 사회적 문제로 줄줄이 터트렸다.이 사건들을 계기로 하여금 대한민국 최초로 성폭력특별법이 마련되는 단초가 마련됐다.

최 대표는 여성이 아무리 호소를 해도 승소할 수 없는 법적 구조를 개선키 위해 인권위에선 사무총장을 맡아 사회 제도를 바꾸도록 권고하는 일을 해나갔다.

그는 실질적인 법적 제도를 발전시킬 수 있는 작동원리를 익혔고, 인권이 취약한 여성들을 구조하기 위해선 법적 제도를 개진할 수 있는 각 영역 여성들의 ‘파워’가 절실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적 소수자들의 목소리 ‘볼륨’을 높이려면, 그들을 응집하는 공동체를 길러내는 훈련 작업이 무척 중요해요. 공동체의 목소리가 커져야 정치권이든, 기업이든 여성들이 유리천장을 돌파할 수 있는 단단한 사다리가 세워지죠.”

이처럼 여성 인권의 불모지대에서 평화의 새싹을 심기 위해 달려온 그의 바람대로 낮은 곳에 처한 소중한 생명들을 구제하는 새싹이 잎을 틔워 이 사회가 좀 더 살만해지기를 기원해본다.

최문희 기자  moon@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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