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오피니언 칼럼
[황인자 칼럼]국회에 김마리아의 동상을 세우자
황인자 한국외대 초빙교수/젠더국정연구원 대표 | 승인 2020.06.12 15:41

[여성소비자신문]지난 4월 국회는 정부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식과는 별도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개원 101주년 기념식을 국회 중앙홀에서 열었다. 임시정부의 모태가 바로 임시의정원이었다는 국회의장의 기념사가 있었다. 국회가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의 법통을 이어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국회를 둘러보면 여기저기 동상들이 눈에 뛴다. 중앙홀 정면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과 신익희 전 국회의장의 동상이 있고 본회의장 입구에는 임시의정원 초대의장 이동녕 선생의 흉상도 있다. 그러나 국회 안팎 어디를 둘러보아도 여성 동상은 없다.

21대 국회가 시작되었다. 여성 국회의원은 57명으로 역대 최다이다. 우리나라 여성 국회의원 중 최초의 선구자는 누구일까.

국회의 전신인 임시의정원 최초의 여성의원인 김마리아 선생이다. 임시의정원에는 1919년 설립 이후 1945년까지 김마리아를 비롯하여 총 7인의 여성의원이 선출되어 활동했다.

김마리아는 3·1운동에 깊숙이 관여하고 3·1운동 직후에는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결성하여 독립운동을 이끌다가 1922년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임시의정원에서 여성을 의원으로 선출한 것은 1922년부터였으니 최초의 여성의원이 된 것이다. 당시 김마리아의 나이는 만 29세였다.

대한의 독립과 결혼한 김마리아는 오십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면서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황해도에서 태어난 김마리아는 일제의 잔혹한 고문과 후유증으로 병치레가 잦았음에도 불구하고 국내는 물론 일본, 중국, 미국 등으로 나가 해외에서도 독립운동에 헌신하다가 조국 광복을 앞두고 한줌의 재로 대동강에 뿌려졌다. 지금은 동작동 국립묘지 무후선열제단 묘역에 모셔져 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년 전 우리는 여성 정치인을 배출하였다. 구미 선진국 어느 나라에서도 여성의 정치적 진출이 전무했던 시기에 대한민국은 여성 의원을 탄생시킨 것이니 우리는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하다.

이렇게 자랑스러운 여성의 역사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 김마리아를 여성의 상징적 롤 모델로 세워야 하지 않겠는가. 국회 중앙홀에는 비어있는 흉상 좌대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 임시의정원 초대 여성의원 김마리아의 흉상을 세워야 하지 않겠는가.

 

황인자 한국외대 초빙교수/젠더국정연구원 대표  eqhwang@hanmail.net

<저작권자 © 여성소비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여백
여백
Back to Top