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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계 원로 이연숙 전 장관 “여성들의 진취적인 주인의식 필요해”
한고은 기자 | 승인 2021.05.18 23:35

[여성소비자신문 한고은 기자] 1997년 김영삼 정부에서 지금의 여성부장관인 정무제2장관을 지낸 이연숙 전 장관에 대한 수식어는 다양하다. 이화여대를 졸업한 엘리트, 교사 겸 방송인, 홍일점 국방위원, 여성운동계 원로. 다양한 발자취 이력을 갖고 있는 이 전 장관은 다방면으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어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현재도 지역사회에 교육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여성계와 정치계에 고견을 아끼지 않는 원로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늘 전면에 나서며 호전적인 활동을 지속해온 이 전 장관은 “남성들을 탓하기보다는 경제도 정치도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직접 참여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누구보다도 직접 몸으로 맞서며 투쟁의 길을 걸어온 이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래야만 변화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남성에게 양보를 하거나, 대표 자리에 나서지 않고 서포트하는 것이 여성답다는 의식을 스스로 벗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부당한 것 받아들이지 않는 진취적인 태도 중요"

이 전 장관은 1935년 강원도 화천군에서 태어났다. 이화여대 교육학과를 졸업했으며 다양한 NGO활동을 실시했다. 1968년에는 미국 공보원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이때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소비자담당관과 만나게 되면서 소비자운동을 전개하게 됐고 영어교사로, 라디오방송 ‘재치문답’의 패널과 TBC동양방송의 사회자로 더욱 활동을 확장하기에 이른다. 타고난 말솜씨와 다양한 경험이 만들어낸 풍부한 재료 때문일 것이다.

“여러 활동을 통해 여성계에도 제 이름이 알려졌어요.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여성운동을 시작했죠. 이후 회장 자리에 까지 오르고, 저의 이력을 유심히 본 청와대로부터 여성부장관 제의를 받아 이를 수락하게 되면서 정치활동도 시작했죠. 2000년에는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이 전 장관은 자신의 청년 시절을 떠올려본다. 결혼을 한 여성은 직장은 그만두는 게 당연한 문화였다고 회상한다. 은행원이나 전화교환원의 경우 여성정년제를 실시해 30세가 되지 않은 여성들을 당연히 퇴직하도록 했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결혼을 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내가 보기에 정말 큰 문제는, 이를 여성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인 점이었습니다. 그게 정말 안타까운 점이었죠. 계속해서 여성들이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도 이것이고, 리더십을 강화하는 여성교육이 필요한 이유 역시 이 때문이지요.”

여성을 포함한 모든 이들이 함께 행복하기 위해서 개선되어야 할 점은 많지만, 여성계 원로의 이 여성들을 향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따끔한 직언이나 주장이 이미 지나간 ‘옛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듣다보면, 2021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여성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새삼스럽지만 남다른 의미가 될 수 있다.

“저는 원래도 교육자였고 최근에도 교육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지역사회에서 교육 활동을 실시하고 있어요. 구체적으로는 지역사회교육운동이죠. 학교를 중심으로 아이들에게 놀이터를 제공하고, 중고등학교나 대학생 지도자들이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서 운동장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활동입니다. 여기에는 여성 및 학부모들에 대한 교육도 포함돼요.”

지자체 주민자치위 단위에서 강의를 진행하거나 교육운동도 함께 실시 중이다. 주민자치위원회라는 작은 사회집단에서부터 여성들이 직접적으로, 그리고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다. 크고 작은 여러 집단과 단체의 활동을 이 전 장관이 오래 지켜보며 든 생각은, 여성들은 여성들끼리 뭉치는 걸 두려워하거나 기피한다는 것이다.

“소비자운동이 우리나라에서 크게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러한 측면이에요. 소비자로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여성들인데, 남성이 포함된 집단이 더 대표성을 띈다는 생각에 여성들이 주를 이루는 집단에는 큰 힘을 싣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어쩌면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소비자단체의 활동인원들은 중장년 이상의 기혼 여성들에 집중돼 있다. 조금 더 다양한 연령층, 다양한 소비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여성들이 소비자로서의 정체성에 힘을 싣고 여러 욕구를 실현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이 전 장관의 생각이다.

“여협, 야당 역할에 충실해야”

이 전 장관이 이렇게 여성들의 참여와 주인의식을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자신의 경험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청년시절, NGO 활동과 시민운동에 활발히 참여하면서 이 전 장관은 자연스럽게 여성단체에도 어울리게 됐다. 그 가운데 전문관리직 여성클럽(ZONTA) 회장을 맡게 됐고, 단체가 한국여성단체협의회(이하 여협) 회원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여성단체협의회 이사가 됐다. 그러면서 본격적인 여성운동을 시작하게 됐다.

