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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이산가족 소재 가요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왕성상의 그 노래 그 사연
왕성상 언론인/가수 | 승인 2021.06.08 14:43

[여성소비자신문]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얌전한 몸매에 빛나는 눈
고운 마음씨는 달덩이 같이
이 세상 끝까지 가겠노라고
나하고 강가에서 맹세를 하던
이 여인을 누가 모르시나요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넘치는 정열에 붉은 입술
한 번 작정하면 변함이 없고
꿈 따라 님 따라 가겠노라고
내 품에 안기어서 맹세를 하던
이 여인을 누가 모르시나요

KBS 라디오연속극 주제가로 1964년 곽순옥 처음 취입 히트
‘남북이산가족 찾기’ 방송 때 유명…악극, 소설, 뮤지컬로도 제작

박춘석 작곡, 한운사 작사, 곽순옥(郭順玉, 1932년 3월 20일~)이 불러 히트한 대중가요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는 해마다 6월이면 자주 듣는다. 4분의 4박자 슬로우곡으로 남북이산가족을 소재로 한 노래다. 노랫말처럼 이산가족의 애타는 마음과 절절한 그리움은 세월의 흐름과 상관없이 예전 그대로다.

패티김, 문주란 등 리메이크 취입

저음가수 곽순옥의 노래는 1964년 방송드라마주제가로 처음 소개됐다. 그해 KBS 제1라디오연속극 ‘남과 북’(20분짜리 28부작, 홍두표 연출) 주제가로 청취자들 심금을 울렸다. 애절한 목소리가 전쟁으로 흩어진 피붙이를 찾아 헤매는 이산가족들 애간장을 녹였다. 정열적이면서도 서글픈 목소리가 대중들을 끌어들였다.

이 노래는 1965년 1월 개봉된 6·25전쟁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남과 북’(감독 김기덕) 주제가로도 쓰였다. “전쟁은 명작을 낳는다”는 말이 있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가사 첫 구절이 제목이 된 이 노래는 이런 작품들 속에서 거듭나 히트했다. 노래를 취입한 곽순옥은 영화와 함께 유명가수로 떴다. 패티김, 문주란, 장사익, 이수미, 조항조 등 여러 가수들도 이 노래를 리메이크해 불러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사랑받고 있다. 1972년엔 최상현 연출의 13부작 TV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는 1983년 6월 30일 시작된 KBS 남북이산가족 찾기 특별생방송을 계기로 본격 알려졌다. 그때 리메이크한 패티김 노래가 전국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프로그램 배경음악으로 연일 전파를 타면서다. 방송 내내 울려 퍼지며 국민가요로 부활했다. 상봉장면을 보지 않고 시그널음악만 듣고도 가슴이 찡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해 곽순옥은 미국에서 잠시 귀국,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특별방송 초대가수로 이 노래를 불러 눈길을 모았다.

KBS는 ‘이산가족 찾기’프로그램을 6·25특집으로 몇 시간만 방송하려 했다. 그러나 이산가족들 소식이 알려지고 사람을 찾는 이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자 정규방송까지 멈추고 석 달간 생방송한 기록을 남겼다. 우리나라 방송사상 처음 기네스북에까지 올랐다.

이 노래는 1992년 MBC에서 2부작 TV드라마(연출 고석만 PD)로도 만들어졌다. 1996년엔 KBS가 다시 라디오드라마로 리메이크했다. 전문가들은 “한 작품에 대한 이런 ‘수많은 리메이크기록’을 깨긴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노래, 영화, 드라마가 크게 성공하자 1992년 6월초 같은 제목의 소설(행림출판사, 260쪽)까지 나왔다. 노랫말을 쓴 한운사 선생 작품으로 6·25전쟁이 빚어낸 우리 민족의 분단현실을 그렸다. 1996년엔 같은 내용으로 뮤지컬 ‘남과 북 DNZ’이 공연됐다. 영화의 원작인 라디오연속극 ‘남과 북’은 청취자들 요청으로 다시 만들어져 1997년 9월 KBS 제2라디오를 통해 방송되기도 했다.

영화 ‘남과 북’, 전쟁보다 사람에 초점

노래는 악극으로도 소개됐다. 2006년 7월 14일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두 차례 열린 공연은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란 주제가를 포함, 1960~70년대 인기를 모은 20여곡의 노래가 곁들여졌다. 중·장년에겐 향수를, 어린이들에겐 새로움을 줬다.

영화 ‘남과 북’은 얘깃거리가 많은 작품이다. 6․25전쟁으로 남과 북에 두 남편을 두게 된 한 여인의 고뇌와 두 남편이 한 자리에서 벌이는 숨 막히는 상황이 흥미롭다. 감독은 카메라초점을 전쟁보다 사람에 맞춰 분단의 비극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 반공이데올로기와 액션을 강조한 다른 전쟁영화와는 결이 다르다.

