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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과 분화의 문제: “사람을 믿을 수 없어요”
김혜숙 백석대학교 교수 | 승인 2020.09.25 15:28

[여성소비자신문]내담자 P는 반복해서 남자로부터 실망과 배신을 당한 것에 대해 이 세상의 남자들은 모두 나쁜 인간들이라고 말한다.

“내가 얼마나 잘해주었는데 저를 떠나다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요!” 내담자 P는 “상담 후에는 감정기복이 덜했으면 좋겠고, 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싶다. 장래에 대해서도 걱정이 되고 더 이상 내 인생에서 연예는 못할 것 같고 공부에 집중도 안된다”고 말한다.

내담자 P는 과잉 통제적이고 복종적이며 수줍음이 많고 소심하며 사회적으로는 위축된 경향을 보였다. 자아의 미발달로 의존성과 유아적인 수동 의존성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자기주장적인 표현이나 감정의 분화가 부족하여 타인과의 의존성이 강하게 나타났다. 또 그는 침울하고 변덕스러우며 예측하기 어렵고, 의심과 경계가 많으며 회피적인 성향이었다.

내담자는 최근 경험한 남자친구로부터 실연을 당하는 사건으로 심리적 정서적 혼란상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대상관계이론가들은 지금 기능하고 있는 자신의 자아는 과거 자신이 맺어온 관계경험을 통하여 내면화된 이미지로 관계하며 상호작용을 한다고 본다. 양육자로부터 방치나 유기 학대의 경험들은 관계에서도 불안정한 애착을 형성하고 분열된 자기상이나 파편화된 이미지로 보기 때문에 대상에 대한 좋고 나쁨으로 이분법적으로 생각하고 통합성이 이루지 못한다고 본다.

내담자 P는 마음에 든 대상을 만났다고 생각하면 자신은 왜 아이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는 성적으로 하나가 되어야만 자신의 남자친구라는 확신이 들고 그를 위해서라면 나의 모든 것을 맡기고 무엇이든지 다 줄 수 있다면서 자신이 준비가 된 사람이라고 말한다. 마치 말 못하는 아이의 고통이나 불안을 말끔히 처리해주는 엄마를 만난 것처럼 융합형이었다.

“당신의 강한 울타리 안에서 나는 안정감을 얻고 당신의 에덴동산에서 살고 싶어요”라고 말하지만 내담자의 진짜 심리는 “제발 저의 불안감을 담아주세요. 저는 당신의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합니다”라고 애걸복걸하며 무의식에서는 영원히 보호받을 수 있는 융합된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다.

내담자 P는 자신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신이 필요한 걸 다 알아서 해주는 것이 애정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상대방의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도 직감으로 알고 대상이 편안하면 자신도 편하고 대상이 불안하면 자신도 불안한 감정을 느끼며 동일시하는 능력은 감탄할 정도였다.

이런 융합형의 자아가 자유로운 상호의존형으로 주체적인 자아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타인을 한번에 직감으로 판단하는 투사나 융합보다는 관계에서 느껴지는 것을 그대로 대상에게 진솔하게 말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안정되고 신뢰가 있는 돌봄의 관계가 전제돼야 한다.
내담자 P가 어린 시절 엄마에게 표현하지 못했던 불안이나 상처, 두려움, 분노, 실망을 표현해도 무시당하지 않고, 야단맞지 않고 “우리 아이, 그래 그랬구나” 하고 그대로 담아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리고 그런 표현들이 오히려 관계에서 더 풍성하고 유익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경험이 자아정체감을 성장시켜준다.

내담자 P는 상담을 통해 새로운 긍정적인 관계경험을 하고,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쳐주므로 “알지 못한 자기”를 발견하고 자아의 탄력적인 부분과 창조적인 부분이 다시 살아나고 아픔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자기애’가 세워지고 ‘슈퍼에고’적인 기능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슈퍼에고는 현실적인 이상과 목표를 세울 수 있고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능력으로 자신의 포부를 만들어가는 힘이다.

김혜숙 백석대학교 교수  kimhyes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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