“여협 회장을 하면서 집중한 일은 바로 단체 모금활동 전개였습니다. 미국의 수많은 NGO들은 바로 이 모금운동을 기반으로 활동을 해요. 모금을 함으로써 회원들이 소속단체에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죠. 단체가 자생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은 물론이고요.”

여협과의 인연은 현재도 이어져 오고 있다. 이 전 장관은 앞으로의 여협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여기서도 계속해서 강조하는 교육의 힘이 나온다.

“임원들의 교육이 중요합니다. 조직을 운영하고 효율적으로 활동하기 위한 맞춤 교육이요. 전문성 없이 어영부영해선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정부를 귀찮게 해야 합니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무서워하는 게 국민들의 목소리에요. 인구 절반인 여성의 목소리를 갖고 있는 여협이 특정 사건이나 이슈를 놓치지 않고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여협은 하나의 야당 역할을 하는 기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돼요.”

정부와의 원만한 관계 형성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조금 더 견제하고, 독립된 힘을 발휘해서 여성들의 목소리와 권리를 당당하게 쟁취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 전 장관은 직접 정부에 몸 담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처럼 각 기구가 독립된 채로 견제한 채 건강하게 성장하길 바라고 있다.

“97년도에 정무제2장관직을 수락했어요. 청와대에서 처음 요청이 왔을 때는 거절을 했어요. 정치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말씀을 전하러 온 청와대 사람이 어찌나 간곡히 부탁을 했는지, 결국 그 호소를 못 이기고 수락했어요. 시작한 계기는 온정에 가까운 감정 때문이었지만 실상 직접 해보니 여성운동에 정치는 매우 필요한 부분이란 걸 다시금 깨달았지요.”

새롭게 생긴 정무제2장관직은 먼저 방향성을 수립하는 일이 필요했다. 직원들도 이 전 장관도 처음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세미나를 통해서 중요한 이슈와 아젠다를 설정하고 해결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면서 열심히 살림을 꾸렸다. 그러면서 전문성 역시 획득됐고, 모두의 주인의식 역시 강화됐다.

“국무회의에 들어가면 여성은 나 혼자였어요. 여성에 관련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사람 역시 혼자였고요. 법이 제정되는 길은 수월했지요. 하지만 다른 남성 국무위원들은 자신들이 전혀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분야라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씁쓸한 현실이기도 했지요.”

정치활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당선됐다. 국회 활동은 국무 활동과는 또 다른 성질이었다. 특히 여성운동은 매우 빈곤한 여성권리신장에 관한 다양한 법률을 제정하는 것이 중요해 국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이 시절 이 전 장관은 간호사관학교 폐지를 막아낸 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꼽는다.

“IMF 때문에 어려운 시기이기는 했습니다. 나라살림도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어요. 국방비가 삭감되면서 간호사관학교와 체육부대가 폐지될 위험에 놓였었죠. 당시 저는 국방위 소속이었던 데다가 제가 있던 여협 산하에도 간호협회가 있어서 이쪽 사정을 잘 알았습니다. 해외 파병 시에도 간호장교의 역할이 매우 크고 중요하다는 점 역시 인지하고 있었어요. 때문에 저는 치열하게 당내에서 이 문제의 중요성을 전했고, 당시 이회창 전 총재가 당론으로 정하는 결단을 보여주시면서 힘을 얻고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여성 주축 집단에 대한 투자 필요"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일에는 거침없이 부딪치고 치열하게 논쟁해오면서 지나온 자리마다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이 전 장관은 최근의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현실적인 조언을 건넸다. 앞서 강조한 여성들 자신의 태도와도 이어지는 것이다.

“바로 ‘돈’ 문제입니다. 자신이 소속된 단체에 경제적인 투자를 통해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해요. 진취적인 태도와 조직의 기반을 잡아줄 수 있는 실질적인 행동을 해야 해요. 특히 여성들이 주를 이룬 조직일수록 이는 매우 중요한 전략이에요.”

물론, 여전히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건네는 것 역시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무겁고 미안한 마음으로 이 전 장관은 오늘도 여성들에게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미안하지만, 여성들이 부담을 더 해야 하는 게 현실이에요. 현실적으로는 희생정신이 필요해요. 누군가를 위해 대신하는 희생이 아니라 바로 자신을, 여성들을 위해서요. 미안하지만 조금만 더 해달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아까운 여성들의 능력을 마음껏 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이지요. 여성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왔으면 좋겠고, 그런 때가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희망을 보면서 뚜벅뚜벅 함께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힘들더라도 우리 같이, 조금만 더 열심히 해봅시다.”

한고은 기자  h9@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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