전쟁 직후 북한인민군 소좌인 주인공(신영균)은 6․25전쟁 때 남쪽으로 간 아내(엄앵란)를 만나기 위해 휴전선을 넘어 귀순한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묘하게도 그를 담당한 중대장(최무룡)의 아내가 돼있었다. 게다가 그의 아들까지도 자신을 키워준 사람이 친아버지인줄 알고 잘 자라고 있었다. 세 사람은 깊은 고민에 빠진다.

한 여자와 두 남자란 설정을 뼈대로 하지만 그때 우리나라에서 많이 다뤘던 삼각관계 영화는 아니다. 세 남녀를 통해 ‘전쟁이 얼마나 사람의 운명을 바꾸고 뒤틀리게 했는가?’ 하는 메시지를 준다. 한운사 선생의 뛰어난 각본을 바탕으로 작곡가 박춘석이 음악을 맡아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는 평가다.

영화는 흥행에 성공, 여러 상을 휩쓸었다. 제12회 아시아영화제 비극상, 제3회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과 시나리오상, 제1회 백마영화제 시나리오상, 대일영화제 작품상, 제27회 베니스국제영화제와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에서 좋은 평을 받았다.

영화가 나오고부터 19년 뒤인 1984년 김기덕 감독은 한운사가 손질한 새 각본으로 ‘남과 북’을 다시 만들었다. KBS ‘이산가족 찾기’가 엄청난 반향을 몰고 온데 힘입었다. 새 영화 ‘남과 북’은 110분짜리로 원미경이 주연을 맡았고 윤양하, 김만, 장정국, 유영국, 박암 등이 열연했다. 드라마장르로 1984년 10월 26일 개봉됐다.  

노랫말 쓴 한운사, 방송시나리오작가로 유명

이 노래 원창자 곽순옥은 가수 겸 작사가이자 뮤지컬배우다. 1937년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 숭의여자고등보통학교를 중퇴했다. 그는 1951년 미8군 언더그라운드 라이브클럽에서 가수로 데뷔했다. 김광수 악단과 함께 팝송, 번안곡들을 주로 불렀다.

그 무렵 인기가수였던 박단마의 그랜드쇼단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다. 1958년 서울시민회관에서 열린 ‘세계의 휴일’ 무대를 계기로 ‘슬픔도 세월이 가면’, ‘비창’ 등 대중가요를 불렀다. 육감적인 몸매, 힘차고 세련된 고음, 섬세한 감정처리로 인기였다.

1965년 영화 ‘남과 북’이 나오던 즈음 홍콩으로 떠나 나이트클럽(코리아가든)을 운영하기도 했다. 1968년엔 싱가포르로 가서 살다 1970년 미국에 자리 잡았다.

노랫말을 쓴 한운사 선생은 충북 괴산군 청안면 태생으로 ‘빨간 마후라’, ‘현해탄은 알고 있다’ 등 방송시나리오작가로 유명하다. 서울대 불문과를 중퇴하고 방송국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한 인연으로 작가생활을 했다. 1948년 봄 입사 사흘 만에 사표를 냈으나 편성과장(송영호) 만류로 주저앉아 작가가 된 일화가 있다.

입사 초기엔 매주 방송되는 ‘어찌하오리까?’, ‘우리 살림’ 등 인생상담프로그램을 집필해 호응을 받았다. 6․25전쟁 땐 방송국 일을 쉬고 다른 분야에서 일하다 국군이 서울을 되찾은 뒤 한국일보 문화부장으로 일했다.

박춘석(본명 박의병) 작곡가는 1930년 5월 8일 서울에서 2남2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1949년 서울대 음대 기악과(피아노 전공)에 입학했으나 1학년 때 중퇴, 신흥대(현재 경희대) 영어영문학과에 편입학해 졸업했다.

경기중 4학년(고교 1년) 때 베니김과 길옥윤의 제의로 서울 명동 나이트클럽 ‘황금클럽’ 무대에 서면서 연주생활을 시작했다. 이어 1954년 ‘황혼의 엘레지’(노래 백일희)로 작곡가가 됐다. 자신의 곡에 직접 가사를 써 작사가로도 이름을 올렸다. 1950~1990년대 대중가요계에서 활동하며 2700여 곡을 작곡했다.

‘비 내리는 호남선’, ‘마포종점’, ‘섬마을 선생님’, ‘가슴 아프게’ 등 수많은 히트곡을 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개인최다인 1152곡이 등록돼 있다. ‘가요계 큰 별’, ‘대중가요 거목’으로 불렸던 그는 뇌졸중으로 16년간 투병하다 2010년 3월 14일 서울 둔촌동 집에서 눈을 감았다.

 

왕성상 언론인/가수  wss4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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