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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존경은 하지만 친밀감은 못 느끼겠어요!
김혜숙 백석대학교 교수 | 승인 2021.02.04 13:17

[여성소비자신문]P씨는 부인이 아이들 생일에 특별한 추억을 위하여 이벤트를 하자고 하면 뭘 그런 것을 하냐고 귀찮다고 한다. 자기에게 좋은 옷을 사면 죄책감이 들고 미안해서 싸구려만 사야 한다. 가끔 비싼 음식을 사 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

부인이 외식을 하자고 하면 매번 집에서 먹지 왜 나가서 먹느냐고 핀잔을 주곤 한다. 초등학교 때 부터 아들과 딸과도 좀 놀아주라고 부탁을 하지만 거의 대화가 없고 혼자서 컴퓨터만 본다.
부인이 시키는 것에는 투덜대긴 하지만 그래도 가사 일은 해주는 편이다. 이런 남편이 너무 답답하고 한심하게 느껴진다며 정서적으로 꽉 막힌 것 같다며 통하지 않은 남편에 대하여 불만이 많았다.

남편의 성장사를 들어보니 부모는 농촌에서 일하시다가 도시로 나와 생존을 위해 장사하느라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5명의 자녀들은 거의 스스로 알아서 자라야만 했다. 부모님의 돌봄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방임 속에서 자랐다.

방임에는 먹을 것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는 음식의 방임, 아이의 욕구나 원함을 무시하는 욕구의 방임, 위기나 어려움에서 보호해 주지 못하는 보호의 방임, 함께 말하고 싶을 때 아무도 없어서 말을 할 수 없는 대화의 방임, 엄마와 피부로 느끼고 싶은 접촉의 방임, 함께 놀면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놀이의 방임 등 다양하다.

방임이나 방치 속에서 자란 아이가 성장하여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아이를 또 방임하거나  과대보상으로 해주기도 한다. 성인임에도 내면에는 부모의 행동에 대한 자녀의 심리내적 반응으로 상처 받은 내면아이가 자리 잡고 있었다.

P씨의 내면에는 아직 방임 받은 내면아이로 자신의 존재감은 미미하고 타인의 평가나 눈치를 중요시하며 자신의 욕구와 필요를 무시하고 돌봐 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올라오는 외로움과 고립감을 스스로 무시하고 아닌 척 하면서 오히려 강한 척 솔직하게 감정들을 표현하기 어려웠다.

자녀에게 애정을 가지고 돌보고 관심을 가지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P씨는 일하는 것으로 회피한 것 같았다고 말한다. 자녀들의 욕구나 필요를 방임하고 무시한 채 스스로 다 알아서 해야 한다며 “왜 공부하는 것도 스스로 못하느냐”고 야단치기만 했다고 한다.

이제 성장한 중학생 아들은 자기표현을 당당하게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는 컴퓨터 분야에서 돈을 잘 버시는 것은 존경하지만 아버지와는 친밀감을 느끼지는 못 하겠어요!  다가가기가 무서워요!” “존경하는 것과 친밀감을 느끼는 것은 다른 것이잖아요”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 함께 놀고 싶을 때, 필요할 때는 없었잖아요, 항상 컴퓨터 앞에서 일만 하시고요!” 갑자기 멍하니 가슴에 깊은 통증을 느끼며 한방 얻어맞는 이 기분은 밤새도록 유지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존재가 흔들거리며 혼란스럽고 슬프고 아들과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고 한다. 과거 같으면 즉각적인 반응을 했을 것이고 아들과 한판의 전쟁을 치렀을 것인데 이번에는 아버지의 반응이 달랐다.

자기방어를 하지 않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이 입장에서는 모두 맞는 말이고 아들을 방치 하고 방임한 대가가 이제 나오는구나 하고 알아차렸다.

가정을 위해 열심히 일한 자신이 인정을 받기보다는 아들에게는 이렇게 비추어 보였구나 싶었다. 아들의 솔직한 표현을 수용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P씨는 자신이 방임된 내면의 아이를 먼저 돌보고 치유하고 회복하는 자기 돌봄의 과정이 필요했다.

자신의 결핍되었던 것들을 채워주고 돌보고 양육하므로 스스로 좋은 부모가 되고자 노력하였다. 신체적인 돌봄, 물질적인 돌봄, 즐거운 놀이 돌봄 등. 그중 정서적인 자기 돌봄은 지금 내 안에서 어떤 감정, 어떤 욕구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고 분노나 슬픔도 담아내는 엄마처럼 나에게 안아주기로 담아준다.

그리고 내 감정을 이제는 언어로 표현하여 상대가 나의 감정 상태를 이해하도록 말로 하는 것을 배워야 했다. ‘emotion’ 감정의 단어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밖으로(out)와 움직이다(move)의 의미로 ‘밖으로 움직이다’라는 뜻이다. 감정을 안에서 밖으로 잘 빠져나가도록 통로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즉 감정을 언어로 잘 표현하는 것이다.

김혜숙 백석대학교 교수  kimhyes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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