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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단체연합 정문자 대표 “성평등은 곧 사람에 대한 존중이에요”
최연화 기자 | 승인 2014.07.29 15:07

   
▲ 한국여성단체연합 정문자 대표
[여성소비자신문=최연화 기자] 절망에 가까웠다. 공장에 위장취업해서 본 여성 노동자들의 삶은 전혀 ‘인간답지’ 않았다. 1980년도 동일방직노동조합에 몸담고 있는 한 선배는 집회에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해 똥물세례까지 받아가며 처절하게 싸웠다”고. ‘왜 여성노동자는 인간답게 살 수 없는 걸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수십 년 세월을 노동현장에서 보냈다. 억압의 주체와 방식이 바뀐 것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30년 전 그녀는 인생을 걸었다.

‘정의는 승리한다’는 명쾌한 단문이 생략한 수많은 조건절들, 이들의 숱한 사연들이 거기 있었다. 1983년 전두환 정권 퇴진 시위를 벌이다 옥고를 치른 여성정치연합 정문자(53) 대표는 평탄치 않은 여성 노동운동가의 삶을 살아왔다. 자신의 삶에 대해 그녀는 “반평생이나 해서 숙명처럼 하게 됐다”며 지긋이 웃어보였다.

‘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1970년대 여성 노동은 계급에 대한 억압과 착취, 민주적 노동운동의 탄압, 남녀 노동자에 대한 차별 그 자체였다. 암흑했던 시절, 정 대표는 여성의 굴레를 끊어내고 온갖 설움과 치욕을 견뎌내며 여성노동의 권리를 외쳤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차별이 있다는 건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으니까. 이것이 노동운동을 시작하게 된 까닭이다. 

“스무 살 어린 나이에 학생운동을 경험하고 현장의 여성노동자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했죠. ‘다 같은 사람인데 왜, 누구는 잘살고 못 사나’ ‘왜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나’ ‘왜 노동조합에 있다고 쫓겨나나’ 20대엔 이런 질문들의 연속이었어요.”

정 대표는 대학시절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면서 여성에 대한 사회의 높은 벽을 적나라하게 목격했다. 공장에 위장 취업해 여공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에 분노했고, 여성에 대한 차별적 대우에 환멸을 느꼈다.
 
그러던 중 마침 아는 선배의 제안으로 인천여성노동자회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 그렇게 시작한 노동운동이 벌써 수십 년의 세월이다. 지역운동과 중앙운동의 간극을 단시간에 좁혔다는 여성계의 평가는 그의 치열했던 삶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그리고 올해 1월 정 대표는 여성정치연합 공동대표로 선출되며 노동운동과 여성운동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됐다. ‘성평등 사회’란 삶의 주제를 따라가다 보니 노동운동에서 여성운동으로 확대됐지만, 과거의 궤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노동에서 여성으로 운동의 범위는 확대됐지만, 결국 더 많은 여성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 일인 것 같아요. 여성운동은 뜻을 지지, 옹호해줄 수 있는 세력을 확장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지금은 그 기초를 다지는 중이죠.”

정 대표는 회원들과의 교류를 확대하고 다양하진 여성 역할에 대한 담론을 더욱 넓히겠다는 계획이다.

 최저임금이 임금 상한선이 되는 현실

시민운동은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 줄기차게 요구하고 투쟁해야 하는 업이다. 여성으로서 차별을 견디며 투쟁해온 그는 지금의 노동현실을 어떻게 평가할까.
 
“그전보다는 법과 제도가 제대로 갖춰졌죠. 그 당시엔 4대보험, 출산휴가, 육아휴직이 없었거든요. 99% 운동의 성과라고 봐요. 법제도가 바뀌면서 조금이라도 여성, 여성노동자들의 삶이 변화했다는 것에 대해 아주 큰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웃음)”
 
끝끝내 외면할 수 없는 마음,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진진한 바람이 만나 일궈낸 변화다. 고통을 감내하며 싸워온 노동운동가들의 끈질긴 투지와 중단 없는 싸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여성을 위한 법과 제도가 있음에도 여성노동자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정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발표한 국정 과제에 대해 비정규직 대책, 일자리 대책, 민생 대책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놓인 여성 노동자 문제는 가시화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성 노동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양극화된 노동시장 문제해결과 새로운 경제, 새로운 사회체제 모색은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때문에 그는 여성 비정규직 문제 해결, 경력단절 예방, 성별 임금 격차 해소 등의 ‘성평등’ 정책이 국정과제의 핵심 가치로 세워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용의 유연함이란 이름으로 비정규직이 생기면서 간접고용, 시간제 등 일자리가 더 많이 쪼개졌죠. 그러다 보니 여성들은 일을 해도 소득이 그대로에요. 소득불평등, 성별임금격차가 완전히 발생한 거죠.”

특히 2015년 최저임금 시급을 5580원으로 의결한 데 대해 그는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 확보가 되지 못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넉넉히 잘 살고자 하는 게 아니라 최소한의 생활을 위해서는 최저임금이 6700원은 정도는 돼야한다는 겁니다. 따져보면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임금은 정규직 남성노동자 임금의 35.4%에 불과한 113만원을 받아요. 성차별과 고용차별이라는 중첩에 시달리고 있는 게 현실이죠.”
 
그는 최저임금을 현실적인 ‘생활임금’ 수준으로 올려 일한 만큼의 생계를 보장하는 것. 그리고 비정규직과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를 여성노동에서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선 다시 현장의 힘을 모으는 것, ‘운동’이 기반이 돼야 할 것이다.
 
성평등을 향한 공존의 가치

정 대표는 주어진 3년의 임기 동안 꼭 이루고 싶은 일들을 몇 가지 꼽았다. 그중 하나가 ‘여성혐오현상’에 대한 해결이다.
 
“온라인상에서 김치녀, 된장녀 등 ‘녀녀녀’를 붙이며 여성을 비하하는 욕설과 혐오가 심각한 수준이에요. 그들의 타깃은 여성단체와 여성가족부죠. 어렵지만 반드시 해결해야 할 사회현상이라고 봐요.”

그는 여성혐오현상이 우리 사회 전반에 깔린 젊은 남성들의 불안감이 크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이윤 중심, 무한경쟁 중심의 신자유주의의 질서는 이제 사회 내 남성들조차 끊임없이 경쟁하지 않으면 기존의 권위와 사회적 위치를 유지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성평등은 ‘사람에 대한 존중’이라고 생각해요. 어느 특정그룹이 특정그룹을 혐오하고 시기하는 것은 존중의 반대잖아요. 남성들이 가졌던 기득권을 여성에게 뺏겼다고 생각하는 거죠. 임병장 총기난사사건도 결국 그룹 내 고립이 됐거나 존중을 받지 못해서 심화형태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요.”
 
정 대표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찾아가는 과정에서 빚어진 현상에 대해 대립각을 세울 것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해주는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무한경쟁 시대에 많이 가진 자와 기득권을 가진 자, 강자는 약자에게 쉽게 자신의 것을 내놓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새로운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야말로 신념대로 살아온 삶이었다.

앞으로 여성운동가로서의 삶, 그리고 10년 뒤를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역사가 알아줄 거예요.”
 
 

 

여성혐오현상, 사회 전반에 깔린 남성 불안감 크다는 방증
노동법‧제도 늘었지만 정부 정책 속 여성 노동자는 없어


최연화 기자  choi@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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