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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시 읽기]천양희 '지나간다'[구명숙의 행복한 시 읽기]
구명숙 숙명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1.04.13 14:27

[여성소비자신문]지나간다

천양희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고 벼르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세상은 그래도 살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지나간 것은 그리워진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사랑은 그래도 할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절망은 희망으로 이긴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슬픔은 그래도 힘이 된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가치 있는 것만이 무게가 있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사소한 것들이 그래도 세상을 바꾼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바람소리 더 잘 들으려고 눈을 감는다

'이로써 내 일생은 좋았다' 고

말할 수 없어 눈을 감는다

지나간다. 인생은 방향을 잘 모르면서도 가고 또 지나간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제 자리에 머무는 것이 없다. 기차가 깊은 산을 뚫고 지나가듯이 힘차게 때로는 느리게 바람처럼 지나간다. 지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만 있다면 소리치며 달려가 붙잡으리라.

시인은 삶의 곡절과 깨달음과 덧없음을 바람이 소리치며 지나간다고 거듭 거듭 강조한다. 바람은 소리치며 왜 지나가는가? 청춘도 고독도 슬픔도 흘러가고 드디어 허무도 지나간다. 방황조차도 세월을 이기지 못한다. 살아봐야겠다고 벼르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시간은 멈춰주지 않는다. 환한 꽃길이든 어둠의 가시밭길이든 지나간다. 봄이 가면 겨울이 오듯이.

“가치있는 것 만이 무게가 있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사소한 것들이 그래도 세상을 바꾼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바람‘은 깨우침의 소리, 내면의 소리이다.

인생은 밟히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며 지나가는 것이니 세상 살만한 가치로 채우고 사랑으로 채우고, 절망의 힘으로 다시 채우고 사소한 일상으로 채워가며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반복해서 소리친다.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이런 시대도 지나가리라.

 

구명숙 숙명여대 명예교수  k9350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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