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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시 읽기]정현종 '간단한 부탁'구명숙의 행복한 시 읽기
구명숙 숙명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1.06.27 21:29

[여성소비자신문]간단한 부탁

     정현종

지구의 한 쪽에서

그에 대한 어떤 수식어도 미사일로 즉시 파괴되고
그 어떤 형용사도 즉시 피투성이가 되며
그 어떤 동사도 즉시 참혹하게 정지하는
전쟁을 하고 있을 때,

저녁 먹고
빈들빈들
남녀 두 사람이
동네 상가 꽃집 진열장을

들여다보고 있는
풍경의 감동이여!

전쟁을 계획하고
비극을 연출하는 사람들이여
저 사람들의 빈들거리는 산보를
방해하지 말아다오

저 저녁 산보가
내일도 모레도 계속되도록
내버려둬 다오
꽃집의 유리창을 깨지 말아다오

6월에 불어온 피바람의 고통은 왜 잦아들지 않는가. 그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흔적은 왜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가. 지상의 어느 한 쪽에서는 “그 어떤 동사도 즉시 참혹하게 정지하는” 끊임없이 죽임을 자행하는 전쟁이 터지고 있다. 그리고 정치가들은 평화를 위해 노력하자고 소리 높여 외친다.

71년 전 6월, 조국은 피바다로 뒤엉킨 산하에서 울고 울었다. 젊음을 조국에 바친 호국영령들 앞에 오늘도 부끄러운 말없음표들이 쌓인다. 평화를 위해 흘린 임들의 붉은 피 속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다.

어쩌다 헤어진 사랑하는 부모 형제와 연인과 친구들의 생사조차 아지 못하는 숨 막히는 70여년 세월이 아직도 철조망을 넘지 못하고 있다. 피맺힌 한, 그리움은 돌이 되어 우거진 풀꽃들을 지키고 서서 발길을 기다린다. 이데올로기의 질긴 얼룩들아, 총부리를 놓아라. 그것이 무엇이관데 휴전선이 있는가. 조국의 강물은 유유히 흐른다.

“저녁 먹고/ 빈들빈들/남녀 두 사람이/ 동네 상가 꽃집 진열장을/들여다보고 있는...// 저 저녁 산보가 /내일도 모레도 계속되도록/내버려둬 다오/꽃집의 유리창을 깨지 말아다오”
정현종 시인의 정말 ‘간단한 부탁’이다.


구명숙 숙명여대 명예교수  k9350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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